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힘든 사람들은 씹기도 힘들다
살기 힘든 사람들은 씹기도 힘들다
  • 김용진
  • 승인 2015.05.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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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칼럼]김용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장)
지난해 봄, 30년 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문학 소년의 꿈을 함께 꾸던 문예반 친구였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졸업 후에도 선후배를 자주 만나던 한 기수 후배가 모임을 주선해서 그 친구를 만났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옛날의 추억을 나누었다. 그때 그 친구도 치아가 엄청 안 좋다며 한번 찾아오겠다고 했다.

입안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여

대개 그렇게 치아가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상태가 심각한 사람은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래, 내가 잘 치료해줄게, 한번 찾아와라.”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술자리가 깊어지자, 그동안 자기가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놨다. 자영업을 하는 그 친구도 지금은 자리를 잡아 비교적 안정되게 살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며 많은 이야기를 술잔에 풀어놓았다.

얼마 후 그 친구가 찾아왔다. 입안을 진찰하고 방사선 사진 찍은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친구야,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40대 후반인 그 친구, 위에는 자신의 이가 하나도 없이 임플란트를 했고, 아래는 앞니만 5개 남았으나 그 중의 3개은 완전히 흔들리는 상태였다. 아래의 양쪽 송곳니 2개만 그나마 안 뽑을 수 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로 그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정말 한숨이 나왔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한 그의 힘들었던 삶의 사연들이 얼굴의 주름살과 더불어 입안에서도 보이는 듯 했다.

치과의사는 진료실에서 환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며 환자의 삶을 짐작하고 추측한다. 때로는 농담처럼 한마디를 점쟁이처럼 던지기도 한다. 삶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이가 많이 닳아 있기도 하고, 치주도 안 좋고, 치아의 파절도 많다. “젊어서 고생이 많으셨나 봅니다.”라고 하면 대부분 들어맞는다. 그리고 번쩍이는 금으로 치아를 씌우거나 때운 것이 많거나, 임플란트를 많이 한 분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니 고급 재료나 비싼 치료에도 쉽게 동의하시겠군.”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짐작은 대개 틀리지 않는다. 치과의사도 오래하다 보면 거의 점쟁이가 된다.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구강 건강의 격차

하지만 자주 틀리기도 한다. 얼굴을 먼저 보고 치아 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는 얼굴이 예쁘장한데 화장도 예쁘게 한 젊은 여자가 진료의자에 앉았다. 젊고 예쁜 아가씨이므로 보통 젊은 아가씨들이 그렇듯이 스케일링이나 심미적인 문제로 왔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진료기록부에 기재된 환자의 걱정은 충치가 많다는 것이었다. 아가씨들은 심미적인 문제에 예민해서 치아에 약간의 착색이 있어도 충치라고 생각하고 충치가 많다고 걱정하고 치과에 오는 일이 많으므로 이 환자도 지레 걱정을 하고 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충치가 많아서 오셨다고요? 제가 입안을 확인해볼까요?” 입안을 들여다본 후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한 숨이 나왔다. 어금니의 절반은 다 썩어서 뿌리만 남았고, 아래 앞니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치아가 심각한 충치였다. “상태가 많이 심각하네요. 엑스레이와 구강 사진을 찍어서 확인하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치과위생사에게 엑스레이 촬영과 구강 내 사진촬영을 부탁하고 환자의 진료기록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이 환자는 의료급여 1종이었다.

젊은 사람이 의료급여 1종인 경우는 드문데, 생의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서부터 치아 건강을 방치하게 되고, 경제사회적 이유로 치과 방문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제야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치아 상태를 개선해보고 싶어서 내원한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방사선 사진으로 구강상태를 설명하면서 여러 개의 이를 뽑아야 하고, 신경 치료를 해야 하며, 씌워야 한다는 것, 이런 상태가 온 것은 구강관리의 소홀, 단 음식이나 음료의 섭취가 문제라는 것, 그리고 불소도포 등 구강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내원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이날 치석제거와 잇솔질 교습을 받은 이후 우리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며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았다.

