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아웃’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옥시아웃’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 강찬호
  • 승인 2017.03.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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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시아웃시즌2’를 선언하는 이유 / 강찬호(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

‘격세지감(隔世之感)’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이 알려진 이후, 2016년이 딱 그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해는 2011년 8월말이었다. 그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크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은 그 해 장작불처럼 타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렀지 못했다. 그런 배경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들, 배경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하튼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1년 8월 이후 세간의 뉴스는 되었지만, 장작불은 되지 못했다. 다만,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힘겹게 이슈와 뉴스를 지탱해왔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의 노력과 피해자들의 힘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촛불에서 ‘장작불’로 활활 타올랐다. 격세지감.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졌고, 감춰졌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드러난 내용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피해 규모에서도 그랬고, 피해자와 소비자들을 ‘호구, 호갱’ 취급했던 가해기업, 살인기업의 횡포에도 놀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드러난 현실을 믿어야 할까 의심도 하게 됐지만, 이곳은 한국이니 믿고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해 하반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살인기업으로부터 호갱 취급을 당했던 것도 모자라, 더욱 ‘후진 나라’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었다. 진정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국정농단, 대통령파면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보여 지는 한국 소비자들의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 이제 과거에서 현재까지 벌어진 일은 모두의 책임이 되었다. 회피하고 면피하는 순간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촛불에서 장작불로 타오르게 한 중심에는 ‘옥시불매운동’이 있었다. 불매운동이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고, 그러한 역사가 많지 않은 것을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옥시불매운동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시민사회의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피해 참사의 규모와 가해기업의 행태가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공분은 광화문 사거리 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서울역 앞 대형마트 앞에서 ‘옥시아웃’으로 이어졌다. 옥시불매를 외치는 소비자들의 행동이 대형마트에서 옥시제품의 철수를 요구하게 됐다. 그리고 그 불씨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옥시불매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광화문 촛불의 힘이 결국 일국의 대통령을 끌어 내리게 된 근본적인 힘이 되었듯이, 전국 차원의 옥시불매운동이 가능했던 것도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탐욕스런 기업을 감시하며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힘으로 지난해 가해기업들은 줄줄이 ‘반쪽짜리’ 줄 사과를 하게 되었고, 일부 보상 코스프레도 하게 되었다. 이어 국회에서는 국정조사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했고,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국정조사 특위의 활동 결과가 가려지기도 했지만, 올해 1월20일 피해구제특별법이 통과되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옥시불매운동이 국회와 가해기업을 압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규모가 밝혀진 것도 아니고, 사건의 실상과 진상이 낱낱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피해대책 역시도 잰걸음이다. 피해구제법이 통과돼 이제 시행령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가해기업 등 관계자들이 구속되었지만, 사건의 책임자 전부에 대해서 책임을 물은 것도 아니다. 많은 가해기업들이 숨어있고 한국사회 정치국면에서 대충 도망갈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온전한 징벌제 도입과 집단소송제 도입,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 등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장치도 부재하고 미흡하다. 2017년2월말 현재 5,463명이 피해접수를 했고, 이중 사망자가 1,143명에 이른다. 이들 중 다수는 아직 피해자 판정도 받지 못하고 있고, 설령 피해자 판정을 받아도 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파악되지 않은 피해규모도 미궁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건강피해 후유증도 미궁이다. 가해기업 일부에 대한 형사처벌과 일부의 배상이 사건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피해자와 국민들 앞에 나서서 어떤 재발방지와 피해대책을 밝혔는가. 마지못해 불려나오고, 소극적인 피해대책을 하며 묘수를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 이때, 끝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시 불러내고자 한다. 지난 3월9일 광화문에서 ‘옥시아웃시즌2’를 선언한 이유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기억해야 할 때가 아직 아니다. 더욱이 면죄부를 줄 때도 아니다. 해결된 것은 없다. 갈 길이 아직 멀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피해대책을 세워나가고, 다시는 기업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기업에게 확실한 책임과 대책을 물어야 하는 때이다. 2016년이 옥시아웃 원년이었다면, 2017년은 새로운 대한민국과 함께 옥시아웃시즌2를 실천해야 할 또 다른 원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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