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나래 윤소맘들, ‘된장녀(?)’되다.
광명나래 윤소맘들, ‘된장녀(?)’되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16.03.03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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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을 담그는 도심 속 생협 주부들의 현장을 찾아서.

된장은 좋은 메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제목을 뽑아봅니다. 많이 놀라셨죠. ‘된장녀’는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언어로 사용되죠. 이번에 사용하는 된장녀 개념은 ‘언어세탁’을 통해, ‘된장을 직접 만들어 먹는 아름다운 주부’라고 자칭 새롭게 개념정의를 제안해봅니다. 적어도 이 제목에서 된장녀는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도 어색하죠. 이미 옷이 입혀진 개념이니까요. 사실, 글을 읽도록 유도하기위한 ‘낚시질’ 용어이기도 합니다. 심했나요. 널리 이해를 바라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윤명숙 도사로부터 된장 담기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2016년3월3일. 광명나래생협 조합원 된장 담그는 날. 삼삼한 하루의 시작이어야 하는데, 하루 시작이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어젯밤 뒷골목에서 마신 동네 아저씨들과 막걸리 한잔의 숙취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블로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객(客)으로 구경 간 아저씨인 저도 무척이나 된장을 담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이미 정보가 흘러 다니는 것을 알았는데, 왜 건성으로 본 것 일까하는 자책이 저절로 생겼다면, 믿을까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일년 먹을 된장을 직접 담그는 것이니, ‘일석이조’입니다.

광명나래생협에서 된장담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부터입니다. 지난해 나눔위원회가 생겼고, 나눔위원장을 맡았던 윤명숙 조합원이 된장 담기를 제안하고 진행했습니다. 지난해 25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단 젊은 조합원 주부들이 대거 참여했고,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경우가 많아 진행자는 곤혹을 치렀다는 후문. 이를 반면교사 삼아 윤명숙 도사(제가 지켜보니 된장 담기의 고수였습니다. 그래서 ‘도사’라고 칭해봅니다.)가 올해 된장담기는 소수정예로 진행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진행은 너무 수월하다고 방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된장 담기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얼굴도 예쁘고 맘씨도 착한 조합원들만이 참여가 가능했다며, 스스로 자격조건을 높여 놓습니다. 너스레입니다.

지난해 광명나래 조합원들이 담가 놓은 된장독들.

오늘 작업은 지난 3월1일 사전 교육에 이어 직접 실행하는 단계입니다. 10시에 만나 차 한잔 나누며 생활나눔을 30분 정도 가졌습니다. 광명과 이웃한 부천지역에서 진행되는 의료생협 이야기도 잠깐이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윤 도사는 오늘 참가자들에게 새벽 5시30분에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마음을 차분하고 정갈하게 하는 자세를 주문한 것입니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아침 잔소리도 금물입니다. 부정한 기운으로 된장을 담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된장을 담는 동안에도 가능한 말을 삼가는 태도를 주문했답니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묻기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일하는 맛이 사람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그런 마음으로 장을 담갔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윤명숙 도사는 과거 음식점을 하면서 된장을 직접 담그는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러 곳의 메주를 사용해 봤지만, 올해 아이쿱생협을 통해 공수해 온 메주가 일품이라고 합니다. 윤 도사는 메주의 한 가운데 즉, 둥글게 검은빛을 띠고 있는 부분을 가리키며 “곶감처럼 익은 듯 보이는 이런 메주가 잘 띠워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메주가 도착한 것입니다. 아파트에서 직접 된장을 만들어 먹는 이들도 있지만,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은 햇빛과 충분한 바람입니다. 아파트 베란다는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충분한 햇빛, 바람이 없으면 썩고 맙니다. 어찌해 성공했다 해도 제 맛이 안 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반면 광명나래 장독대는 도심 속 옥상 한 복판입니다. 햇빛도 좋고, 바람도 충분합니다. 안세희 조합원이 기꺼이 건물의 옥상을 광명나래아이쿱 옥상텃밭으로 제공해, 공간을 공유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담근 조합원들의 된장 장독대가 제법 폼을 잡고 서있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고추와 숯을 띄우면 장 담그기가 일단 끝난다.

