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괴산_자본주의 사회는 가진 사람이 결정한다.
벌거숭이 괴산_자본주의 사회는 가진 사람이 결정한다.
  • 양영희( 전 교사,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2.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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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편지

그러니까 모든 것이 결정된 이유는 ‘냇물이 흐르는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11년 전 너무도 낭만적으로 인터넷 부동산을 훑어보다 ‘이곳으로 가보자’라고 사진이 있는 마을을 찾아왔었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집을 결정하고 우린 주말마다 괴산에 오며 괴산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몇 년 전에 완전히 삶터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괴산이 좋은 이유는 산과 나무다. 불편함이 많아 원래의 것들이 간직된 그런 모습이 좋았다. 강원도 같은 우거진 숲들은 그 중 최고였다. 밤하늘 총총 떠있는 별들도 좋고 사람이 적어 귀한 대접을 받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마을의 숲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민둥산이 돼버렸다. 너무나 놀라고 황당했다. 나는 우리나가 법적으로 벌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산을 완전히 밀어버리는 벌목은 마을의 미관을 크게 해치고 산에 사는 동식물의 터전을 한순간에 제거해버린다. 수 십 년간 마을을 지키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나무들이 엔진톱의 칼날에 줄지어 쓰러져 있다. 며칠 동안 계속 된 엔진톱의 ‘웅웅’거리는 소리는 마치 나무들의 통곡처럼 들렸다. 6.25때 사람들을 즉결 처형하는 것처럼 나무들이 선채로 숨이 끊어질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진 사람이 결정한다. 산주와 벌목업자가 허가 신청을 하면 삶의 질에 결정적 타격을 입는 주민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반영할 길이 없다. 소음과 먼지와 가뭄과 홍수 우려, 환경파괴 ... 그 무엇도 항변할 곳이 없다. 산주와 벌목업자는 돈을 주머니에 넣지만 우리는 먼지와 소음과 나무들의 아픔을 가슴에 담는다. 게다가 우리 법이 ‘수종개량사업’이란 명목으로 다시 나무를 심을 돈까지 지원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마을엔 몇 년 동안 벌목업자가 드나들며 다음 사냥감을 찾는 걸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의 얼굴을 알 정도로 마을을 드나들었다. 그가 방문할 때마다 숲은 벌거숭이가 되어갔다. 그들은 ‘ 금방 자란다.’는 말을 하지만, 나무들이 사실은 30년 이상을 지나야 예전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 이 마을로 왔을 때의 모습은 지금 사는 어르신들 살아생전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모두 침묵한다. 왜? ‘산주가 한다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산주는 나무를 팔아 얼마나 돈을 벌까? 그러나 그들은 그리 많은 돈을 받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산은 공동명의가 많아 1000만원을 받는다 해도 나눠가지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벌목이 쉬지 않고 진행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벌목업자의 돈벌이와 묘지 때문이다. 벌목업자는 그 일로 먹고 사는 것이고 산주들은 조상들의 묘에 그늘이 지면 안 되는데 나무가 커서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무가 사라진 산에는 산소들이 즐비하다. 우리의 장묘문화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에선 간벌만 허용한다고 한다. 돈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덤비는 자본의 사회를 친환경과 청정지역이라 강조하는 괴산에서 보고 있다. 괴산의 곳곳이 벌거숭이가 되어있고 흉물스런 산자락이 신음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누가 도시에서 내려올까 싶다.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외친다. ‘왜 이렇게 다 잘랐느냐고.’ 아이들은 산에 살던 고라니나 다람쥐를 걱정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마다 마주했던 키 큰 참나무들을 나는 이제 볼 수 없다. 나무가 없으니 새들도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괴산이란 곳의 아름다움을 강조할 자신이 없어졌다. 나에겐 슬픔으로 끝이지만 나무와 숲은 생명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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