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테러의 고통 속에서 피어낸 아프칸 여성들의 삶
전쟁과 테러의 고통 속에서 피어낸 아프칸 여성들의 삶
  • 양영희 (전 교사)
  • 승인 2017.01.11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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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 개의 찬란한 태양>_할레드 호세이니

<천개의찬란한 태양>은 아프칸 여성들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을 그린 소설이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읽으며 나는 순간순간 소설 속 ‘마리암과 라일라’가 되어버렸다. 그럴 때면 그녀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내 것이 되어버렸고 내 몸은 차갑게 굳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소설의 첫 문장, 첫 단어인 하라미(사생아를 일컫는 말)인 마리암은 하녀 출신이었던 어머니 나나와 쫓겨나 외딴 곳에 누추하게 살아간다. 마리암의 아버지는 그녀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암에 대한 애정으로 매주 마리암을 찾아와 함께 낚시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리암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만나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걸 그녀는 몰랐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거나 아버지의 집을 방문해 다른 형제들을 보는 것은 금지된 일이란 걸, 아버지의 사랑은 외딴 집에만 머문다는 것을 마리암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알지 못했던 하라미로서의 운명을 넘어서려 했을 때 엄청난 불행이 그녀를 덮친다. 마리암의 존재만을 의지해 생을 꾸려가는 나나는 마리암이 자신을 떠나길 원치 않았다. 자신을 버린 잘릴은 딸 마리암을 위해 자신의 집에 주기적 방문을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마리암을 볼모삼아 생을 이어가는 형국이었다.

어느날 마리암은 혼자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리암은 아버지의 집 앞 대문에서 거절당하고 밤을 새워 문밖에서 ‘그럴리 없을’ 아버지란 존재의 실체를 확인한다. 다음날 하인들에 의해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오는데 거기서 나나가 목을 매어 자살한 걸 발견한다.

마리암은 현실에 대한 혼란과 나나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데 잘릴의 다른 부인들은 15살의 마리암을 마흔 다섯의 라시드에게 치우듯 보내버린다. 라시드는 아들과 부인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생각, 아내는 집 안에서 남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남자였다. 어떤 사람이 강한 신념을 가진 다는 것은 때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마리암은 여러번의 유산을 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 몸이 된다. 그것은 라시드에게 마리암이 쓸데없는 존재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마리암은 라시드의 일상적 폭력아래 신음하고 살고 있었다.

마리암이 불행한 개인사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라일라는 학교도 다니며 친구들과 즐거운 시절을 보낸다. 비교적 진보적인 부모의 영향으로 여자도 교육을 받아 미래의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쓰임을 위해 준비하라는 아버지와 매일 공부하는 재미도 느끼고, 폭탄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타리크와는 오빠처럼 따르며 친하게 지낸다. 그들은 자라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떨어져 있지 못한 만큼 그들은 가까워졌고 어느날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에서는 어느 가정도 평화가 보장되지 않았다. 곳곳에 폭탄이 떨어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는 일이 일상이 되며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고국을 떠난다. 아직 남은 사람들도 목숨을 잃고, 난민이 되어 길을 떠난 사람들도 길 위에서 폭격을 맞기도 한다. 먼저 피난길에 나선 타리크도 부모를 잃었고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라일라도 부모를 잃었다. 폭격에 쓰러진 라일라를 꺼내 구해준 것은 라시드였다. 라시드 부부는 라일라가 회복될 때까지 치료해 준다. 그러나 라시드는 어린 라일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만든다. 그때 라일라는 타리크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라일라도 다른 선택이 힘든 상황이라 이를 받아들인다. 마리암에 대한 일상적 폭력에 라일라가 나서주며 마리암과 라일라는 서로 연민을 갖게 된다. 처음에 냉담하고 서먹했던 관계는 여성의 연대로 자리한다. 이제 그녀들은 한 몸처럼 가까워진다.
라일라는 타리크의 아이와 라시드의 아들을 차례로 낳는다.

그리고 죽었다던 타리크가 살아 돌아온다. 타리크의 출현은 그들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라시드의 극심한 폭력과 감금은 라일라와 마리암을 구별하지 않고 지속된다. 라시드의 가게도 폭격에 맞아 생활도 힘들어졌다. 라시드는 타리크의 딸 아지자를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마리암은 그들의 엉킨 불행을 혼자 감당하기로 한다. 라일라에 대한 라시드의 살기어린 폭력 앞에서 그녀는 라시드를 살해한다. 그리고 라일라와 아이들, 타리크에게 길을 떠나게 한다. 마리암은 처형당하고 라일라는 탈레반이 산악지대로 밀려난 후에 카불로 돌아온다. 그녀는 마리암을 기억하며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 유품을 전해 받는다. 거기엔 잘릴이 어린 마리암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피노키오와 편지, 그리고 약간의 재산이 들어있었다. 라일라는 그 돈으로 딸이 수용되어 있었던 고아원을 인수해 학교를 만든다. 자신은 마리암의 몫까지 어디엔가 쓰여 지는 삶을 살려했고 그걸 실천하는 중인 것이다.

몇 년 전 현경의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이란 책을 읽으며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깬 적이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서로를 보듬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지, 코란의 진정한 해석이 우리에게 얼마나 왜곡되어 전해지는지도 확인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왕정 붕괴과정, 군벌들의 내전, 탈레반정권, 소련과 미국의 개입으로 수 십 년이 전쟁터로 변해 버린 그들의 피폐해진 삶은 그 어떤 것도 제자리에 있을 수 없게 했다. 부패한 권력들이 신의 이름과 경전까지 도용하며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시킨다. 이때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이 바로 여성이다. 여자를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그들의 삶을 보좌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패정권, 폭력정권의 구호들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여자는 교육도 받아선 안 되고 외출도 남성 보호자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어기면 어디서나 폭력은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하늘에선 폭탄이 떨어졌고 거리에선 폭력이 난무했다. 그 폭력은 집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들이 하소연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테러리스틀이 활보하는 그곳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그러나 무수한 폭력와 상실, 기아. 혼돈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았고 희망을 가졌다. 전쟁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명의 씨앗을 일궈온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 아직도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한 숱한 난민들과 세상의 민중들의 삶에 이 책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이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의 시 <카불>에서 따온 것으로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불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천개의 태양이 아프간 여성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 같은 걸로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사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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