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도시에서 범죄예방의 답을 찾다.
복지도시에서 범죄예방의 답을 찾다.
  • 김현숙
  • 승인 2016.05.2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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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주)이엔건축사사무소 대표)
최근 강력범죄의 발생빈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경찰은 ‘피의자 인권’ 논란에도 불구하고 토막 살인범의 얼굴과 현장 검증 과정을 여과 없이 공개하고 있고, 언론도 아파트 물탱크에 유기된 시신으로 인해 한 달 동안이나 주민들이 시신 썩은 물을 마셨다는 등의 선정적 보도들을 경쟁 하듯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번화가로 유명한 강남역 인근의 화장실에서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 마” 살인이 벌어졌다.

특히 아동,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범죄인에 대한 강력한 추후 처벌만이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고 불안감을 저감시키는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들이 절실한 상황이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 제도의 도입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을 분석해 보면, 강도, 절도, 폭행 등의 사건들은 대부분 노상과 주거지 인근에서 발생한다(검찰청, 2015 범죄분석). 특히 폭력의 경우, 대부분 노상(38.7%)이나 주거지(10.9%)에서 발생하고, 성폭력도 주거지(17.6%)와 노상(16.6%)에서 주로 벌어진다. 즉 국민들의 일상생활 공간과 거주지 동선 내에서 각종 범죄가 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범죄의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건축학이나 도시계획 관련 학자들은 도시 환경의 적절한 설계와 효과적인 공간 이용으로 범죄의 불안감과 발생 범위를 줄이고 삶의 질을 증대시키는 기법을 ‘범죄 예방 환경 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로 구체화했다. 범죄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만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문제, 즉 ‘어느 곳, 어떤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리적 공간이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2000년대 초반 파리시 외곽에서도 범죄와 폭동이 상대적으로 잦았다. 그래서 주택단지를 재개발하거나 도시를 재건축할 때 범죄 예방과 관련된 도시 디자인이 중요한 이슈였다. 당시 그곳의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 환경 설계’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감시, 접근 통제, 공동체 강화' 등의 ‘범죄 예방 환경 설계’의 내용을 적용하는 것이 도시 설계나 건축의 일반적인 기준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건축법을 개정하여 다음과 같이 이런 내용들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범죄 예방과 안전한 생활환경의 조성을 위해 건축물과 건축설비 및 대지에 대한 기준을 고시할 수 있다(건축법 제53조 제2항). 재정비 촉진 계획은 수립 시 촉진사업 시행기간 동안 범죄 예방 대책을 포함해야 하며(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9조), 도시 기본 계획을 수립할 때도 범죄 예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9조). 이외에도 2016년 4월을 기준으로 10개의 광역 지자체와 52개 기초지자체에서 범죄 예방 도시 디자인 조례 제정이 이뤄져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런 기준이 현실에서 여전히 실효성이 없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2015년 4월 건축 기준 고시가 제정된 이후, 새로 건축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한 경우에만 기준에 따른 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준공 허가를 불허하는 근거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준 고시 이전에 설립된 건축물이나 공간은 이런 기준에 맞도록 시설을 보완하거나 개선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법률도 없고, 공공시설 외의 민간시설의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기준에 맞추도록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CCTV나 비상벨을 확대 설치하는 수준에 머문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의 실천 전략 1 : 자연감시와 활동의 활성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해 도시는 어떻게 계획되고 운영되어야 할까? 가장 먼저 고민되어야 할 것은 도시 공간의 이용자 모두가 서로 무의식적인 범죄의 목격자이자 감시자가 되는 ‘자연감시’의 제도화이다. 건물이나 시설물을 배치할 때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없애고 가시권을 최대화해서 각자가 해당 공간을 이동하거나 사용할 때 타인을 위해 감시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이나 도시의 공간을 사람이 은신하거나 숨을 수 없도록 계획해야 하고, 창문을 골목길과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한다. 담장은 투시형으로 설치하거나 높이를 낮게 해서 상시적으로 거리와 놀이터 등을 살필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담장 자체를 허물기도 해야 한다.

또한, 출입문 주변에는 직접조명을 설치하여 손님이 현관을 쉽게 찾고 거주자와 이웃 주민들이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주차장도 외부에 개방되도록 계획한다. 골목길은 보행자를 위한 조명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가급적이면 직선으로 계획한다. 가로는 적절한 보행 폭을 확보하고, 조경 수목 및 조명 시설은 적절한 크기와 간격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런 무의식적 상호 감시를 통한 범죄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간이 가능한 한 열려 있게 해야 하고, 보다 많은 거주민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건물과 도시의 공간은 최대한 이용될 수 있도록 설계 및 계획되어야 하고, 시설물들도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소위 ‘활동의 활성화’가 최대한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민들이 자주 이용할 수 있는 마을회관 등의 공간이나 놀이터 같은 시설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이들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거나 오가는 주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게 되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자연적인 감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버려진 자투리 공간을 작은 공원으로 기능하도록 조금만 변화를 주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고, 지역주민들이 벤치에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미국의 경우, 슬럼가의 빈 공터에 금을 긋고 벽에는 원을 그려 거리의 농구장으로 만들었더니 청소년들의 탈선과 범죄가 현격하게 줄었다. 이것이 경찰관을 추가 배치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좋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미 그 유효성은 학술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의 실천 전략 2 : 영역성의 강화와 접근 통제

범죄 예방 환경을 설계함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은 적절하게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통제’ 전략은 잠재적 범죄자를 경계하여 공간을 자연스럽게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출입문에 시건 장치 또는 보안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창문은 파손이나 훼손이 어려운 재질의 방범창을 설치하도록 한다. 특히, 건물 밖으로 노출된 가스배관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방범시설의 설치를 규정하고, 주택과 주택 사이의 이격 공간에는 출입통제 시설을 설치하도록 한다.

