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고 하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 양영희(교육잡지 벗 이사,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7.29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샘의 책 소개] 소리와 몸짓 / 칼 사피나

▲ 동물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전하고 소통한다. 지구상에서 서로 다른 생명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히 손이 간 책 이다.
바쁘게 살 때는 감히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업무와 관계된 읽을거리 만해도 늘 산 같아서 책읽기는 언제나 숙제처럼 과부하상태였었다. 그런데 여유가 생기면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경험을 도서관에서도 한다.

‘소리와 몸짓’의 저자 사피나는 케냐 암보셀리 공원의 열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코끼리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비극 이후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늑대들, 북서부 태평양의 깨끗한 물속에 사는 범고래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포획이후의 고통 받는 모습들을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대로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동물들 곁에서 그들의 작은 소리와 몸짓을 관찰해온 연구자들을 만나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끈질긴 추적에도 귀를 기울인다.

사피나의 따사로운 시선으로 풀어내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인간이 가족이나 연인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려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섬세한 애정이 느껴진다. 코끼리, 늑대, 고래를 지칭할 때 ‘그것’이 아닌 ‘누구’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의 태도와 철학을 볼 수 있다. 동물들에게 숫자나 기호가 아닌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과 짝을 이룬 파트너들의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 다치거나 죽음으로 이별해야 하는 그들의 슬픔을 놓치지 않으며 기록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걸 저자는 상세히 기록한다. 인간도 그렇지만 동물세계에서 어미가 죽는다는 건 한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고 소개한다. 그런 이야길 읽다보면 먹먹해질 정도의 아픔이 전해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의 시선이 나를 끌고 다니며 동물들의 이웃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덩치 큰 코끼리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살포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감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전해들은 동물들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 인간을 중심으로 동물들을 얼마나 대상화하고 함부로 격리시켰는지, 그들의 생명과 종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등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은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죽는, 오래 사는 코끼리는 없다. 지금은 살아남으려면 그들을 그때까지 살아남게 해 주었던 유식한 전승과 지식 그러니까 문화를 포기해야 한다. 고대의 이동루트, 수백 년간 전승되어 내려온 식량과 물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경로를 잊어야만 한다.
 
코끼리도 인간도 죽는다. 코끼리와 우리들에겐 누가 죽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누구 동물인 것이다. 기억과 학습, 지도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이 중요시 된다.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큰 문제가 된다. 지금은 코끼리가 다른 어떤 원인으로 인해 죽을 위험보다 인간에게 살해될 위험이 더 크다. 코끼리는 인간과 만날 때마다 참패했다. 인도와 남부 아시아에서 코끼리는 왕이 타는 동물이었고, 요새를 공격하는 탱크였고, 포로를 죽이는 처형자였고, 화살받이였고, 전쟁에서는 돌격대였다. 통나무 운반수단이었고 불도저였으며 다른 노예들처럼 구타당하고 학대받으며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코끼리 수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아랍상인들은 상아와 인간을 맞바꾸었다. 몇 세기동안 노예와 상아는 처절한 참상 속에서 공존했다.

연구자가 죽은 코끼리의 음성 녹음을 틀자 죽은 코끼리의 가족들이 난리가 나서 여기저기 돌아보고 불러댔다. 죽은 코끼리의 딸은 그 뒤에도 여러 날 계속 엄마를 불러댔다. 코끼리 턱뼈가 수십개 흩어져 있는 캠프주위에서 가족은 정확하게 가모장의 턱뼈를 건드렸다. 가모장의 턱뼈를 자기 어금니로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가모장의 아들인 7세 부치였다.

포획된 범고래는 75일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 갈빗대위로 가죽만 걸쳐진 형상이 되었고 고래에게서는 듣도 보도 못한 상태인 기아지경에 처했다. 그중 한 마리가 그물에 돌진하여 무거운 그물을 등지느러미로 찍었다. 갇히고 탈진하고 굶주린 그녀는 그물을 빠져나와 입을 열어 공기가 빠져나오게 하고 가라앉아 죽었다. 78일째 찰리 친은 굶어 죽을 지경인데도 연어를 입에 문채 동료에게 헤엄쳐갔다. 동료의 코앞에 연어를 떨어뜨려 절반씩 먹었다.

고래는 포획 상태로 2~3년이 지나면 정신건강이 약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시멘트벽 안에 갇혀 뱅뱅 도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은 신경증이 생기고 모두 조금씩 미치기 시작한다.>


생명과학자 김성호는 ‘우리 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책의 서문에서 큰오색딱따구리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고 그 사랑으로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코끼리와 한평생 사랑에 빠지고 어떤 이는 새에, 어떤 이는 꽃에. 어떤 이는 산과 바다에 운명을 건 채 살아간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다른 대상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기에 지구의 생명들은 그나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아무것도 연을 맺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다른 생명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건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는 상아 때문에 멸종위기에 빠진 코끼리를 구해야 한다고 알려오고, 동물원에서 쇼를 하다 죽어가는 고래들을 살리기 위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것이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마음으로 받아서 움직여야 한다.

책을 읽는데 산 아래 자리 잡은 집 마당에 고라니새끼 두 마리가 장난을 하며 겅중겅중 지나간다. 완연한 진초록 들판에 연갈색 털을 가진 고라니가 무척 잘 어울린다. 세상의 새끼들은 다 예쁘고 귀엽다. 그 귀여운 녀석들이 이곳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해서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다. 우리는 지구위의 생명들을 헤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진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동물들을 보는 마음, 즉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그들의 개성과 감정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자적 행복과 완결성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는 걸’ 마음 속 깊게 믿게 해준 점이다. 어느 지인이 지구에서 인간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거란 말을 한적 있다. 소리와 몸짓을 읽으며 그 말이 여러 번 생각났다. 인간의 소리와 몸짓은 욕망으로 순결함을 잃은 지 오래다. 인간은 오랫동안 너무 우리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심지어 인간끼리도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그러니 지구 위에서 다른 생명들과 평화롭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 일은 가능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