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신음하는 사람 대할 때는, 국가가 원망스럽기도...
음지에서 신음하는 사람 대할 때는, 국가가 원망스럽기도...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4.12.1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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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노인자살예방센터 생명사랑교육단 이준철 어르신

이준철 어르신.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에 안타깝다. 국가가 사회 흐름을 쫓지 못하고 있다.

‘나이 서른에 우린 ~ 어디에 ~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 서 ~ 있을까?...’ 대학시절 동아리방에서 불렀던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이십대 청년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 나름 고민하며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이다. 나이 팔십, 당신은 어디에 서있을까? 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 본다.

이준철 어르신은 올해 팔십이다. 나이에 비해 귀도 밝고 또렷하다. 한눈에 봐도 아주 건강한 어르신임을 느낄 수 있었다. 노년의 건강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이준철 어르신을 11일 오전 11시 광명노인복지관 4층에 자리한 어르신자살예방센터 상담실에서 만났다. 이미 내방한 상담자와 상담을 끝내고 사이 시간을 이용한 만남이었다. 노인자살예방센터에는 생명사랑교육단 어르신 15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준철 어르신은 그 중 한명이자, 가장 고령이다. 그러나 열정은 누구보다 강하고,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목요일은 교육단 모두가 쉬는 날이지만, 이준철 어르신은 상담실을 찾았다. 자신이 관리하는 내담자 일정에 맞춰 필요하면 언제든 시간을 내고 있다. 교육단은 일주일에 3일 근무하지만, 이준철 어르신은 하루이틀 더 와서 활동한다. 상담일을 내 일이라고 여기고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다.

나이 서른..아니, 나이 팔순에 당신의 삶의 모습은??

노인복지관 상담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보통 6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삶의 형편도 대부분 어렵다. 상담을 통해 관리되고 있는 어르신들 중에는 자살위험군에 속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이준철 어르신은 현재 14명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자살시도를 한 분들이 5명이나 된다. 오이시디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고, 그 중 어르신 자살률이 가장 높은 점을 감안하면, 광명지역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준철 어르신은 30명이 넘는 인원을 관리한 적도 있다. 지금은 인원을 줄이고 내담자들과 깊게 만나는 방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전에 상담실에서 상담하고, 오후에는 내담자들 집을 찾아 나선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오후 2시에는 교육단 전체가 모여 사례회의를 진행한다. 매 회의마다 두 명이 사례를 발표하고, 함께 사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배운다.

이준철 어르신이 노인복지관 내 어르신자살예방센터 생명사랑교육단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도이다. 95년까지는 공직생활을 했다. 2000년 서울 신림동에서 살다가 광명으로 이주했다. 퇴직 후 아들 사업을 돕기도 했다. 광명으로 이사 온 후 외로운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던 차에 노인복지관 홍보전단지를 봤고, 그렇게 만난 것이 생명사랑교육단이었다. 그해부터 열심히 참여해 현재 5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상담하며 위로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사랑으로 대하고 있다. 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두고 있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지정보를 제공해 혜택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외로운 노년, 생명사랑교육단으로 새 인생 시작...보람찬 인생이모작....소외된 노인들의 친구이고 싶다.

이준철 어르신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전에는 사회 구석구석까지는 잘 몰랐다. 노인들의 삶이 피폐하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 어려운 노인들 만나면서 혜택을 줄 수 있는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즐겁게 하고 있다.” 노년에 만난 새로운 삶이 아픈 노년의 인생을 만나고 들여다보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다른 한편에서는 큰 보람이다. 이준철 어르신의 사례 중 하나이다. 65세이 여성 어르신이다. 20년전 이혼해 혼자 살면서 건설공사 현장에서 함바집을 운영하며 생활했다. 당시 건설경기에 힘입어 괜찮았는데, 아이엠에프를 맞았다.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함바집 일도 힘들어지고, 하루 아침에 채무자 신세가 됐다. 차압이 들어오고 살길은 막막해졌다. 3-4번 자살 시도도 했다. 자식들이 있지만 이혼 이후 교류가 끊겼다. 2003년 사례로 발굴됐고, 시 무한돌봄센터와 연계해 현재까지 돌보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70세 어르신인데, 결혼 해 두 자녀를 나았지만 한 명은 심장병으로 잃었고, 다른 한명은 장애로 반신불수이다. 남편 사별 후 홀로 키우는데 힘든 삶이다. 본인도 자폐를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이준철 어르신이 이 분을 찾아갔을 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을 넘겨 네 번째 방문하니, 그 때부터 조금씩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준철 어르신은 14명의 사례를 관리하고 있다. 14명의 소외된 어르신들과 친구가 되어주며 그들의 삶을 지키려 애쓴다.


이렇듯 접하는 사례 하나 하나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팔순이라는 연배가 주는 풍부함이 있고,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태도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사람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랑, 봉사 정신으로 대하면 친구가 된다. 그러면 신뢰가 형성되고 닫힌 마음도 열게 된다. 대화하고 상담한다.”

팔순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에게 인생덕담을 부탁했다.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고 있다. 불우한 이웃이 너무 많은데 돌보지 않는 세태를 실감한다. 지앤피가 2만6천달러가 넘는다는데...음지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대할 때면 국가가 원망스런 마음도 든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복지가 90년대부터 갖춰져 가고 있는데...시대 흐름이나 변화를 국가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소외된 이들이 너무 많다. 서초동 세모녀 사건으로 법이 통과돼 그 나마 혜택이 돌아간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 너무 각박...복지국가는 아니더라도...공직사회, 인맥으로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것 심각

공직자로 지내다가 퇴임했다. 공직사회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부탁했다. “근무 당시에 비해 나아지고 있다고 보지만 공직사회 아직도 부패하다. 학연, 지연에 좌우된다. 다 인지상정이다. 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맥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사회 뉴스를 접하면 참 안타깝다. 가진 것이 많다고, 누리는 것이 많다고 ‘갑질’하는 것은 문제이다. 시정돼야 한다. 그래야 민주사회 된다.” 겸손하고 친절하게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고 있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부드러운 직선으로 바라보았다. 곱씹어야 할 대목이었다.

건강관리와 노인복지관 그리고 인생이모작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소식하고 늘 움직이려고 한다. 많이 움직이는 것이 비결이다. 하안3동에 사는데, 노인복지관까지 걸어 다닌다. 오늘도 걸어서 왔다. 노인복지관은 노인들의 천국이다. 6천여명이 등록해 있다. 노인들은 외로운 게 첫 문제인데 이곳에서 지내면 보람도 있고, 건강에도 좋다. 직원들도 친절하다. 생명사랑교육단이 경기도로부터 지난해 표창도 받았다. 자살예방 활동으로 자살률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구들에게도 인생 허비 말자고 말한다. 노후구상해서 인생이모작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상담의 팁을 달라고. “1,10,100,1000,10000법칙이 있다. 내담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좋은 일하고, 하루에 좋은 사람 열 명과 만나 수다를 떨고, 하루에 백 글자를 쓰고, 하루에 천자 이상 읽고, 하루에 만보 이상 걷자고. 그러면 치매예방이나 우울증 예방에 좋다고. 유효하게 사용하는 처방전이다.”

나이 서른에, 아니 나이 팔순에 당신은 어디에 어떤 모습을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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