실제 된장 담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준비해 놓은 소금물을 채로 거르고, 그 물을 장독에 붓습니다. 그 전에 메주를 장독에 넣고요. 각 가정 당 한 개의 장독에 메주 두말(10킬로그램), 소금물 40리터를 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추와 숯을 넣으면 끝입니다. 숯과 고추는 냄새와 잡균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골에서는 맛을 더하기 위해 ‘통깨’를 넣기도 한답니다. 이제 50~60일 정도 지나면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소금물에 부풀러진 메주가 된장이 되고, 검은색 물은 간장으로 걸러지는 원리입니다. 이 기간 동안 썩지 않고 잘 발효가 되는 것이 관건입니다. 쇠파리가 들러붙지 않도록 장독대를 깨끗하게 관리도 해야 하고, 적당하게 물의 양이 유지되도록 살피는 것도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된장 띠울 때 장독 뚜껑을 덮지 않은 채 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람, 햇볕이 잘 드는 대신 벌레 끼는 것을 막아야 하므로 아침, 저녁으로 살폈답니다. 지금은 통풍 유리 뚜껑이 있어 수월합니다. 이날 담은 된장을 직접 맛보는 것은 내년 이 맘 때쯤이라고 합니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기다리기 힘든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된장 담기를 마치고.

이날 참가한 조합원들은 대부분 된장 담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담다가 잘 안 돼, 참여한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김막자 조합원입니다. “집에서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이번에는 뿌듯합니다. 잘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두 달 후 보리 갈아 넣고, 내년 봄에는 먹을 수 있다니 좋습니다. 생협 2년차인데, 시중 된장 맛은 별로고. 생협 것이 맛있습니다.”
한영심 조합원은 남편에게 생색 좀 내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안동 출신이고, 시어머니가 해 주시던 된장 맛에 익숙했던 터였는데, 이번에 된장을 담는다고 하니까 남편이 제일 기대가 크더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시중 된장은 성에 안 차는 것이지요. “이번에 된장 해주고 큰소리 쳐서 반지하나 받아내겠다.”고 너스레입니다.
고추장을 담거나, 된장 담을 기회가 도시 주부들에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들이 전수해주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그래서일까요. 장 담그기를 마친 조합원들은 “장인의 반열에 드는 느낌이다. 나도 이런 것 담글 줄 알아”하고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겼답니다.

된장 담기는 처음이라는데.

오고가는 대화 속에는 며느리로서 살아가는 생활 이야기도 나옵니다. 된장을 많이 담는 조합원이 있는가 하면, 양을 적게 잡는 조합원도 있습니다. 시골집에서 가져다 먹는 경우입니다. 김장이나 된장을 직접 담을 줄 아는 것이 (시)어머니들에게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나 봅니다. 아직은 내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존재감을 갖는 것입니다. 며느리(딸)의 독립(?)이 자칫 서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이죠. 지난해 된장을 담가 놓은 조합원들의 장독에는 된장들이 충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올해도 무난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입니다. 그런데 유독 조혜주 조합원의 장독은 비어있습니다. 어머님이 와서 다 퍼갔다는 후문입니다. 절로 미소입니다.

윤명숙 도사는 구름산협동조합을 만들어 슬로비라는 도시락 배달 사업을 합니다. 도시락 반찬에 사용할 된장을 충분하게 담습니다. 된장을 팔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동료 조합원의 된장독을 관리해주는 일도 종종 합니다. 생협에서 만난 조합원이 언니동생보다 더 가까워진 경우입니다. 지난해 이어, 올해 만들어진 된장독들이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합니다. 된장을 담근 후 사람은 떠나고 가끔씩 들여다보겠지만, 장독대들은 서로 어깨동무하며 발효의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광명나래아이쿱생협 옥상텃밭에서 된장냄새가 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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