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을 팔아 영화관과 청소년 공간을 만들자
가마솥을 팔아 영화관과 청소년 공간을 만들자
  • 양영희(전 교사, 교육잡지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2.12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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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괴산 청소년 이야기 마당
유난히 차가워진 날씨에 바람까지 분다. 지금 학교에 있어야할 교복 입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바로 ‘2017 괴산 청소년 이야기 마당’은 괴산의 초중고 학생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는 첫 번째 모임 때문이다. 30여명이 2월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경까지 괴산 도서관에서 ‘행복교육지구사업에 대한 안내’를 듣고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 ‘의정부의 몽실학교’ 사례에 대한 영상을 봤다. 그리고 괴산의 청소년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첫 날이었다. 처음엔 서먹하던 분위기가 놀이와 영상을 보면서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변하더니 자신들의 의견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는 활동과 모둠토론에선 목소리가 커지고 농담과 웃음이 섞여있다.

괴산의 행복교육지구 사업을 담당할 교사와 장학사 그리고 이를 지원할 지역의 사람들이 기꺼이 도움활동을 하며 진행한 이야기 마당에서 아이들은 가마솥을 팔아 영화관과 소극장을 만들자고 했다. 공연에 필요한 연습실도 만들고 곳곳에 와이파이를 설치해 폰을 치켜들고 와이파인 존을 찾는 불편함을 없애자고 했다. 청소년이 머물고 놀며 쉴 곳과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공간들도 만들자 했다. 무료카페와 만화방을, 그리고 방음이 잘돼 맘껏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는 곳도 필요하다 했다. 쉼터, 청소년 영화관, 음악실, 드럼학원, 큰 옷가게, 화장품 가게도 필요하다고 했다. 요리도 배우고 싶고 그림과 일본어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십자수와 현악기, 죽공예, 제과 제빵, 드럼배우기, 청소년 체육대회, 청소년 축제, 청소년 서점, 여러 가지 운동 ...이런 것들을 모두 아이들이 살고 있는 괴산에서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괴산이 후지다고 했다. 영화한편 볼 수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볼 기회도 없으며 뭘 배우려면 청주까지 나가야 하는 처지가 힘들다고 했다. 막차는 왜 이리 빨리 끊어지는지... 아직 매듭짓지 않은 하루일과가 남았는데 집에 돌아갈 차편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그러니 모든 생활이 부모의 지원 없으면 안 된다.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도할 나이에 하루하루의 시간표가 부모님의 손 위에 있어야만 하는 불편이 괴산에 사는 대가다.

아이들의 재치가 발휘된 절정은 그 모든 비용을 가마솥을 팔아 충당하자고 할 때였다. 괴산에서 가장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이들 눈에는 가마솥이었고 그것을 역으로 청소년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데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코너에 붙여진 절대적으로 많은 내용은 ‘시험, 시험, 시험’이었다. 교복과 머리규정, 성적표, 기숙사 등도 있었으며 ‘어릴 때 뛰어놀아야지 이게 웬일입니까?’라고 부르짖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의견은 괴산 행복지구 사업의 방향과 내용에 어떻게 접목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둠 토론을 발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표정은 올 때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다음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이름을 적어놓고 돌아갔다. 몇몇 친구들은 (부모님이 허락하시면~~)이란 단서도 달았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아이들의 이야기가 수차례의 논의와 준비를 통해 현실로 이루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런 날이 오면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이고 교육청과 관에서 협력하여 꿈을 현실로 바꿔낸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와 의정부의 몽실학교’ 같은 ‘괴산의 기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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