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을’ 간의 연대가 정답이다
최저임금 인상, ‘을’ 간의 연대가 정답이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승인 2017.06.1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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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칼럼]정초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들이 관심 가질만한 소식이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9년 만에 상대적으로 노동 친화적인 정권이 들어섰고,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치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두 축을 형성하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위원회를 탈퇴한 지 18년 만에 중앙정부가 만든 논의 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근로자 위원 측이 전원 사퇴하면서 사용자 측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던 최저임금위원회에도 모든 근로자 위원들이 다시 복귀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특별한 이유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 위원 9명, 경영계 및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사용자 위원 9명,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 중의 절반이 출석해야 하고 출석한 위원 중 절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작년의 경우, 근로자 측 위원들은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 인상을 통해 7,000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 반면 사용자 측에서는 동결을 주장하면서 팽팽하게 대결했다.

그러다가 근로자 측 위원들이 퇴장한 후 위원 16명(사용자 측에서 소상공인 대표 2명 퇴장)이 논의한 끝에 사용자 측에서 제시한 6,470원을 공익위원들이 받아들이면서 전년보다도 낮은 7.3%의 인상만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과 함께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일었다.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박근혜 정권이 임명했던 공익위원들이기에 경영계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최저임금위원회는 다르다. 먼저 새로 출범한 정부 자체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노동 친화적 정부이다. 또한 취임 한 달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80%를 넘는 역대 최고 수준의 국정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강력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두 자릿수 인상을 통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발표까지 하면서 근로자 측 위원들의 복귀를 설득했다.

따라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익위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이런 기조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의 두 자릿수 인상(7,110원 이상) 가능성은 높다하겠다. 근로자 위원들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다시 돌아온 것도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위원회를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상황이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자가 소모품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 놓은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따라서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목재나 기계, 부품과 같은 물질적 생산요소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 노동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이 일정 수준에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다. 제32조에 따르면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적정임금의 지급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한 최저임금법에서도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즉,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제도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또한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에서도 최저임금제를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을’ 간의 싸움이 되어버린 최저임금 1만원 논란

이처럼 최저임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법률에 명문화될 만큼 사회적 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는 데 대해서는 왜 이렇게 많은 논란이 일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주로 다음의 두 가지 논란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최저임금의 적정수준

먼저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에 대해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계 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지금의 최저임금이 턱없이 낮다고 보는 반면, 사용자 측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이 지나치게 높게 유지되었다고 본다. OECD 국가들과의 비교에서도 14위로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88년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로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9.8% 정도로 일반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 인상률인 9.5% 보다 약간 높다.(김유선. ‘최저임금 적정수준과 고용효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5.)

여기서는 일견 사용자 측의 말이 타당한 듯하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처음 도입될 당시의 최저임금은 당시 기준으로 담배 한 갑과 짜장면 한 그릇도 못 살 정도로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었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가치를 따지면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렇게 가파른 상승을 보였다고 해서 지금의 최저임금이 적정수준이라고 볼 수도 없다. 3년 전인 2014년 기준 1인 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가 155만원인데, 이는 2017년 최저임금 135만원을 기준으로 해도 20만원이나 모자란다. 홀로 도시락이나 편의점을 이용하지 않고 음식점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경우 평균 7.050원을 쓴다고 하니 직장 동료와 같이 점심 한 끼 때우기도 어렵다.

국제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OECD는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으로 평균임금의 50%를 권고했지만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평균임금의 35%에 불과하다. 특히,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OECD 26개국 중 19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8개국의 경우 최저임금제가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높은 수준의 임금 최저선이 적용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은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김현경. ‘OECD 국가의 최저임금제와 빈곤탈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

2)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피해 계층

다음으로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할 경우, 중소 영세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어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용을 급격하게 줄인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중소 영세자영업자들은 몰락하고 최저임금제의 주요 대상자였던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져 오히려 경제 전체적으로 피해만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임금이 상승하면 비용이 늘어날 것이므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고통은 인건비가 아니다. 바로 과도한 상권 경쟁과 높은 임대료다. 특히, 프랜차이즈의 문어발 확장으로 골목 상권까지 침범하는 재벌 유통대기업으로 인해 동일업종 소규모 업체 간의 경쟁이 나날이 더 치열해지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진흥회의 ‘소상공인 2016 경영실태 및 2017년 전망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영이 악화된 주된 요인은 소비심리 위축이라는 경기적 요인을 제외하면 ‘동일업종 간 경쟁 심화’이다.

나날이 치솟는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렵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국내 자영업 폐업률 결정 요인 분석(남윤미. ‘국내 자영업 폐업률 결정 요인 분석’.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2017.)’에 따르면 임대료 상승은 폐업 위험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설사 장사가 잘 되더라도 상가 임대료는 더 많이 올라 오히려 내쫓기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이 이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껴안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까지 감당하라고 하니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영업자들은 건물주에게는 임대료를, 가맹점 본사에게는 수수료를 내야 하는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을보다 을’의 입장에 있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임금이다. 따라서 그나마 최저임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쥐어짜거나 해고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을’끼리 뺏고 뺏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갑’은 어디에?

그렇다면 현행 구조 속에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쪽은 누구일까? 바로 소수의 기득권층과 재벌 대기업이다. 높은 임대료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소득 상위 20% 계층의 소득 증가액은 하위 20% 계층의 9배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1% 오르는 동안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인상률은 4.6%에 이르렀다. ‘을’끼리 싸우는 동안 소수 계층이 부를 독식하는 불평등한 구조는 더욱 더 심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최대 70%에 이르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높은 수수료와 부당하게 값비싼 원자재 비용, 폐업 위기에 몰릴 만큼 가파르게 올라가는 임대료가 재벌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배를 불리는 동안 인건비를 둘러싼 중소 영세자영업자와 저임금 근로자 간의 다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의 필요성과 방향: ‘을’ 간의 연합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을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계속해서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그냥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 즉, 노동자들의 커피 한 잔이나 치킨 한 마리 값이 되어 주변 상인들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도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임금이 크게 올랐지만 동시에 소비의 증가로 이어져 고용창출 효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즉, 최저임금의 인상은 ‘을 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을 간의 연대’인 것이다.

물론 이런 긍정적 효과를 확대하고 인건비 인상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가하는 부당한 압력과 불공정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치솟는 임대료 인상률을 통제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임차권을 보호해야 한다. 이는 그간 자영업자들이 부담했던 과도한 비용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부담 여력이 부족한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는 두루누리 사업의 확대와 같은 사회보험료 대납, 조세 감면, 보조금 지급 등의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을 간의 연대’ 이다. 지금 당장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찔끔찔끔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도,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할 수도 없다. 두 자릿수 인상을 통해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수준으로 점차 현실화 될수록 우리 경제에도 활력이 생겨 자영업자들의 생활도 함께 나아질 수 있다.

최근 발표된 KDI의 ‘소득분위별 실질 구매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는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 중심의 소득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직접적으로 저소득 근로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정책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소득 인상 정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경영계 측은 최저임금 인상이 지금의 ‘경제 현실’을 볼 때 무리라고 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경제 현실’은 무엇일까?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높은 임대료와 골목상권까지 위협하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침투로 고통 받는 지금의 경제 현실은 정상적인가?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경영계 측의 배후에는 지금 이 상태로 가장 이익을 보는 기득권 집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최저임금의 실현은 소수의 ‘갑’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다수의 ‘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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