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불평등 해소,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
교육 불평등 해소,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승인 2017.02.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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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칼럼]배경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제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내용이다. 교육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담은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헌법에서 명시된 것처럼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고 있는가?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것처럼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끔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는가?

헌법에 명시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균등한 교육은커녕 교육의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교육 불평등은 학생 개인의 내적 요인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학생들 간의 성적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사교육이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훼손되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극단적인 교육평준화 정책을 통해 중·고등학교의 균등화가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에 유입되면서 교육계에는 입시 명문고, 그리고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의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생겨 불평등지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입시 명문고는 몰라도 특목고는 학교 교육만으로 입학하기엔 어려운 일이었고, 부족한 부분을 사교육이 메우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표> 부모의 직업에 따른 고등학교 진학률 분포

 부모의 직업

특목고 

 일반계

실업계 

 하위직

1.0% 

67.6% 

31.4% 

 중위직

2.28% 

77.7% 

20.0% 

 상위직

8.47%

75.4%

16.1% 

※ 류방란. 교육격차: 가정 배경과 학교 교육의 영향력 분석. 2006.12. 한국교육개발원.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특목고와 같은 입시 명문 고등학교는 충분한 사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상위층 자녀가 다수 분포한다. 입시 명문고에서 명문대로 진학하는 비율 또한 높다. 입시 제도가 변하면서 따라온 부수적인 결과다. 2017년 서울대학교 수시모집에서 총 선발인원 2,434명 중 일반고 출신이 1,193명(49%)인데 비해 입시 명문고는 1,241명(51%)이었다.

수시모집은 학생부 종합전형을 반영해 결정된다. 학생의 잠재력 여부에 따라 입학을 결정짓지만, 명확한 기준과 수단이 없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학생의 경험으로 판단한다. 체험학습, 어학연수, 각종 예술 및 스포츠 활동 등등, 이 모든 것이 사교육의 범주에 포함된다.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정적·시간적 지원이 필수이다. 다양한 활동은 물론 고교입시를 위한 특수과목에 대한 사교육도 실시한다. 하면 할수록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나날이 수시입학의 비율이 높아지니 사교육 의존도도 함께 높아진다.

소득 상위층이 입시 명문고를 보내기에 유리하고, 입시 명문고가 명문대를 보내기 유리하다. 이런 경향을 부채질 하듯이 서울대학교는 내년도 수시모집 비중을 78.5%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불평등은 계속 확대 중이다.

교육기본법의 이념인 ‘민주시민 양성’도 없다

그렇다면 교육기본법의 이념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나의 대답은 역시 ‘아니다’이다. 인격도야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세계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할 인재는커녕, 보다 값나가는 ‘노동력’이 되어 오로지 경제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교육을 받은 만큼 보상이 확실한 시대를 살았다. 소를 팔아서 대학에 갔든, 땅을 팔아서 대학에 갔든,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투자 대비 확실한 성공’을 보장받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렇게 성공한 부모 세대는 교육을 통한 투자가 인생의 확실한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부와 명예를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교육을 사용했다.

빈곤한 가정 역시 교육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세상을 살면서 배웠다. 대학을 다니지 못한 부모들은 낮은 임금과 사회적 지위로 인해 빈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식 세대에게 빈곤한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교육을 사용했다. 없는 돈을 쥐어짜서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통해 성적이 오른다면 집 기둥이라도 뽑아서 공부를 시켰다.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였고,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 어디에도 ‘민주시민 양성’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민주시민 양성이란 목표는 입시 제도와 사회구조 속에 상실되어 버렸다. 수학능력 시험은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지표로 1등부터 꼴등까지, 최고의 일류인 서울대학교부터 속된 말로 지잡(雜)대까지 줄을 세운다. 서울대와 가까울수록 ‘우수’한 인간이 되고 지잡대로 갈수록 ‘열등’한 인간이 된다. 당연히 똑같이 공부를 했는데 서울대를 간 ‘엄친아(엄마 친구 아이)’는 동네 아이들의 우상이 되고 지잡대를 간 나는 동네 아이들의 반면교사가 된다.

돈으로 ‘미래’와 ‘희망’을 살 수 있는 왜곡된 시대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이념은 모두 돈으로 인해 이 땅에서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불평등이 만연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해서 대학이 결정되면 직장까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명문대 출신은 대기업, 그래도 ‘인 서울’ 출신은 중견기업, 지잡대는 중소기업, 대학을 못나오면 일용직에 취직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출신 대학의 등급에 따라 이렇게 취업 자리가 정해진다.

‘특정 대학의 특정 학과에 입학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진리’ 속에 입시 경쟁은 생존 경쟁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경쟁이었던 것이 이제는 부모들 간의 경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 경쟁 교육의 우선순위는 삶의 어떤 다른 가치들보다 우위에 섰다. 집안의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만 하는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만 승리할 수 있고, 승리의 결과는 투자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교육의 대상자인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정의 온 식구들까지 확대된 교육 전쟁은 생존만을 목표로 한다. 오직 내 가족만이 아군이고 나머지는 전부 경쟁자이자 적이다. 친구가 나보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가는 순간, 그는 승자이고 나는 패자다. 이런 승자독식의 생존 경쟁에서는 그 어떤 숭고한 이념이나 철학도 개입할 수가 없다. 각자도생의 생존은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여태껏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 기능과 사회적 통합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과거의 양극화를 완화시킨 것은 분명히 교육이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많지만, 작금의 교육은 임금과 복지가 좋은 일자리와 높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노동력의 생산과 부의 대물림 기능만이 극도로 강화되어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긴다.

입시 개혁과 대학 서열화 철폐로 교육 불평등 없애야

더 이상 이렇게 소모적인 교육으로는 안 된다. 아이들과 부모, 모두가 불행해지고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교육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부모의 재력-사교육-명문대 입학-대기업 취업’으로 순환되는 낡은 구조를 깨부숴야 한다. 교육의 불평등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연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입시 교육의 학력 신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인적 성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가르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규 교육 과정에 시민교육과 정치교육을 편성해서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에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끔 도와줘야 한다.

각 정당과 유력 정치인들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교육 개혁을 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공약 중의 하나로 국민의당은 ‘5-5-2학제 개편’을 주장한다. 이것은 현행 ‘6-3-3’학제를 바꾸자는 것인데, 교육 체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학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제를 바꾸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대 폐지’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교를 통합하고 지방과 서울의 학력 격차를 없앤다. 반값등록금을 넘어 무상교육까지 확대하고 고등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더라도 양질을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끔 취업 분야도 개혁한다. 사교육을 낳는 수학능력 시험은 SAT와 같은 자격시험으로 변경한다. 훨씬 긍정적인 개혁의 방향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자면 지방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산학연 클러스터’를 만든다면 지방과 수도권 간의 격차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교육 개혁의 정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입시 제도의 개혁과 대학 서열화의 철폐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개혁하면 돈과 교육의 유착 관계를 끊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부유층은 대물림의 수단으로, 빈곤층은 ‘개천의 용’ 신화로 현 교육 체계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이 출세와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의 요구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요구이다. ‘교육지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백년을 갈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요구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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