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 유족들은 아직도 4월16일에 살고 있다.
세월호 트라우마, 유족들은 아직도 4월16일에 살고 있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4.11.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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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쿱생협 시민토크 행사 개최...정혜신.이명수 부부, 사회정치적 해결과 함께 심리적 회복 과정 필요...세월호 대책위, 시민참여 진상규명운동 펼쳐야.

안산지역에 치유공간 '이웃'을 열고 세월호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에 나선 정혜신, 이명수 부부. 이들은 세월호 사건의 사회정치적 해결과 동시에 심리치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쿱생협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안전사회 문제를 제기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기억하고 행동하기 위해 마음을 냈고, 특별법 제정을 거리에서 혹은 마음으로 간절하게 염원했던 깨어있는 시민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법의 제정은 제도의 시작이다. 제도가 제대로 실현되도록 시민적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으면, 법과 제도의 실천에는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사건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참여는 사회적 실천이고 요구였다. 이들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과제는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또 시민적 요구를 반영하도록 참여해야 한다.

동시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트라우마의 치유이다. 세월호 참사 사건이 가져온 엄청난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은 섬세해야 하고, 또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속도로 회복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돌봐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그렇게 트라우마 치유과정과 함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노력이라는 ‘투 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

세월호 사건을 ‘투 트랙’ 방식으로 풀어가야 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들의 임무는 세월호 사건의 심리적 치유라며, 안산 현장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 이들이,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이다. 이들은 ‘치유공간 이웃’을 단원고 근처 와동에 열었다.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주거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그동안 자신들이 운영해왔던 관련 사업을 정리하고, 세월호 피해자들의 치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를 돌보는 일도 해왔다.

건강한 먹거리,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활동하는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는 11월10일 오후3시, ‘기억행동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너와 나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시민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이명수, 정혜신 부부는 1부 초대손님으로 참여했다. 부부가 들려주는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은 컸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무엇인지, 슬픈 어조로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피해자들의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를 확인했다.

이명수씨는 세월호 사건은 304명이 수장되는, 학살되는 현장을 생중계로 본 사건으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절망과 비탄, 허무를 느꼈고 엄청난 비리구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정치적 해결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심리적 치유도 중요하며, ‘트라우마 치유의 최우선은 진상규명’이라고 말했다. 폭격이나 칼질이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치유 과정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치유, 즉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적 치유는 결코 세월호 사건을 사회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치유과정은 ‘베이스캠프’라고 말했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베이스캠프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리적 치유 과정이 함께 하면 투쟁을 더 오래 잘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천천히 오래’ 가는 것이 치유공간 이웃의 슬로건이다. 피해자 최후 1인까지 돌보겠다는 것이 이웃의 목표이고, 최소 3년의 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유족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의 문제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유족들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이웃들의 시선은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고통이다. 때론 어떤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족들은 유족들끼리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함께 이웃들이 감내하고 겪는 고통들도 있다. 누구엄마로 불리던 이웃이었는데,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웃들 간에 힘들어진다. 주거지역 특성상 유족 피해자들의 울음소리가 이웃들에게 쉽게 전해진다. 일상을 살아야 하는 이웃들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기에 힘든 시간들이다. 처음 같이 울어주던 이웃들이 유족들을 신고하는 일도 발생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신 박사는 ‘트라우마를 겪는 유족들의 시간은 일반인들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의 시각으로 '이제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트라우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유족들의 시간은 아직도 4월16일 그 날에 멈춰서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이들은 시간이 거기서 멈춘다. 우리랑 시간이 달라진다. 삶의 진도가 멈추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날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게 트라우마이다.”

따라서 ‘지겹다. 그만해라’라고 말하면, 피해자들은 당황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노란리본을 달지 말라고 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일상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단원고 학생들 중에는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문신을 새기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노란리본을 달지 말라고 하는 것이 무엇으로 보이겠는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혜신 박사는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이 겪는 시간이 우리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의 심리적 치료, 접근의 또 다른 측면은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무너진 일상성을 복원해 원래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자리가 아니다. 무너진 고통의 자리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이들을 옮겨 오는 과정이다.” 정신과 전문의 몇 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부부는 판단했다.

스스로 치유자가 되고, 이웃이 되기로 했다. 수많은 치유자이자, 이웃들이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서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피해자들 스스로도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유공간 이웃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치유자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 고통을 덜기 위한 어떠한 참여도 다 치유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부부는 말했다. 부부는 안산 와동 지역에 내려와 있으면서, 이곳에는 아직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웃 치유자’의 개념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치유공간 이웃은 피해자들의 공간이다. 피해자들과 이웃이 되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정거장이고, 또 기억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베이스캠프가 되고자 하는 공간이다.



2부 순서에서 세월호 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세월호 사건의 문제점을 다시 짚었다. 전무한 구조대책, 몇 년에 걸쳐 진행돼왔고 진행되고 있는 선박규제 완화, 안전문제를 산업화해서 민간자본을 육성하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피해자 가족의 주도권을 보장하지 않는 진상규명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어렵게 마련된 세월호 특별법의 문제점을 보완해가기 위해서는 시민참여형 진상규명운동을 펼쳐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과 함께 국민간담회를 진행하고, 안전사회 시민헌장을 제정해가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억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국민들의 선언과 참여는 540만명이라는 서명 결과로 나타났고, 공감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가 만들어 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이쿱소비자연합회는 이번 시민토크 행사를 위해 자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취합 결과를 발표했다. 아이쿱 조합원들은 최우선 과제로 정부와 관료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어 자본이 아닌 사람중심의 사회경제, 재난안전대책, 사회공공성 회복, 시민의식 변화, 사회적불평등 해소, 소통과 합의문화, 시민참여 확대 등을 꼽았다. 아이쿱 소비자생협은 “세월호 참사는 안전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운동을 확산하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20만 조합원의 지혜를 모아 한국사회가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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