이 환자는 왜 이렇게 구강 건강이 악화되었을까? 의료급여 1종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근로무능력세대, 107개 희귀난치성질환자가 속한 세대, 시설수급권자, 행려환자 등이 수급권자가 되는 것으로, 저소득 국민의 의료를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부조제도이다. 2011년 현재 약 108만 명 정도가 된다. 전체 인구의 2~3%의 정말 가난한 국민이다. 필자의 병원이 있는 성남 본시가지의 경우 저소득층의 비율이 매우 높으며, 의료급여 대상 어린이들은 조손가정이거나 한부모가정, 보호자가 질병 등의 이유로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1) 가난하면 구강 건강에 대해 관심이 적다

이 환자는 아마도 청소년기를 이런 처지에서 살았을 것이다. 보호자가 아동의 구강 건강을 관리해주고 문제가 있을 때 치과에 가도록 조치해주지 못했을 것이고, 아동은 극심하게 아프지 않으면 굳이 무서운 치과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아동청소년기의 치과 치료는 아동청소년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나 보호자가 병원을 찾아 치료 받도록 조치해주는 등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가정에 결손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힘들면 아이의 치아에 대한 사소한 불편(음식이 껴요, 찬 것 먹으면 시려요 등)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치료를 미루게 된다.

2) 가난하면 치료를 포기한다

어쩌면 몇 번 치과를 찾았을 지도 모른다. 치료해야 할 충치가 많았을 것이고, 몇 개는 씌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의료급여 환자는 건강보험 치료는 거의 무료이나, 이를 씌우는 것은 건강보험 적용이 전혀 되지 않으며, 충치 치료의 경우에도 어금니 충치 치료에 쓰이는 금인레이나 앞니 충치 치료에 주로 쓰이는 광중합복합레진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환자의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액수의 돈이 든다는 ‘견적’을 받았을 것이고, 환자는 아마도 아픈 것만 해결하고 치과에 다시 가지 않았을 것이다.

3) 가난하면 충치에 취약하다

얼굴 예쁜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이 환자도 얼굴을 예쁘게 하는 데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그런 환자는 예쁜 치아를 갖기 위해 이를 닦는 데도 신경을 상당히 쓴다. 그런데 이를 잘 닦는 것만으로 충치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환자의 경우 충치의 결정적인 주범은 ‘단 음식’이다. 가난한 가정일수록 고기는 물론 과일과 야채의 소비가 적고, 싸게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의 소비가 많다. 이들 음식은 자극적이고 달고, 청량음료까지 소비하게 만든다. 게다가 가난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단 음식을 더 자주 섭취하게끔 한다. 단 음식과 청량음료는 중독처럼 습관이 된다. 결국, 가난은 식습관이라는 통로를 통해 충치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4) 어려서 가난하면 성인이 되어도 구강 건강 상태가 나쁘다

어려서 가난으로 취약해진 구강 건강 상태는 성인이 되어도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워진 한국사회에서 저소득층이 중위 이상의 소득계층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저소득층이면 보철 등 비급여 치료 때문에 여전히 치과 치료를 포기하여 구강 건강을 악화시키기 쉽다. 이 환자의 경우 ‘바쁘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또한 충치가 생겨서 치료를 하거나 뽑거나 했다면, 그 상태가 변하지 않고 유지되면 좋겠지만 치료한 재료가 탈락하거나 깨지거나 치료한 주위로 또 충치가 생기기 쉽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그 아이는 이렇게 평생 고통을 받고 살아야 한다.

