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배제 보수신당이 필요하다.
친박 배제 보수신당이 필요하다.
  • 홍기표(시사평론가)
  • 승인 2016.11.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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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시사평론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점점 지지기반 복구 불능의 상태를 향해 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은 3주 연속 5%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11월 15~17일 사흘간 전국 성인 1천7명에게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대 1%, 30대 0%, 40대 4%, 50대 9%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지지층 복원력을 상실하다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31%, 새누리당 15%, 국민의당 14%를 기록했다. 새누리당이 의석수로는 1/3도 안 되는 국민의당과 사실상 같은 지지율을 기록한 셈이다. 수도권으로 국한시켜 보면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에 밀려 이미 제3당으로 전락했다. 서울의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11%, 국민의당 14%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순식간에 떨어지긴 했지만 현직 대통령 지지율 5%라는 수치는 더 이상 떨어지기 힘든 ‘바닥 중의 바닥’이기 때문에 조만간 미세 수준에서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3주째 5%에 머물고 있다. 특정 세대나 지역에서 0%라는 통계상으로 좀체 보기 힘든 수치까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기간에 회복될 것으로 볼 만한 근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첫째, 앞으로도 추가로 터져 나올 국정농단의 증거와 소재들이 무궁무진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등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서 어떤 이슈가 터질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언론의 경쟁적 취재에 의해 지금까지 불거져 나온 문제들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인데, 여기에 이슈 자체의 번식력이 작동 중이다.

최순실 이슈는 불거진 뒤로 계속 자체 진화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수많은 ‘새끼 이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검법의 통과로 향후 120일간 특검이 정치의 중심이 될 상황이 높아졌다는 사정도 고려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청와대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반전될 만한 계기를 예상하기 힘들다.

둘째, 청와대의 기류가 ‘반성’에서 ‘반격’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대중 심리는 때로 맹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용서가 없다. 특히, 이슈를 발생시킨 주체가 이유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묵과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뭔가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수습책’이 제시되고 이것이 ‘조치’로 현실화 되어야 대중은 납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찾기 위해 연예계 사례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 모 개그맨은 자신이 10년 전에 했던 위안부 관련 발언이 불거졌을 때 곧바로 ‘사과’와 ‘프로그램 하차’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대중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복귀를 용인했다. 지지층이 복구된 셈이다. 그러나 ‘병역 회피’ 문제가 발생한 모 가수는 ‘사과’만 하고 군 입대 같은 마무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중은 아직까지도 그의 국내 진입 자체를 혐오하는 반응을 보인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반격 모드’로 돌아섰다는 사실은 전 언론이 한 달 째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고 100만 명이나 모여서 뭔가를 외쳤을 정도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는데, 이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아무런 주도적인 ‘수습책’도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중심리학 차원에서 용납되기 힘들다.

셋째, 애당초 현재의 시간표가 대통령의 임기 말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 말에 사람들의 불만, 특히 경제 불만은 현직 대통령에게 쏠린다. 미국도 재선 대통령의 임기 8년차는 레임덕을 피해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렇지 않아도 인기 하락이 불가피한 구조적인 레임덕 상황에서 최순실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더욱 강력한 콘크리트 레임덕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샤이 트럼프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지지층이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숨은 지지층이란 투표 때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선거에 나올 일이 없고 탄핵과 하야 압박에 시달리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숨은 지지층이 아니라 대놓고 엄호해줄 지지층이다. 뭔가 부끄러워서 지지를 ‘공표’하지 못하는 지지층은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상의 인식들이 종합하는 결론은 간단하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층 복원 능력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친박 배제 보수신당이 필요하다

