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님들
목수님들
  • 양영희
  • 승인 2017.01.1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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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편지

‘창밖으로 몸이 가벼운 눈들이 잔바람을 타며 놀고 있다.’

이 한 문장을 치고 나니 눈송이가 많아지고 커진다. 창밖의 풍경은 한순간 커다란 그림으로 변한다. 나는 한 일도 없이 이 아침 너무 큰 선물을 받고 있다. 어디선가 와~와~하는 아이들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그 표정과 몸짓, 그리고 아이다운 흥이 느껴진다. 이 숲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착각에 빠진다. 그 느낌이 좋다.

액자에 갇히지 않은 숱한 자연의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은 내가 존경하는 목수님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분들은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 수개월을 이곳에서 땀을 흘렸다. 처음 설계도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 생각난다. 공간의 위치, 창문의 크기, 문의 방향 등을 얘기할 때 우리는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 했다. 잠시도 앉아있기 힘든 여름날 우리는 겨울이면 완성될 집을 머릿속에 그리며 마주했었다. 도면을 봐도 입체적으로 상상할 힘이 없는 나는 목수님의 설명을 몇 번씩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미완으로 남았던 도면은 이사를 하고 나서야 완전한 작품이 되었다.

도면이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 되는 과정은 참으로 신비했다. 그분들의 노동시간만큼 집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흘린 땀만큼 집은 탄탄하고 아름답게 완성되어 갔다. 나에게 누군가 땅과 나무를 주며 집을 지어보라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집 짓는 현장에 자주 가면서 목수님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사를 품었다. 그분들이 먼지와 톱밥으로 얼룩진 작업복을 입은 채로 먼지를 툭툭 털며 음식을 드시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이 예쁜 집은 그렇게 목수님들의 삶의 시간으로 완성되었다. 산 밑의 돌이 많은 밭이었던 이곳은 이제 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여러 행복들이 목수님들의 땀과 작업복이 분리될 수 없음을 안다.

어제는 목수님들을 초대해 새 집에서의 파티를 했다.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해주신 목수님들은 도착하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신다. 그리고 자신들이 못을 박고 색을 칠했던 곳곳을 만져보신다. 그 표정이 사뭇 존경스럽다. 못질한 나무를 만지는 손길이 마치 엄마가 어린아이를 만지는 듯하다. 서로가 자신이 직접 작업했던 곳에 대한 이야길 하시며 웃으신다.

눈 내리는 길을 달려 청주수산물 시장에서 회를 떠와 대접해 드렸다. 우리는 정태춘과 여러 음악들을 들으며 소주병을 많이 비웠다. 흥이 많은 목수님들은 집에 있던 사물악기를 발견하고 마당으로 나가자고 하신다. 밤중이고 추웠지만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 먼저 나가 모닥불을 피웠다. 악기와 술과 안주를 챙겨 우리는 모두 마당에 모였다. 그리고 삼채장단을 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정소장님은 원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숱한 자연의 생명들에게 우리를 고하는 것이라 했다. 산과 들의 원주인격인 여러 정녕들에게 갑작스런 침입자인 우리들이 함께 살아도 되는지를 묻는 의식과 같은 것으로 나는 인지했다. 목수님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일처럼 그 의식에 동참했다.

정목수님은 땅에 큰절까지 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지은 집이 그냥 집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분이 우리 집을 맡으셨던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이 집에서 자주 만나 집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 갈 것을 목수님들께 제안했다. 목수님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지인들과 후배들이 앞으로 이 곳을 나름대로 공유하며 ‘어우렁 더우렁’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금장치 없는 공유공간으로 말이다. 나의 진정한 감사에 정목수님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여러 집을 지었지만 다시 그 집에 들어가 초대되는 일은 흔치 않다고. 나는 속으로 집을 지어주는 것은 새로운 삶을 지어주는 것과 같은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냐고 생각하며 웃었다.(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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