“발발이 범죄”라고 불리는 사건이 최근까지 연달아 발생하는 등 지역별로 상습 성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데, 이들의 주요 침입 경로가 가스 배관이나 주택 사이의 좁은 이격 공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사소한 기준만 적용했더라도 많은 여성들을 “발발이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접근을 통제한다는 것은 여러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해당 영역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경우는 접근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며, 또 어떤 경우는 적당하게 접근을 허용할 수도 완전히 개방할 수도 있다. 이때 도시공간의 모든 이용자에게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지역사회의 소속감을 제공하기 위해 공간들은 방어적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하나의 핵심적인 전략이 나오는 데, 그것은 바로 “영역성의 강화”이다.

예를 들자면, 골목길에서 주택이나 보행 공간, 가로 시설 및 조경 식재 공간이 분명하게 구분되도록 하거나 주택 주변과 골목길의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의 한 평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담장이나 벽면에 밝은 분위기를 위한 도색 또는 벽화를 적용하도록 하며, 정기적으로 이를 개?보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제도화한다. 또한 전봇대, 담장, 출입문 주변 등에 명료한 안내나 주소 표지판을 설치하거나 가로 시설물 및 건물 외관을 통일성 있게 계획하여 영역성을 확보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주민에게 소속감을 제공함으로써 일정 영역 내에서 심리적 안정을 부여해주고, 주거 영역 내에서 범죄의 발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의 실천 전략 3 : 유지와 관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범죄 예방 환경 설계’의 전략 중 하나는 ‘유지와 관리’이다. 시설이나 공간이 앞에서 언급한 전략들에 의거하여 제대로 설계되고 계획되고 배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게 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유지와 관리’를 위한 계획도 동시에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한 규제나 재정의 확보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유지와 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거주자들의 관심과 참여이다. 이런 요소들이 확보된다면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용이해질 것이며, 그들의 아이디어로 인해 시설과 공간 자체가 범죄 예방에 맞도록 지속적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이다.

범죄 예방 환경의 주체 : 거주민과 소규모 공동체 그리고 적극적 참여

범죄 예방을 유도하는 도시환경을 만들더라도, 실제로 범죄를 예방하는 구체적인 것은 바로 사람이다. 계획된 대로 거주민들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도시 디자인은 소용이 없다. 거주민들이 범죄 예방의 핵심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을 ‘우리 동네’라고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수만큼 들어서야 한다. 공간을 공유하고 동일 공간에서 활동을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감정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을이 중심이 되는 마을 공동체의 활성화로 자발적 의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앞서 제시한 범죄 예방을 위한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작업은 상대적으로 더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다양한 협동조합 등의 단체들이 형성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하는 것도 ‘우리 동네’에 대한 소속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공유 공간에서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물리적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우리’를 점진적으로 만들고 키워나갈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범죄 예방의 도움을 제공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복지국가의 도시와 ‘범죄 예방 환경 설계’

‘범죄로부터의 안전’은 국민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적인 권리이며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도시는 거주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기획, 설계,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밀집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은 자신의 내적 공간에 갇혀 교류 없이 생활한다. 반면 외부공간은 익명의 개방 공간으로서 관리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이는 범죄 발생의 가능성을 높이고, 상시적인 불안함을 낳고 있다.

이런 범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사회구성원 전체가 연대해서 서로의 복리와 행복을 보장해주는 정책을 도시라는 공간적 관할권 안에서 펼치는 “복지도시”가 해법이 될 수 있다. 절도 등의 생계형 범죄의 경우 복지국가에서는 그 발생률이 매우 낮다. 이들 복지국가의 도시에서는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노후소득 보장 등의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므로 생계형 범죄의 필요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강도나 살인 등의 강력 사건 범죄율도 복지국가의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복지국가는 복지도시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도시가 바로 복지도시다. 영유아의 양육 환경에서부터 초?중?고의 교육 환경이 문제아를 조기에 발견하여 범죄로 전환되지 않도록 지원?관리하는 프로그램들이 복지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생계형 범죄와 강력 범죄가 복지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발생하는 것은 도시의 외형이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고, 여성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계획되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 재개발을 부동산 투기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재건축을 용적률과 건폐율을 높여 임대나 분양 수익을 창출하는 용도로만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는 거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지내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범죄를 포함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안전망 역할을 하는 도시여야 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들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복지도시”여야 한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서로 연계되어 도시의 각종 안전망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정부도 국민의 안전 보장이라는 중요한 공적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 재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이것이 복지국가를 향한 시대적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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