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에서 신문보기
탑골에서 신문보기
  • 저녁햇살
  • 승인 2015.11.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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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편지

탑골에 내려온 후 티브이도 잘 안보니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가 어렵다. 탑골살이 한달쯤 지난 뒤 서울에서 보던 신문을 끊고 여기서 볼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한겨레 본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증평지국을 연결해 준다. 구수한 사투리로 주소를 묻더니 시골은 지국에서 우편으로 발송한다고 안내한다. 난 그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방식이든 배달만 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신문을 시키고 일주일쯤 지나면서 지국에서 굳이 우편발송을 하는 까닭을 설명한 이유를 알게 됐다. 즉 시골마을에 우편배달부가 오는 길에 신문이 같이 오게 되는 방식이란다. 그건 배달시간을 약속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신문을 밤중에 보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탑골에서 신문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농부가 신문이 배달되는 첫 날 우편배달부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은 약간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여기 신문 봐요?’하더란다. 그 질문은 당신들의 신문신청으로 나의 일이 늘었음을 불평하는 것으로 우린 해석이 됐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마을에 우편물이 하나도 없어도 매일 이곳에 와야 한다는 얘기니까. 그러나 농부와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 우리 한 집 때문에 고생하시는 그분이 미안해서 도둑이 제발 저리듯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며칠을 그 분을 만나려고 기다렸다. 그런데 오시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매번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을 알 수 없으니 신문을 꺼내려고 몇 번씩 우체통을 열어봤다. 그렇게 빈손 짓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어두워지기도 하고 밤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건 신문이 오지 않은 날은 없었다는 것이다. 얼굴을 알 수 없는 배달부님께 고마운 마음이 깊어지던 어느 날 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멀리서 우체부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뛰어가서 인사를 했다. ‘매일 신문을 가져다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랬더니 그분은 이미 나를 알고 계신 듯 말씀 하셨다.
‘언제 오셨어요? 도시에서 직장 다니시지 않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했더니
‘다 알지요. 이 마을에 오래 다녔거든요. 이름만 보다가 이렇게 처음 뵙네요.’ 하신다.
나는 신기해서 웃으며 말했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셔서 죄송하고 매일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했더니
‘아니예요. 제 일인데요 뭘. 신문은 하루는 오전에 하루는 오후에 배달해요. 그리고 여기 형님은 옛날부터 잘 알아요.’
하신다.

그제야 나는 우체통을 아무리 열어도 신문이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 농부를 형님으로 지칭하는 그분이 참 정답게 느껴졌다. 그분은 단순히 우편물만 내려놓고 가는게 아니라 마을을 마음의 안테나로 감지하고 다니는 듯 했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가족은 어떤지 다 아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분은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풍경의 주소까지 새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잠시 기다리시라 하고 사과말랭이를 조금 챙겨서 갖다 드렸다. 커피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다음 마을에 가셔야 한단다. 다시 오토바이에 오르는 그분께 이렇게 말했다.
‘농사는 안 지으시죠? 저희가 농사지은 것들 제가 우체통에 넣어 놓으면 뭐든지 가져가셔 드셔요’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며 탑골을 떠나셨다. 신문으로 부드러운 끈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탑골에 그분이 가져온 것은 신문만이 아니었다. 난 이런 순간이 참 좋다.        (20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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