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해서 ‘광명’은 못 찾았지만, 내 삶은 찾겠다.
‘작당’해서 ‘광명’은 못 찾았지만, 내 삶은 찾겠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5.02.10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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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푸른광명21 심혜진 간사...새로운 인생, 작당하며 길 떠날 채비...

심혜진씨. 일상의 생활현장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공간을 디자인 해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공공미술, 공공예술 어딘가에 관심이 있다. '작당'해서 광명을 찾아 보고자 지역에서 도전도 해보았다. 다시 새로운 인생에 도전을 준비 중이다.

지역에서 ‘청년’을 만나는 일은 드믄 기회이고, 그래서 그 만남은 즐겁다. 청년의 삶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데 한국 사회 청년의 에너지는 어떨까. 속단할 수 없다. 긍정적이지 않다. 힘든 사회의 그늘이 청년들의 삶을 비켜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대 곳곳에 걸쳐 있다. 사회가 어두운 그늘을 드리워 놓았다면, 온전히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몫은 청년 그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도 청년을 찾고, 청년의 움직임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들이 간간히 눈에 띠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작당해서 광명 찾자’(이하 ‘작당’)였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동네 친구 3인방이다. 그 중 한 명이 심혜진씨이다. 올해 30의 미혼. 광명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이곳에서 다녔다. 고등학교 친구들 셋이 모여, ‘작당’해서 광명에서도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작당’을 시작했다. 광명시평생학습원이 진행하는 시민공모사업에 지원해 채택됐다. ‘작당’을 통해 한국사회에 진행된, 진행되고 있는 의미있는 청년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관심있는 청년, 지역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제안이었다. 문래동 예술촌에 있는 ‘정다방 프로젝트’.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전시예술가 ‘사이다’, 인천 신포동에 있는 ‘신포살롱’, 목2동에 있는 ‘모기동 카페’를 지역에 소개했다. 2년 전 추진된 사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작당해서 광명을 찾은 것일까? 어떤 ‘광명’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심씨는 “찾지 못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정해놓고 (‘광명’을) 찾을 수는 없다. 정해져있으면 덜 재밌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에서는 흔한 프로젝트들인데, 광명에서는 신선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할 수 있다는 무엇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도 지역에서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또래친구도 만났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심혜진씨는 지방의제인 ‘푸른광명21실천협의회(이하 푸른광명21)’에서 간사로 지난 3년 동안 일했다. 올해 2월말까지 일하고, 그만 둘 예정이다. 3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보고 싶어서다. 청년의 도전이다. “변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지만...좀 더 나아지고 싶고, 더 잘사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인생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심씨는 디자인 전공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출판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나 전공 그 자체보다는 보다 폭 넓게 활동하고 싶은 욕구가 진로를 이끌었다. 무언가 만드는 게 좋았다. 종이 지면보다는 ‘공간’에 더 마음이 이끌렸다. 학교를 졸업해 연극판에서 포스터, 무대 등 미술 관련 일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것저것 배우며, 적응했다. 연극에 이어 관심은 영화로 이어졌다. 대학생들과 독립영화 만드는데 함께 했고, 미술파트 일에 참여했다. 특정 직업보다는 ‘일’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모습이 엄마에게는 ‘한량’으로 보이기도 했다. 영화판에서 일은 딱 한편 상업영화 작업 참여로도 연결됐다. 박중훈, 정유미 주연의 ‘깡패 같은 애인’이 그 영화였다. 독립영화, 상업영화로 이어지는 활동이었지만 심씨는 “정말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지..의문이 들었다.”

동시대 청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싶었다. 하여 청년사업도 진행했다. 삶에 자극이 되었다.

심씨는 다시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 떠났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현장, 지역이었다. 공공미술, 공공예술이었다.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 일하고 싶었고, 대학로 등에서 활동한 인연으로 인천 연안부두 연안초 교문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초등학교 한 반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벽화 작업 등에도 작업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런 활동들이 모아져, 인천에 있는 예술대안공간인 ‘스페이스 빔’에서 다른 한명의 작가와 함께 개인전시를 개최했다. 학교 졸업 작품 전시 후, 생애 첫 개인 전시였다. 이 곳의 전시는 기존 전시실과는 다른, 시멘트 벽 자체에 그림을 거는 전시였다.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전시 방식이 아닌,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시를 지향했고, 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신진작가 지원 전시였다. 이 때가 2010년경이다.

인천 지역이라는 ‘지역’과의 만남은,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도 살고 있는 지역으로 관심을 이동시켰다. 광명지역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때 우연하게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 하안문화의집이었다. 그곳에서 목공팀 ‘세모나’ 프로젝트 간사를 뽑았고, 지원해 함께 활동했다. 광명지역에서 첫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지인이 푸른광명21을 소개해, 지난 3년간 인연이 이어졌다. 푸른광명21은 지역사회 각 영역에서 행정과 민간, 기업이 함께 거버넌스를 이뤄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가는 의제를 만들고, 실행해가는 일을 하는 기구이다. 인천에서 일하면서도 ‘지방의제’는 접했었다. 공공예술에 관심이 있는 심씨는 지방의제, 지역에서 일하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마을, 지역, 공간에서 사람과 만나, 예술적 접근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넓게 보면 어떤 의미나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업무상 주어지는 행정업무도 병행했다. 푸른광명21에서의 경험은 마을, 지역의 여러 흐름을 보는데 도움이 됐다. 긍정적이고 필요하며, 좋은 정책이 실현되지 않을 때는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동시에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상황 등 여러 요인이 있다는 것도 지역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다. 그전에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다.

심씨는 지방의제 서부권역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비슷한 청년세대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의식주, 일자리, 연애 등 청년들의 문제를 공감하면서 ‘청년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같이 해가야 한다고 생각해 청년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 내가 해 보고 싶고, 고민했던 일을 일처럼 해나가는 청년들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이러한 청년사업은 작당해서 광명을 찾아보고 싶었던 청년 정신의 연장에서 벌린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심씨가 지난 3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도전과 어떤 계기를 만들고자 또 다른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아마, 이런 청년사업에서 만난 청년들의 삶이 자극이 됐는지 모른다. 다시 ‘작당’해서 개인의 인생을 찾아보자는 도전이다. 공간과 사람에 대한 관심, 일상적 생활공간에서 공공예술을 실현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해당 분야에서 ‘예술감독’이 되어 일해보고 싶은 어떤 포부가 미래로 이끌고 있다. 미래는 도전이고 두려움이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삶을 촉발하고 이끈다. 심씨는 일을 그만두면 3개월 정도 준비 기간을 갖고, 다시 ‘어디론가’ 떠날 계획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할 계획이다.

심씨는 광명사거리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광명초, 광명여중, 광명여고2년을 거쳤다. 이어 광명여고는 명문고로 이름을 바꿨고, 심씨는 명문고 1회 졸업생이 됐다. 위로 오빠 한명이 있고, 자신은 여동생이자 막내딸이다. 나이에 비해 ‘절대동안’이다. ‘동안’ 좋은 걸까? 아닐까? 자세히 보면 나잇살(?)이 있다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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