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부추기는 세상에서 중심잡기
자기계발 부추기는 세상에서 중심잡기
  • 양영희
  • 승인 2016.10.31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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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건강 신드롬(칼 세데르스트림, 앙드레 스파이서/민들레)

잘 산다는 게 뭘까?
어릴 때부터 허약한 체질로 자주 아프고 학교를 못가는 날이 많았다. 밤새워 앓고 난 다음날이면 헤질녁에야 마루 끝에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식구들은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야지’라고 장난을 했고 난 그 말에 학교 갈 준비를 하기도 했었다. 어스름한 빛이 아침인지 저녁이 오는지 구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돼서도 몸은 늘 성치 못했고 무리하면 정직하게 그만큼의 휴식을 취할 때까지 힘겨웠다. 그러나 나는 몸을 위해 좋은 것만 먹고 수많은 보험에 가입하고 건강진단을 받으며 몸에 투자하는 삶을 살진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냥 편하게 나를 내버려둘 생각이다. 그러나 주변에선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바로 병원에 가라고 한다. 누구도 쉬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빨리 치료하고 나와서 일에 복귀하라’는 듯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병이 어디 부품 교체하듯 매뉴얼대로 병원의 시스템을 따르면 되는 것으로 모두들 인식하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난 누구나 자신의 타고난 본성이나 체질, 현재의 여러 환경에 의해 수시로 아프고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는 생의 일부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몸에 그 어떤 부작용도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매년 건강검사를 하고 몸 안을 샅샅이 뒤져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사실은 병원이 넘칠 듯 환자는 많아지고 병원이나 의사의 수만큼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병에 노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다. 그렇게 될 때가지 뭐했냐고. 이제 병을 얻은 사람은 주변의 눈초리까지 동시에 받아야 한다.

티브이와 인터넷을 보면 먹방과 날씬한 몸, 동안, 성형미인, 마음챙김, 코칭, 등이 판을 친다. 수많은 먹방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 셰프가 탄생하고 그 영향을 받아 아이들의 꿈이 셰프로 변한지 오래다. 건강신드롬에선 이런 현상과 그 속에 숨은 이데올로기를 분석해내고 있다.

죽어라 힘든 노동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자신의 상품성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투한다. 힘든 일들, 부정적 스트레스 들은 힐링과 마음 챙김으로 잠재우려 하고 없는 시간 속에서도 몸에 좋은 것들에 돈과 정성을 기울인다. 장시간노동 후에도 계속되는 자기계발과 몸 챙김, 마음 챙김의 스케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돌볼 틈이 없고 이웃도 생각할 수 없으며 세상의 문제는 더더욱 먼 일이 된다. 나는 늘 왜 주변사람 모두가 시간이 없고 바빠야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그리고 바쁘게 사는 일이 마치 잘 사는 것처럼 인식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말이다. 물론 나의 과거도 똑같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그런 삶은 제도와 구조에서 생긴 문제를 느낄 여유를 주지 않으며 다른 것들은 모두 자신을 귀찮게 혹은 번거롭게 하는 일들로 치부된다.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한 처지의 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낙오자로 인식할 뿐이다. 사회문제나 빈민, 소수자, 약자들이 설 땅은 사라지며 이런 탈정치화의 행보는 모두에게 재앙의 수준으로 환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잃고 이웃을 잃은 우리주변 곳곳에 여러 형태의 혐오가 난무하다

수치화한 자기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잡을 수 없는 ‘건강과 행복’이란 두 개의 파이를 머릿속에서만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웰니스 신드롬에서는 모든 문제를 개인화하는, 즉 마음만 먹으면 인간은 자신의 몸의 건강을 잘 지킬 수 있고 부정적 생각,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으며 더 나은 자기계발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심어준다고 분석한다. 그러니 자신의 육체를 돌보지 않은 사람, 행복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도 자기 탓인 것이다. 끝없는 자기선택이 강요되고 선택은 편을 가르며 선과 악으로 대치되기도 한다. 흡연자, 비만 문제처럼. 그리고 이런 선택의 개별화, 도덕화 문제는 탈정치화로 연결되어 사회구조와 자원의 공정한 분배, 약자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기업가처럼 사고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려는 몸과 사고를 가진 긍정적이고 유쾌한 모래알 같은 개인만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과연 누구를 위해 봉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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