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더 이상 장작 난로는 낭만이 아니다.
내게 더 이상 장작 난로는 낭만이 아니다.
  • 저녁햇살
  • 승인 2015.11.10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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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이야기

숲, 나무, 그리고 사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숲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했다. 날마다 달라지는 잎들의 빛깔도 보고 새들이 아침식사로 분주한 모습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반짝이는 햇살은 숲에 닿아 날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을 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그 바람타고 노래하듯 흔들리는 나뭇잎들도 아름다웠다. 숲은 매일 이런 선물을 안겼고 아픈 나를 치유했다.

그 모든 숲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벌거숭이가 된 것 같다. 저렇게 깨끗하게 밀어버릴 수가 있나? 산과 작은 개울물이 어우러져 맘에 쏙 들었던 이 마을에 몇 년 전부터 벌목이 한창이다. 먼 산을 시작으로 작년과 올해는 마을 안쪽까지 다 밀어버렸다. 어르신들께 말씀드려도 소용없다. 오히려 모두가 같은 성씨를 쓰는 마을인 탓에 서로를 감싼다. 심지어 나무를 다 잘라버리니 시원하다고 말씀들을 하시기도 한다. 50~60년 이상 길러온 나무를 이렇게 순서 없이 밀어버리도록 허가할 수 있는 게 법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공무원은 벌목업자를 만나 친절하게 절차를 안내한다. 산주인은 산을 통째로 업자에게 넘기고 돈을 받는다. 벌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돈이 되지 않는 작은 나무들까지 다 밀어버리고 길을 낸다. 큰 차가 작업한 나무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자른 나무가 숲이 되려면 내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다. 다시는 그전의 숲을 이 마을에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나의 슬픔과 안타까움은 별로 동의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숲이건 물이건 내 것이 아니면 누구도 말하지 않는, 말할 수 없는 분위기는 가슴 답답하게 한다.

이제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다. 수십 년을 살던 나무를 자르고 그곳에 서식하던 온갖 동물들도 다 사라졌다. 고라니, 너구리, 솔개, 까마귀, 박새, 산비둘기, 참새 등 여러 새들과 다람쥐 같은 셀 수 도 없는 숲의 가족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것들은 내 기억에만 있을 뿐이다. 한 달 가까이 기계굉음만 들리고 우리 삶터는 그야말로 허허롭고 상막해졌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나라의 사유재산권으로 보호된다.

벌목과정에서 나오는 소음과 자른 나무들을 실어 나르며 발생하는 먼지와 위험도 모두 마을 주민이 감당하는 몫이다. 어디서도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함을 말하는 이를 본 적도 없다. 산과 연결된 집이 우리나라 산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법은 거기 사는 주민과 주택을 보호하는 장치는 없나보다.

밀양 싸움과정에서 여러 개인 사정으로 밀양에 새 삶터를 잡았던 사람들이 겪는 아픔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디서도 안전하지 않음을 여기서 또 확인할 뿐이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작은 산마을에서 이렇게 덩그러니 집들만 남기고 벌거숭이가 되어도 넋 놓고 있어야만 하니 말이다. 갈 곳 잃고 울어대는 새들과 영영 모습을 감추고 만 여러 산 생명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이렇게 마구 흥분하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소비해온 나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땔감으로 왔을 것 아닌가? 나부터 그 많은 숲들을 파괴한 장본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화석연료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우리가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나무와 상관없이 겨울을 잘 지낼 방법은 무엇일까? 집안에 태양광을 설치했지만 그걸로 따뜻하게 지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발이 시려 울 정도로 난방연료를 아끼고 추우면 회관에 같이 모여 몸을 녹이는 어르신들과 부모님 세대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내게 더 이상 장작 난로는 낭만이 아니다. 타들어가는 나무들은 이제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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