다시 여론조사를 살펴보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9월 말 정당 지지율(한국갤럽 조사 기준)은 새누리당 31%, 더불어민주당 24%, 국민의당 12%, 유보 29%였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최근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15%였으므로 단순 수치상 비교를 해보면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15%포인트)이 사라지면서 야당과 무당층으로 골고루 흩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지율의 변동 추이와 지지의 강도이다. 현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는 15% 역시 점점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율이 5%인 상황에서 새누리 지도부가 청와대와 당을 분리하기는커녕 계속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의 강도(强度)라는 차원에서 볼 때도 명목상 새누리당 지지율로 구분되지만 사실은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지지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수적 가치를 담아내는 새로운 정당의 창당이다. 새누리당이 국내 유일의 원내 보수정당인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당은 청와대의 부속물임>을 선언하고, 당과 청와대가 공동운명체의 길을 간다면 보수층 자체가 몰락의 위기에 몰린다. 따라서 합리적 보수주의자에게 남는 대안은 하나뿐이다. 친박 세력을 배제한 새로운 보수신당을 창당해서 보수적 가치를 계승하는 것이다. 즉 새누리당이라는 껍데기만 남겨놓은 채 내용물이 대거 빠져나와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2004년 사례를 참고해보자. 2004년 총선 전, 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 국면에서 <대통령 탄핵>이 발생하자 커다란 역풍이 불었다. 결국 민주당은 5%짜리 미니 정당으로 전락해 버렸고 민주당에서 빠져나온 열린우리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이 되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이후 다시 합당하긴 했지만 과거 동교동계-호남 중심의 당 주류 세력은 완전히 교체된 상태로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친박 진영은 대선 후보도 변변히 없기 때문에 비박 진영이 일제히 결집하면 보수의 주류는 새로운 보수신당으로 집결할 수밖에 없다. 이정현 대표는 자기 당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봐야 한 자리 수라고 비난했지만, 한 자리 수건 두 자리 수건 대선 주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현재의 여권에서 대선 주자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박 계열이라 친박계는 ‘대선 후보’ 자체가 없는 정파나 마찬가지다.

결국 대선을 치르면서 보수층의 지지는 <친박 배제 보수신당> 쪽으로 급격히 쏠릴 수밖에 없다. 비박이 ‘친박 배제’를 기치로 걸고 새로운 보수정당을 창당하면 대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친박당은 사실상 5%짜리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친박’을 보수 재탄생의 희생양으로!

보수정당 하나가 망한다고 해서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 유권자 층은 반드시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집결할 수밖에 없다. 친박 배제 보수신당의 창당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친박 배제 보수신당의 등장은 보수의 혁신을 통해 정치 전반의 진화를 촉구하는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새는 좌우의 양 날개’로 난다. 사회는 좌-우의 경쟁과 균형으로 나아간다. 보수가 새로 태어남으로써 진보의 발전을 촉구하고 전체적으로 좀 더 성숙한 정치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을 지탱해온 3개의 기둥이 있었다. 하나는 보수적 가치라는 ‘이념적 기둥’이다. 여기에는 국가의 품격과 안보, 공권력의 위상 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정치적인 가치와 성장을 중심에 두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 두 번째는 기업과 기득권층의 이익이라는 ‘계급적 기둥’이고, 또 하나는 영남이라는 ‘지역적 기둥’이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친박이라는 꼬리를 잘라내고 보수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의 3번째 기둥을 스스로 해체해야 한다. 이미 지역적 대결 구도는 상당부분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총선에서 확인되었다. 비박 세력이 새누리당 이탈과 함께 보수의 재탄생을 추진하면서 새누리당의 3번째 기둥인 지역주의 정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선언적 행태를 보인다면 대중은 크게 환호할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당의 대통령이던 이명박이 민심을 잃자, 이명박과의 투쟁에서 선봉을 맡아 보수의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보수의 대안이 떠오를 때다.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머리인지 꼬리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짤림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먼저 자르는 쪽이 머리라는 것이다.

박근혜라는 거대한 꼬리를 잘라내야 보수가 살 수 있다. 과감한 분당 전략으로 한줌도 안 되는 ‘친박’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겨줘야 한다. 새누리당에 존재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침몰하는 새누리당 호에 구멍을 내고 탈출해서 더 큰 바다로 가야 한다. 좌파-우파를 떠나 그것이 한국 정치가 발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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