통계로 확인해 본 구강 건강의 불평등

독자들에겐 조금 머리가 아플지 모르겠으나 앞에서 필자가 이야기한 것들이 사실임을 알려주는 최근의 논문과 보도에서 나온 통계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표 1)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른 치아우식 유병률

사회경제적 위치

6세~11세 아동 영구치

12-18세 청소년 영구치

19~64세 성인 영구치

65세 이상 노인 영구치

1- 하위

11.0

41.4

43.6

32.4

2

10.5

34.1

38.7

30.9

3

7.2

27.2

35.3

30.6

4 - 상위

5.5

27.1

29.1

24.5

(출처; 신보미, 구강 건강 불평등에 대한 측정도구별 특성 비교. 강릉원주대학교, 2013년)

치아우식 유병률이란 현재 치료되지 않는 충치 치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인데, 치료를 했거나 뽑은 치아는 제외가 된다. 대개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고, 뽑은 이가 많아지게 되는 노인이 되면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위의 표를 보면, 충치를 가진 사람의 수가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늘어나게 된다. 아동의 경우 최상위계층 아동은 100명중 5.5명이 치료하지 않은 충치를 갖고 있으나 최하위계층은 100명중 11명이 치료하지 않은 충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청소년, 성인, 노인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노인에게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저소득층의 노인들이 충치를 다 뽑고 틀니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표 2) 소득분위별 치면열구전색 건수(2011년 1월~2013년 8월)

분위별

실수진자

지급건수

비율

최하1분위

194019

435400

12.8%

2분위

133745

300680

8.9%

3분위

208178

465700

13.7%

4분위

408514

904407

26.6%

최상5분위

580699

1288644

38.0%

(출처: 김미희 의원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출 자료 분석)

아동기의 충치가 문제가 되면, 충치예방을 위한 치료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충치예방의 대표적인 치료방법이 치면열구전색이다. 치아홈메우기라고도 하는데, 어금니 등의 씹는 면의 깊은 홈에 충치가 잘 생기므로 여기를 흐름성이 좋은 레진으로 메꾸는 치료법이다. 의료급여 대상자와 농어촌 어린이를 대상으로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국가사업으로 해오던 것을 2010년 11월부터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위의 표에서 보듯 치아홈메우기의 이용실태가 소득분위별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하위 1,2,3분위에 비해 상위 4,5분위의 건수가 확연히 높은데, 하위 2분위에 비해 최상위 5분위는 4배가 넘은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하위 어린이의 경우 이미 충치가 시작되어 치아홈메우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며,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치과 방문율 자체가 낮을 것이고, 치아홈메우기를 할 때의 본인부담금(개당 약 1만원 가량)이 부담되어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 이렇게 소득별 불평등을 보인다면, 하위계층의 이용률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구강 건강의 불평등의 해결을 위해

이렇듯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구강 건강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비롯하여 치과계와 시민단체들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강 건강의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또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수돗물 불소화사업’이다. 수돗물이 공급되는 곳이라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충치예방 효과가 있어, 결과적으로 구강 건강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사업이다. 물론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는 다른 방식의 불소 이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치과의사가 없는 무치의촌에 치과의사를 배치하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우리나라는 공중보건 치과의사를 치과가 없는 지역의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배치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하고 실런트와 불소도포 등의 충치예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중보건 치과의사가 부족해서 제대로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복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닌, 정규직 채용을 통해 공중보건 치과의사를 확보하고, 공공 치과 의료를 확대하고 비보험 치료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지원을 해서 저소득층의 치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적어도 임계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시기에는 치과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동청소년 시기에는 치과 진료를 받는데 어떠한 경제적 장애도 배제하기 위해 본인부담을 완전히 없애고, 주치의제도로 정기적인 구강검진과 교육, 위험요인 제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인 구강검진을 의무화해서 성인의 경우에도 구강검진과 치주병 예방을 위한 치석 제거 등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비용부담이 적게 해서 조기에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본인부담률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보통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일반적인 치료에서는 전체 의료비용의 30%를 환자 본인이 부담하며, 노인틀니의 경우에는 50%까지 부담하기도 한다. 치과 치료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본인부담률은 너무 높은 편이다. 우리 국민이 치과 의료를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부담률을 크게 낮추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차 복지국가가 되면 구강 건강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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