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의 비밀 이야기
그 아이와의 비밀 이야기
  • 양영희
  • 승인 2015.12.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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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세이] 양영희의 길 위에 서서

사람들은 ‘일희일비’ 하지 말라지만 난 늘 쉽게 흥분하고 엄청난 감정의 몰입으로 쉽게 지쳐 쓰러진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작은 일에도 내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는 자신이 싫지만은 않다. 요즘 웃을 일 없던 내게 한 통의 문자가 나를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문자 하나로 하늘을 날 듯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게 왜 나쁜 거지? 나는 이렇게 기분이 좋을 때만 내 성격이 맘에 든다.

두 달 전쯤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주말 보낸 이야기 시간에 누군가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온 이야길 했다. 그때 시골에서 본 것들을 얘기하는데 집에서 키우는 닭과 달걀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닭이 바로 낳은 알을 만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5명이 넘지 않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닭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 알은 뭔가 신성한 느낌마저 든다고, 그 온기를 꼭 너희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희들은 닭이나 알을 먹는 것으로만 알지만 그것은 생명의 시작이라고. 그리고 어린 시절 아침마다 닭이 낳은 알을 꺼내 그 따뜻한 알을 한참 손에 가지고 있었던 일, 닭들이 온 마당을 걸어 다니며 먹이를 먹던 일, 그 닭들이 가끔은 날기를 시도하다 넘어지던 이야기까지 해 주었다. 또 귀한 손님이 올 때만 한 마리씩 잡아 대접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닭 한 마리를 가마솥에 넣어 삶은 후 대가족이 기름기 뜬 국물만 먹어도 여름을 날 수 있었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때 남자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자신은 생명을 키워보는 게 소원이라고, 집에 부화기도 있는데 유정란을 못 구해 병아리를 키우고 싶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이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시골집에 갔을 때 유정란을 구할 곳을 알아봤다. 마침 느티울행복한 학교에서 닭을 키우고 있었고 닭장 안에는 10개도 넘는 유정란이 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느티울 학교로 가서 허락을 받고 조심스럽게 알을 닭장에서 꺼내고 다 먹은 빈 계란판에 넣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져왔다. 그때는 여름이라 버스 안에 냉방을 하고 있었는데 알들이 추울까봐 수건으로 감싸며 정성껏 생명의 씨앗을 지키려 노력하며 운반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건넬 10개의 알 중 어느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그걸 월요일 아침에 그 남자아이를 살짝 불러서 주었다. 그 뒤로 그 아이와 나만의 비밀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한 달 정도의 부화기간이 걸린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매일 속삭였다.
“잘돼가고 있니?”
“네 선생님! 조금씩 돼가고 있어요.”
“와! 빨리 됐으면 좋겠다.”
“저두요”
“또 말해줘”
“네”

주변 아이들이 궁금해 했지만 우린 비밀을 지켰다. 보통 아이들은 새로운 게 있으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길 좋아하는데 이 아인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때 이 12살 자리 남자 아이가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한 달 쯤 후 병원치료를 받고 나오는 우울한 나에게 병아리 사진과 함께 문자가 왔다. 나는 마치 내 생명이라도 얻은 것처럼 기뻤다.
“병아리 한 마리 태어나서 잘 살고 있어요.”
“병아리가 태어났구나!
신기하고
예뻐라
부디 닭이 될 때까지 잘 키워봐”
“네 ! 선생님도 잘 지내세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병아리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알이나 병아리만 보아도 입 무거운 그 아이가 생각날 것이다. 사춘기를 조금은 거칠게 맞은 아이인데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내면이 이렇게 곱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지금도 아이가 두 손을 모아 병아리를 받쳐 든 사진이 머릿속에서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정성스런 생명에 대한 마음과 경험은 그 아이에게도 오래 남을 것이다. 이글을 쓰는데 어디선가 ‘삐약’ 소리와 함께 아이가 살금살금 손을 뻗으며 뒤따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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