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우리가 잃은 것은?
사피엔스, 우리가 잃은 것은?
  • 양영희(전 교사, 교육잡지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2.2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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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유발 하라리/김영사

두꺼운 책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책이란 술술 넘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게다가 우리가 알았던, 그리고 오랜 시간 세뇌당해 왔던 우리 조상에 대한 신화가 명쾌하게 깨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교과서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함을, 아이들과 토론해야 할 곳이 무수히 많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이 사피엔스를 비롯한 지구생물 전체 역사에 공정함을 느꼈다.

저자는 20개국 이상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성공한 이유를 진정한 필요에 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글로벌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책과 학교는 특정 문화나 국가의 국지적인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주된 문제들 역시 글로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급격히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고 대부분의 인간이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이오기술의 혁신 덕분에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고 가난한 자와 부자간에 진정한 생물학적 차이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인간이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결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는 일부는 무서운 사냥꾼이었고 일부는 온순한 식물 채집인이었다. 하나의 섬에만 사는 종도 있었지만 대륙을 방랑한 종이 많았다.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그러나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은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종의 존재가 다른 종에 대한 무수한 폭력과 범죄를 거친 결과물이었다니! 교과서는 너무 미화되었음을 새삼 생각한다.

사피엔스가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덕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언어 중 전달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사람에 대한 것 즉 뒷담화라고 한다. 몇 시간이고 계속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준 뒷담화는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와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만들어 냈으며, 오늘날의 의사소통의 대다수도 이메일, 신문, 전화 등 뒷담화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매일 누군가에 대해 내 감정을 붙여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인지도 모른다.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등장했으며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을 믿을 수 있고 한다. 이런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신체는 밀을 키우는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기어오르고 사냥감을 쫓는데 적응했지 바위를 제거하고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데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서 영구히 정착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즉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왜 사피엔스는 더 비참한 생활과 만족스럽던 생활을 교환했을까? 소화도 되지 않고 영양도 부족한 곡류, 농부의 삶은 수렵채집인의 삶보다 불안정했다. 날씨에 영향을 받고 곰팡이가 작물을 감염시키면 수 천명이 죽어나갔다. 농부들은 경작할 토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이런 치명적 오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지만 그들의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을 알지 못 했다.. 그들의 계획은 빗나갔지만 여러 세대가 걸리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농업의 도래와 함께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농사혁명에 대한 그의 관점도 무척 새롭다. 우리가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교실의 아이들이 의자에서 고통 받는 것은, 우리가 수렵과 채집이 몸에 배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몸의 반응으로 보아 완전 긍정이 간다.

지구제국에 대한 그의 의견 또한 재미있다.

[오늘날 세계는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르게 독립성을 잃고 있으며,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심지어 국내문제까지. 국가들은 글로벌 여론의 감독에, 국제 사법제도에 더 문호를 열고 있다. 재정형태, 환경정책, 사법제도에 글로벌 기준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눈앞에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 세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지구제국의 색은 아마도 녹색일 것이다.]

7만 년 전 아프리카의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썼던 호모 사피엔스는 몇 만 년에 걸쳐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이제 사피엔스는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망을 구축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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