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숲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했다. 날마다 달라지는 잎들의 빛깔도 보고 새들이 아침식사로 분주한 모습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반짝이는 햇살은 숲에 닿아 날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을 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그 바람타고 노래하듯 흔들리는 나뭇잎들도 아름다웠다. 숲은 매일 이런 선물을 안겼고 아픈 나를 치유했다.
그 모든 숲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벌거숭이가 된 것 같다. 저렇게 깨끗하게 밀어버릴 수가 있나? 산과 작은 개울물이 어우러져 맘에 쏙 들었던 이 마을에 몇 년 전부터 벌목이 한창이다. 먼 산을 시작으로 작년과 올해는 마을 안쪽까지 다 밀어버렸다. 어르신들께 말씀드려도 소용없다. 오히려 모두가 같은 성씨를 쓰는 마을인 탓에 서로를 감싼다. 심지어 나무를 다 잘라버리니 시원하다고 말씀들을 하시기도 한다. 50~60년 이상 길러온 나무를 이렇게 순서 없이 밀어버리도록 허가할 수 있는 게 법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공무원은 벌목업자를 만나 친절하게 절차를 안내한다. 산주인은 산을 통째로 업자에게 넘기고 돈을 받는다. 벌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돈이 되지 않는 작은 나무들까지 다 밀어버리고 길을 낸다. 큰 차가 작업한 나무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자른 나무가 숲이 되려면 내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다. 다시는 그전의 숲을 이 마을에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나의 슬픔과 안타까움은 별로 동의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숲이건 물이건 내 것이 아니면 누구도 말하지 않는, 말할 수 없는 분위기는 가슴 답답하게 한다.
이제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다. 수십 년을 살던 나무를 자르고 그곳에 서식하던 온갖 동물들도 다 사라졌다. 고라니, 너구리, 솔개, 까마귀, 박새, 산비둘기, 참새 등 여러 새들과 다람쥐 같은 셀 수 도 없는 숲의 가족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것들은 내 기억에만 있을 뿐이다. 한 달 가까이 기계굉음만 들리고 우리 삶터는 그야말로 허허롭고 상막해졌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나라의 사유재산권으로 보호된다.
벌목과정에서 나오는 소음과 자른 나무들을 실어 나르며 발생하는 먼지와 위험도 모두 마을 주민이 감당하는 몫이다. 어디서도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함을 말하는 이를 본 적도 없다. 산과 연결된 집이 우리나라 산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법은 거기 사는 주민과 주택을 보호하는 장치는 없나보다.
밀양 싸움과정에서 여러 개인 사정으로 밀양에 새 삶터를 잡았던 사람들이 겪는 아픔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디서도 안전하지 않음을 여기서 또 확인할 뿐이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작은 산마을에서 이렇게 덩그러니 집들만 남기고 벌거숭이가 되어도 넋 놓고 있어야만 하니 말이다. 갈 곳 잃고 울어대는 새들과 영영 모습을 감추고 만 여러 산 생명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이렇게 마구 흥분하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소비해온 나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땔감으로 왔을 것 아닌가? 나부터 그 많은 숲들을 파괴한 장본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화석연료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우리가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나무와 상관없이 겨울을 잘 지낼 방법은 무엇일까? 집안에 태양광을 설치했지만 그걸로 따뜻하게 지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발이 시려 울 정도로 난방연료를 아끼고 추우면 회관에 같이 모여 몸을 녹이는 어르신들과 부모님 세대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내게 더 이상 장작 난로는 낭만이 아니다. 타들어가는 나무들은 이제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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