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 유감
헌재 탄핵 유감
  • 안전사회시민넷
  • 승인 2017.03.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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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칼럼]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416연대 공동대표)

 

박래군.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재재판관이 결정문을 읽어내려 갈 때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이 있었다. 유가족들은 매주 주말 촛불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집회와 행진의 맨 앞을 지켜왔다. 그들은 헌재 탄핵 결정을 누구보다도 염원했다. ‘세월호 7시간’으로 통칭되는 국민을 구하지 않는 죄가 헌재에서 인정되기를 바랐다. 유가족들은 그런 바람을 안고 아침 8시 안산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박근혜는 아들딸을 잃은 이들 유가족들에게 너무도 모질었다. 세월호 참사의 초기에 청와대에서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언제고 찾아오라 했고, 대국민담화에서 눈물까지 흘린 그였지만 그 뒤는 유가족들을 너무 핍박해대기만 했다. 국민들이 만든 진상규명 특별법에 의해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도 지난해 9월 강제 종료시켰고, 청와대가 뒷돈까지 대주면서 유가족들을 시체장사로 매도하는 극우단체를 동원하였음도 드러났다. 김기춘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론조작을 위한 것이었다.

퇴진행동 측에서 생중계 방송을 무대에서 틀어주었지만 이정미 재판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초반에는 경찰 버스 차벽 너머에서 주로 환호성이 일었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에 대해서 증거 부족으로 인정이 어렵다고 했고,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도 분명하지 않아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생명권 보호 및 성실한 직책수행 여부에 대해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면서도 대통령의 성실의무가 구체적인 행위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그러니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는 해도 탄핵의 사유까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헌재마저 외면하는구나 하는 그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러나 이정미 재판관은 마지막 부분에서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의 권한 남용 여부에 대해서는 공익실현 의무(헌법 제7조 제1항)을 위반했고,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헌법 제15조, 제23조 제1항)을 위반했고, 국가공무원법 제60조의 비밀엄수 의무 위배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피청구인(박근혜)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다.

8대0의 만장일치 탄핵 결정.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1만 명 가까운 시민들이 환호했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이겼다.”

탄핵이 결정되던 순간에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 순간은 같이 기뻐했다. 한 겨울을 촛불을 들고 탄핵의 순간을 기다려와 왔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기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잠시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표해서 무대에 오른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절규했다.

“왜 세월호, 우리만 안 됩니까. 왜 죽였는지 알려달라는데…”

무대 아래에서는 유가족들이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미완의 과제, 국민의 생명권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는 어디까지일까? 헌재 결정문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했다고 박 대통령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적으로는 이런 논리가 가능할지 모른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심도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서 헌법 위반은 맞는데 대통령 파면 사유로 볼 만큼의 ‘중대성’은 없다고 봤다. 국민들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고, 청와대는 7시간을 해명하지도 않고 깔아뭉갰고, 진상규명을 위한 어떤 노력도 가로막아왔던 그간의 사정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판단했다. 재난 시기에 대통령의 직무를 법률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명, 안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세월호 7시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전제한 위에 국민의 인간존엄성을 부정한 위헌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지금 헌법이 불비한 점을 헌법 재판을 통해서 보충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다면, 다음번 개헌 때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분명한 국가의 의무 조항이 삽입되고 그로부터 우리 사회의 인간존엄, 생명존중의 가치를 세우기 위한 작업들이 결국 이 나라를 돈이면 다 되는 나라를 탈바꿈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헌재의 이번 결정의 중요성과 위대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헌재의 단호한 헌법수호 의지가 담겨 있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에 헌재가 응답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그렇지만 이번 헌재의 결정은 미완의 결정이다. 결국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한 진상규명을 통해서 헌법조차 개정해야 할 사항이 발견된 것이리라. 그 일은 다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몫으로 떨어졌다. 중단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싸워가야 할 과제를 재확인한 순간이었기에 헌재 탄핵 결정을 나는 남들처럼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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