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중독’이야.
문제는 ‘중독’이야.
  • 양영희(하중초 교사)
  • 승인 2015.06.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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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중독 서평(에른스트 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율리시즈)

‘왜 죽도록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가?’
책 표지의 언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죽도록 노력하는 것은 옳은가?’로 표현을 수정하고 싶다. 앞으로만 달려가도록 셋팅된 로봇처럼 우리는 달려왔고, 그런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통째로 어느 순간 쾅하고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 것만 같다. 메르스로 전국이 얼어버린 것 같은 대한민국의 공기는 마스크와 손세정제 같은 부실한 도구들을 그대로 통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많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평소엔 TV에 나와 자신들의 지식과 견해를 밝히더니 이렇게 전문가가 필요할 땐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마침 읽고 있는 ‘노력중독’에서 저자들은 전문가를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전문가가 생긴 이후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그보다 미심쩍은 전문가들의 말을 더 따르게 되었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인간이 진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현명해졌는가? ’라고 자문한 뒤 그렇지 않다고 역설한다. 저자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열심히’를 강요하는 흐름에 떠밀려 우리는 직관적 지식, 자기통제 능력, 인간다운 삶의 조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생존 기술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모른 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수용하라는 것, 그리하여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느림과 휴식, 불완전함을 수용하라’고 얘기한다. 또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고 있는 인간들을 지적하며 인간 능력은 무한하게 확장할 수 없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컴퓨터의 신속한 거래방식은 이 사회에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또 이 이 사회에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속도는 집단적 사고만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고도 어리석게 만든다. 더 많은 것을 향한 표면적 사냥에만 매진하다 보면 진정한 즐거움과 흥미, 그리고 가치를 잃어버린다. 시간의 속도와 압력이 지나치게 되면 모두가 극도의 무기력 상태, 즉 번아웃 증후군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바쁜 것 같아도 사실 생산적 활동은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다름없다. 지나치게 패턴화된 행동으로 바쁘다보니 결국 쓸데없는 행동만 한다. 이는 극도의 무기력 상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아무런 의미 없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이 미친 듯한 시나리오를 멈추어야 한다." (본문 중)

또 ‘시간도둑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시간에 삼켜지는 지름길이므로 정보의 산사태에서 도망치기를 통한 시간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친구가 많으면 좋다고 여긴다. 그래서 몸으로 만나는 친구 말고 페이스북의 친구들까지 자신을 돋보일 장치로 치장한다. 그리고 그 숫자와 영향력을 높이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를 ‘친구중독’이라 경고한다. 인간의 두뇌는 150명의 사람과 관계 맺을 용량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이상의 숫자는 실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영역 밖의 허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숫자에 매달린다면 그는 얼굴 없는 사람들의 무리들과 기억할 수 없는 다수를 허상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사람은 외로워진다. 그리고 외로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데 ‘사회적 관계가 없다는 것은 하루에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균형을 갖추며 친구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많다고 느낀 많은 사람들이 진짜 곁을 내주는 관계인가? 아니면 외로움을 포장해줄 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지만 저자들이 말한 ‘마음이론’은 오늘날 학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교사들은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노력중독’에 따르면 그 아이들은 마음이 결핍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훈련이 필요할 때 무조건 떠받들어준 양육태도가 낳은 결핍된 마음만 있는 아이들인 것이다. 온 가족이 우주의 중심으로 키워서 공동체의 부분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느낌만 받은 아이들, 한 번도 누군가의 관점을 헤아려보지 않은 아이들은 상대의 행동패턴을 예측할 배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두뇌는 도전을 받는 영역만 발전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어떤 두뇌를 자극했는가?
책, 독서는 지식인의 표상처럼 되어있는 우리들에게 저자들은 독서중독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책벌레인 저자의 예를 들며 매일 100페이지 이상 독서를 한 결과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직접경험들, 잃어버린 감각들, 잃어버린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상들’ 을 놓쳤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점이 훨씬 좁아졌음을 고백한다. 그러니 간접경험 말고 진짜 세상을 만나고 직접 대화를 하라고 권한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이 들으면 좋아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독일최고의 뇌 과학자 에른스트 푀펠과 상담치료 전문가인 베아트리체 바그너 두 사람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뿌리들로 ‘넘쳐나는 지식, 빠른 속도, 잘못된 관점, 너무 많은 친구, 완벽하려는 강박, 전문가에 대한 맹신, 독서중독’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음의 출발과 끝은 어쩌면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욕망들은 서로 키 재기를 하며 자가 증식을 멈추지 않고 결국은 우리를 주저앉히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 2015.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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