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고택에서 놀기
괴산 고택에서 놀기
  • 양영희(교육잡지 벗 이사,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5.22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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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편지]홍범식 고택에서 진행되는 문화놀이터 현장 방문기

디나 ‘금기’가 있다.

괴산에선 아직 홍명희가 금기다. 그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시절이다. 우리 현대사가 남긴 문제는 언제쯤 다시 자리매김하고 편안해질까?
그런데 바로 그 홍명희의 부친인 홍범식 고택에서 한 달에 한번 놀이터가 열린다. 몇몇 선생님들로부터 옛 한옥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단 말만 들었던 그 행사가 있다는 말에 뜨거운 햇살이 잦아들 때 쯤 홍범식 고택으로 향했다.

고택에 도착하니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앉고 엎드리며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예쁜지 오래오래 아이들만 바라봤다. 환한 표정의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방안에 들어가 놀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 마당에서 전래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와 어른들이, 이곳에선 아이 어른 구별 없이 놀이 중이다. 본채 마당에는 공연준비가 한창이었다. 집 안을 둘러보니 이미 곳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곳곳이 놀이터인 고택을 누비며 놀고 있는 가족들도 많았다. 고택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 모습은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풍요로움’ 이 묻어났다.

옛집의 대문과 방문을 활짝 열고 누구라도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쉴 수 있게 할 생각은 누가 했을까? 오늘 홍범식 고택은 고택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되었다. 소중한 걸 지키는 방법 중 가장 훌륭한 방식이 바로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생명을 일으키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문화재라 일컫는 곳들은 가는 곳마다 잠겨있고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격리의 공간이 돼버렸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선 선조들의 숨결이 아이들과 어우러져 덩실거리는 것 같다.

1부 행사에서는 ‘고슴도치의 알’이란 책을 읽고 알을 흉내 내고 서로 맞추기, 나만의 이름 지어 토마토 이름표 만들기, 토마토 모종심기, 토마토가 자란 모습 상상하여 그리기 등의 그림책 놀이를 하고, 화단에 봉숭아씨앗을 심은 뒤 두 달 후에 만나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들이기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오늘도 즐겁고, ‘토마토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신들이 심은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들이기를 할 그 날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일 것이다. 놀이는 더 재밌게 그리고 쭉~~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고택에서 놀기가 행사가 아닌 괴산아이들의 행복한 마당 같은 것이 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마음껏 노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택에서 친구나 형, 누나들이 편하게 어울려 놀며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어울리는 안전한 놀이터는 거의 없다. 아이들에겐 이런 마당과 집이 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골목에서 해질녘까지 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은 방정환 선생님 작품에 나오는 창남이처럼 배고픈 시절에도 아이들이 풍요롭게 클 수 있는 양식과 같은 것이었다.

2부 순서에선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의 노래공연과 전문 성우 분들이 읽어주는 ‘그림책 극장’이 있었다. 하늘에 조금씩 어둠이 내린다. 방정환 선생님의 ‘만년샤쓰’는 다시 들어도 울컥해진다. 가난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가난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처럼 그림책을 함께 감상한다면 아이들 마음에 아련한 그 무엇이 남게 되리라 생각된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하늘엔 오리가 짝을 지어 날아간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시각에 고택에 퍼지는 ‘그림책 읽어주는 소리’와 ‘함께 모여 앉은 다정한 사람들’,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조명이 켜지고 하늘은 깜깜해진다. 마지막 순서로 풍물공연이 이어진다. 사물놀이는 아이들을 흥분시켰다. 우리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 몸에 우리 것이 들어있는 것 같다. 흥겨운 악기소리에 여러 아이들이 일어나 몸을 하늘로 방방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날마다 저렇게 즐거워야 하는데...... 고택에서 매월 놀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문화학교 숲은 다음 놀이터를 안내한다. 6월 17일, 아이들은 그날까지 어떻게 기다릴까?

*5월 20일 토요일 3시부터 8시 30분까지 ‘홍범식고가와 함께하는 신나는 이야기 여행’은 문화학교 숲이 주관하고 괴산군이 주최하며 문화재청과 충청북도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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