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과 한탄 그리고 다급함.
미안함과 한탄 그리고 다급함.
  • 양영희
  • 승인 2017.01.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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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 / 나오미 클라인

‘600쪽이 넘는, 무게 때문에 들고 볼 수 도 없는 책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 시작한 독서가 3일 만에 끝났다. 저자는 5년이란 세월 동안 연구하고 현지를 조사하며 글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 사이 아이를 몇 번 유산하고 아들을 낳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이, ‘무엇이 그녀를 이런 노력으로 이끌었을까?’하는 해답은,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다급한 그녀의 외침으로 알게 된다.

영화나 뉴스 속에서 그리고 자주 마주하는 스모그나 미세먼지, 황사, 극심한 가뭄, 이상기후 등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질서에 틈이 생기고 있음을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전기와 가스, 자동차, 휴대폰을 이용하며 우리들만의 시스템에 안착한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들은 경제성장이 가진 최고의 가치에 대한 것들이었으며 세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지금도 온통 관심은 성장의 유지와 일자리창출에 대한 것 뿐이다. 누구도 이런 정의(?)에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권마저 위태로운 수많은 사람들에게 쥐어줄 답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락하는 자본주의와 이상기후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지금처럼 모두가 고도의 소비를 유지하거나 닮아가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함이 자명하다. 미국이나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사치품과 과도한 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삶은 누군가의 생존과 생태계를 파괴하며 가져온 결과물이다. 국가 간 혹은 국내에서도 주택과 의료, 교육에서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와 기후문제를 동시에 풀어낼 해법이 필요하다.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있으며 해수면은 해마다 올라오는 중이다. 곳곳의 이상기후는 지구의 신음이며 고통의 소리다.

나오미는 여러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치품에 대한 과세도 불필요한 소비를 막기 위해 동원 될 수 있고, 친환경 전환에 도움이 되는 부분(대중교통, 재생 에너지, 주택단열사업, 생태계 복원)의 지원이 늘어나면 많은 고용이 이 부문에 창출이 일어나고 수익증대라는 목표에 쫓기지 않는 분야들(공공부문, 협동조합, 현지사업, 비영리사업)이 전체 경제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진다. 또한 기본 소득제를 실시해 생계비를 벌려는 사람들을 형편없는 일터로 떠미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야말로 안정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공공 부문의 강화 및 전환을 추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고 기업의 탐욕을 철저하게 제어하는)을 건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둘러싼 사상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무기고에 들어있는 정책 도구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나오미는 ‘기후 위기의 근원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서구 문화의 토대를 이룬 핵심 신화, 곧 자연계는 무한 할 뿐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인류는 자연계를 지배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자신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자연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인류 역사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우루’의 사례는 가까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인지도 모른다. 인구 만 명의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는 자연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농업용 비료의 연료인 인산이 발견되고부터 나우루는 잠시 일확천금의 섬이 되었다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우루의 해변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타원형 섬의 숲과 표토는 거침없이 파헤쳐져 있었고 인산 채취가 끝난 지역은 섬의 뼈대를 드러낸 채 유령이 나올 듯 흉측한 바위만 남아있다. 섬의 중심부는 인간의 거주에 적합지 않을 뿐 아니라 식물이 자랄 수 없게 되었다. 섬이 빈껍데기가 되는 순간까지 인산 채광을 계속해 채광이 끝나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다. 나우루는 인산 분말이 화물선에 실려 나가는 만큼 소멸을 향해 치달아 갔다. 쉬운 돈벌이로 나우루 주민들은 생활과 문화에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 정치계는 부패가 만연했고 음주 운전 사망원인 1위, 평균 기대 수명 또한 몹시 낮았다. 지구상에서 비만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으며 성인 인구의 절반이 수입 가공식품에 의존한 탓에 당뇨병을 앓고 있다. 그들은 넘쳐나는 돈으로 요리를 하지 않고 식당에 서 음식을 사 먹었다. 또 섬 대부분의 지역이 깊고 어두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신선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우루의 발전 과정은 곧 자살행위였다.>

나우루의 비극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하다. 나오미는 ‘우리는 동시에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무엇이 위험한 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동시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재앙은 동시에 터진다. 그리고 그 재앙의 폭풍은 더 선하게, 더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먼저 내린다. 그러나 지금 기후위기의 문제는 이미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전 세계가 빠른 시일 내에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안타깝게 지적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 사례들을 안내한다. ‘아랍의 봄, 유럽의 광장점거운동, 미국의 월스트리를 점령하라, 칠레와 퀘백의 학생운동’ 등 끓어오르는 봉기가 그것이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수십 년에 걸쳐서 심화되어 온 불평등과 부패로 인해 설득력을 잃고 있음을 직시한다. 자유시장이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주도권을 잡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음을 희망으로 보는 것이다.

나오미의 사례들을 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경제정의와 이상기후를 낮출 의지가 있으며 그것에 동참할 때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나 공공재의 탄탄한 활성화로 자유시장보다 몇 배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못하는 것은 이권을 가진 기업과 국가가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패하고 부도덕하며 견고한 그들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시민의 힘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나우루처럼 우리 모두 제 무덤을 파는 일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나오미는 시간이 촉박하여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그 목소리가 절규처럼 메아리친다.

그녀가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연어들의 산란장에서 아이와 새끼 연어가 마주하게 하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자연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아이가 어린 연어들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그녀는 표현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강과 하늘과 땅과 물을 모조리 망가뜨려버린, 돌이킬 수 없는 미안함과 한탄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 한탄과 미안함과 다급함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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