춤꾼 머루,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
춤꾼 머루,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
  • 강찬호
  • 승인 2008.07.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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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연극배우에서 춤꾼으로 ‘13홍’을 찾아 여행 중인 박은주씨.

24일 저녁 8시 광명시 한 구석에서 작고 소박한 모임이 진행됐다. 모임이 진행된 곳은 일직동 구름산학교. 광명시에 있는 대안초등학교 중에 한 곳이다. 종반을 향하는 장맛비가 내리는 질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여명이 광명시 외딴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모임이다. 그들만의 모임이다. 이 학교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와는 무관하다. 그렇다고 아주 무관한 것도 아니다. 이 모임의 주인공이 이 학교 춤 교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박은주씨다. 이 학교와 오랜 인연을 맺어 왔고, 그 인연이 소중했다. 그리고 그 인연을 힘으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자리였다. 이 학교에서 박은주씨는 '머루'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날 모임은 춤꾼 머루를 후원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후원회를 결성하는 자리였다.

머루는 이 학교 교사이지만, 그것은 본업이 아니다. 춤을 통해 교육적 접근을 해왔지만 머루는 춤꾼이라는 본질을 우선시한다. 자기 안에 내재돼 있는 본연의 춤을 연구하고 공연을 만드는 일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더 큰 세계로 나가는 것도 목표로 가지고 있다.

그런 목표는 단기적으로 대안학교 춤 교사의 역할과 상충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학교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머루가 더 큰 춤꾼으로 성장할 수 있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고 머루의 출발을 축하하고, 힘을 보태기로 했다. 



▲ 구름산학교 대표교사 김현주씨가 축시를 읽고 있다.

이날 후원 모임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8시를 넘겨 슬라이드 상영으로 본 행사가 시작됐다. 머루의 공연 모습과 머루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제시하고 말을 걸어온 여러 작품사진들이 음악과 함께 슬라이드에 등장했다. 

이어 이날 행사를 제안한 이 학교 학부모 최주영씨는 지난 2년 반 동안 머루가 이끌어 온 구름산학교 춤 수업은 충만한 수업이었다며 이제 더 먼 곳, 산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머루를 후원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모임 취지를 소개했다.

이어 이 학교 대표교사인 김현주씨는 오늘 밤이 편안한 밤이라며 10년 지기 머루와는 서로를 일으켜주는 친구이자 벗으로 지내왔다고 말했다. 그는 축시와 축하 노래를 준비해왔고, 즉석에서 눈시울을 붉혀가며 머루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시대는 진실에서 멀어질지라도 밤  하늘 별들이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빛나듯 서로를 예술로 위로하면서 지켜가자는 말과 함께.

축하 무대에 이어 머루가 감사의 말과 함께 자신과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감사하고, 감사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마음이며 그것은 ‘진심’이라고.

이어 슬라이드에 등장했던 한 장면을 소개했다. 그것은 반 고흐 작품으로 헐거워진 구두 한 켤레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학교가 일직동으로 옮기기 전 하안동 밤일마을에 문을 처음 열었고, 그 학교에서 살면서부터 자신의 방 입구에 부착했던 그림이라고. 



▲ 머루의 첫 단독작품인 13홍의 한 장면이다. 이날 후원회에서 이 작품이 소개됐다.

반 고흐가 농부의 진실을 담기위해 들과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듯이 자신도 작업에 성실하고 싶고, 낮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켜주는 힘을 주는 그림이었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또 머루는 이날 후원회가 사건이고 자신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생계 문제로 망막하지만 작업에만 전념하겠다며 몸을 던진 것이 6개월째 됐고, 그것은 힘든 일이었으며 후원회에 대한 것은 맘에 있었지만 발설할 수 없었던 일인데, 그 일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어 머루는 자신이 지난해 단독으로 올린 공연, ‘13홍’을 소개했다. 머루의 작품 세계를 들려주고자 함이다. 13홍은 그 동안 집단창작으로 올려왔던 진혼무대 등과는 달리 이미지, 심상, 사연, 염원 등을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안무해서 올린 작품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영상을 통해 녹화된 공연장면을 압축해 보여주며 주요 동작들에 대해 자신이 담고자 했던 모티브와 메시지에 대해 설명한다. 공연내용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전제와 함께. 

머루는 13홍 작품에 대해 어느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하며 작품을 만든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머루는 이 작품을 가로지르고 넘어서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 12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어닌 넘어서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작품이다. 



▲ 반 고흐의 작품 구두. 농민들의 진실된 삶을 추적한 흔적으로 헤진 구두. 머루도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어둠의 빛이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그 빛은 새로운 태양을 향하는 빛이다. 기존의 것이 아닌, 기존의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빛이다. 그것은 머루가 기존의 틀을 넘어서서 다른 무엇을 창조하고자 하는 근원에 대한 몸짓과 다름 아니다.

형식과 내용이 분리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다. 자유와 비상을 향한 아름다운 몸짓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머루 안에 꿈틀대고 있다. 두렵지만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설 수 있는 용기는 그런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머루, 춤꾼 박은주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 후원행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머루(왼쪽)는 자신의 오랜 친구를 소개했다.

<춤꾼 박은주(35)씨는 카톨릭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 활동을 했으며, 배우집단 숨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독립해서 춤 연구와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춤과 관련해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춤을 배우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춤을 통해 자기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쓰고 있다. 지난 해 ‘13홍’이라는 작품을 단독공연으로 처음 올렸다. 광명지역에서는 방과후 대안학교 구름산자연학교, 전일제 초등대안학교 구름산학교 춤 교사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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