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대신 시민들이 부끄러움에 떨고 있다.
그들 대신 시민들이 부끄러움에 떨고 있다.
  • 양영희
  • 승인 2016.11.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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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를 다녀와서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차올라 주말이면 광화문광장으로 몇 주째 나가고 있다. 나를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있으며 우리는 일상이 흐트러져버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일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또 매일 뉴스에 보도되는 끝도 없는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 일가들의 만행을 보면서 그들 대신 시민들이 부끄러움에 떨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들이 동시에 든다.

‘왜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존재가 되었을까? 돈과 권력은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 시킬 수 있는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얼마나 추악해 질 수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매번 당하기만 하고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어제는 눈까지 내려 차가워진 바닥에 몇 시간씩 앉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도대체 박근혜란 이름을 우리는 몇 번을 외쳐야 이 난국이 해결될까? 국민들은 사랑하지 않는 그 이름을 얼마나 더 불러야 하는 걸까?

그러면서 나는 여기 모인 시민들이 각각의 분야에 대해 제안을 하여 그 의견들을 모아 시민정치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아이부터 70대까지 모였으니 우리나라의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점을 모아내고 시민들이 해결방안들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하나하나의 이슈가 되는 문제를 토론하고 생각들을 모아내면 좋겠다. 촛불 앞에서의 주문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이란 믿음도 생겼다. 왜냐하면 지금 국민들은 소수가 사적이익을 위해 얼마나 국가를 유린했는지를 두 눈으로 보고 분노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공적인 가치가 고르게 펼쳐지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은 인터넷 참여로 의견을 낼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호, 역사교과서, 사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가습기살균피해자, 위안부협약, 청년실업, 노동문제, 노인문제, 경제문제, 통일, 여성문제, 농민의 삶과 농업문제, 기후문제, 핵문제, 교육문제, 아이들과 청소년의 삶, 성소수자,...’ 어떤 영역, 어떤 주제라도 여기선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집약된 시민제안이 정치와 제도로 실현되면 어떨까하고 상상을 해봤다. 마치 예전의 만민공동회처럼 말이다.

지금 새누리당 해체를 주장하지만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이름으로 모인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그렇다고 야당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당리를 헤아리지 않고 시민들의 뜻을 먼저 받들며 정치를 하리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인물들만 사라지면 이 나라는 정상으로 가동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렇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의 정치를 만들고 유지해내고 있는 그 힘이 현재의 정치를 바꾸고 새 역사를 만드는 기틀로 자리매김할 방법역시 광장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절실한 이유다.

우리가 이렇게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건 광장에서 만난 이웃들과 시민들 때문이다.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 따뜻하게 체온을 나눠주고 목소리를 모으며 외치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하야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의 사슬에 묶여 옆을 돌아보지 못한 죄, 주인이라 말하며 스스로 주권자로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한 죄를 거리에서 뉘우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주권자인 시민들끼리 놀라고 분노한 가슴을 서로 기대며 위로하는 중이다. 나는 그 시민들의 속마음까지 엮어낼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마음의 망 같은 것 말이다. 더는 매주 촛불의 인원만 세는 정치인들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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