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눈물
  • 양영희(교사)
  • 승인 2015.11.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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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양영희의 길위에 서서_ 교육단상

국어시간에 ‘작품 속 인물의 마음 알기’ 수업을 정채봉의 ‘오세암’이란 애니메이션으로 진행하고 아이들에게 소감문을 쓰게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몰입해서 영화를 보았고 다들 나름대로의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 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의 글을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오세암을 보는 내내 가슴 가득 슬픔이 밀려왔고 자신의 그런 감정변화가 너무 낯설고 놀라웠다고 했다. 그 아이는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내내 노력했지만 가슴 속으론 많이 울었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다른 사람의 슬픔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슬픔에 연결시키는지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썼다. 평소 아주 반듯하고 예의바른 그 아이는 문학이 주는 놀라운 힘에 탄복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만의 일이 아닌 직접경험을 한 것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난다. 또 소수 몇몇 아이들이 장악한 교실의 소음과 과격한 행동에 동참하거나 거리를 두고 자신을 숨기는 아이들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아이들은 자신이 일으키는 감정의 폭력적 현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은 점점 벽을 둘러치며 자기 세계로 숨어들어간다. ‘아이들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른들은 중요하게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습득한 삶의 방식이다. 아이들은 늘 그날 공부한 것들을 체크 당하고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받으면 하루 일과가 완성된다. 학교와 학원, 그 외의 것들은 들어올 시간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작고 잔잔한 것들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PPT와 동영상이 수업에 쓰이면서 목소리와 책에 반응하는 정도가 낮아졌으며 곁에서 울리는 미소와 슬픔도 눈치 채지 못한다. 일상적으로 TV와 핸드폰 등을 통해 접한 강력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도 있다. 게임을 오래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언어가 난폭해지고 있으며 그런 태도들은 수업시간에도 툭툭 튀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무엇이 나를 정말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민감하게 체감한 것은 게임이 즐겁다는 것과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께 혼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말이 숱하게 떠다니지만 우리가 만든 환경에서는 자신의 감정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으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고 있다.

먹을 것이나 장난감등으로 사소한 싸움은 잘 하지만 공적인 상황에서는 진짜 분노할 줄 모르고 학교에서 숱하게 우는 눈물의 정체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매일 아이들은 교사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그 대부분이 내 이익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에 부합될 때까지 다른 친구들을 벌주라는 주문도 많다. 아이들 중에는 야단을 맞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쾌감을 맞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눈물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아이들이 진짜 만나야 될 친구들과 이웃, 친척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두 격리시키고 자연과도 차단시키며 달려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예쁜 것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분장한 모습 그 이상은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도 유아기를 넘어서지 못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드러나며 서로에게 일상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다. 저 멀리 놓고 와버린 그 마음을 살려내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매일 고통을 받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여 눈물 흘리는 걸 본 적 있는가? 동화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우리가 지금 아이에게 쥐어주어야 할 것은 문제집이 아니라 죽어있는 아이마음을 살려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막화되는 지구처럼 아이들 마음이 바짝 말라버리기 전에 말이다. 슬픔과 눈물은 바로 마음이 연결되는 과정이고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가 기댈 미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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