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런 자본주의인가? 호혜적인 ‘공동체 경제’인가?
탐욕스런 자본주의인가? 호혜적인 ‘공동체 경제’인가?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5.03.12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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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림교회 창립 27주년, 원주 한알마을 김용우 대표 강연

철산4동 도덕산 자락에 위치한 한울림교회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작은 교회이다. 올해 설립 27주년이됐다. 지난 7일과 8일, 이틀 동안 창립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이 교회는 매년 창립주년을 맞아 명사 초청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토요일은 지역 주민, 활동가를 초대해 진행한다. 다음날 강연도 열린 형태로 교인 중심으로 진행한다.

그동안 실상사 도법 전 주지스님, 이현주 목사 등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방문해 강연했다. 올해 강연자는 김용우 원주 한알마을 대표이다. 김용우 강사는 원주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경제, 협동조합경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장일순 선생과 인연도 닿아 있다. 얼마 전 폐교된 원주지역 대안학교 한알학교 교장도 역임했다.

김용우 선생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 전환적 사고를 주문했다. 근대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공동체적 전망을 사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수직적인 위계질서나 문화가 아니다. 근대문명의 자유가 아닌 ‘자율적 존재’를 사고한다. 국가로부터의 자유와 평등을 넘어서서, 시민 스스로 ‘형평’을 가늠할 수 있는 존재를 사고한다. 인위적이고 위계적인 배분이 아닌, 시민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가늠함으로서 ‘평등’을 찾아가는 존재를 사고한다. 즉 대안적인 문명을 사고하는 시민적 존재는 물리적인 평등, 국가를 상대로 한 평등이 아닌, 시민들 스스로 필요를 ‘조절’하고 그 조절을 통해 배분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와 그 대안으로 자본과 적대적 연대를 지향하기 보다는 공동체적 존재로서 ‘동등한, 대등한 존재’를 전제로 하는 ‘통합적 연대’를 지향한다. 이는 ‘공동체적 진화’를 사고하는 개념이다. 즉 공동체적 진화를 전제로 한 통합적 연대는 일종의 협동조합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노조/노동운동과 같은 자본과 맞서는 적대적 연대의 개념을 넘어서고자 하는 개념이다.

근대경제의 무한 탐욕주의를 넘어서서 ‘자립, 자족’을 지향하는 ‘공동체적 경제’를 지향한다. 인간의 무한적 욕망을 자극하는 경제성장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가 스스로 먹이는 방식을 지향한다. 즉 ‘민(民)의 자발성, 돌봄에 따라 생산하고 배분하는 방식으로 개인, 국가 소유를 넘어서서 공동체적 소유를 지향한다.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획, 즉 ‘탈근대’의 기획과 전망은 ‘민의 자율경제에 기반한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경제‘를 지향하고, 그러한 공동체경제에 대한 운영 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요구한다. 스페인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등이 사례이다. 국내에서는 원주 지역도 이러한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원주지역에서 협동조합 경제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경제는 원주 지역내 총생산의 2퍼센트 규모이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지역차원의 그 규모를 10퍼센트까지 가져가자는 논의를 해가고 있다.

당장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미래를 전망하고 꿈꾸고 있느냐를 통해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경제의 노동과 생산의 관계는 근대적인 적대적, 수직적 관계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사이의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공동체적 경제, 호혜적 경제이다. 협동의 공동체적 경제가 늘어나면 지역에서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이는 새로운 모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자본이 된다.

효율을 따지는 노동과 고용의 근대 경제에서 느림과 나눔 등 인간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로 전환되는 경제로 전환된다. 김용우 선생은 이를 ’확장‘의 경제로 칭했다. 또한 공동체 경제의 확장은 기존 경제구조에서 발생되는 거래비용, 유통비용을 줄이거나 없애, 경제 거래는 ‘호혜성’ ‘나눔’의 성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기존 거래 시스템이 아닌 공동체 경제에 부합하는 다양한 거래시스템들이 실험되고 확산돼야 한다.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찰은 정치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주문한다. 근대국가의 수직적 국가 개념 대신, 자유롭고 자발적인 공동체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과거 부족공동체를 사고하고, 그 부족공동체의 확장된 미래 모델을 상상하자는 주문이다.

김용우 선생이 그리는 미래는 공동체적 경제, 자율과 자치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무한 탐욕의 인간 존재가 아닌, 스스로 협동하고 스스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을 사고한다. 공동체와 공동체적 존재는 스스로의 ‘영성’ 즉, ‘브레이크’ 장치를 통해 이러한 공동체적 나눔과 호혜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당신이 사고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탐욕하는 인간들의 세상인가? 협력하고 나누는 호혜적인 인간들의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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