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가는 길
해남가는 길
  • 광명시민신문
  • 승인 2017.08.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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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교육공동체 벗 여름연수를 다녀와서 / 양영희 (벗 이사)

시골에서 지내지만 늘 새들보다 늦잠꾸러기고 농부님들보다 느림보다. 그러나 벗 연수에 가는 날엔 일찍 일어나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괴산에서 증평으로 가는 차를 타고 증평에서 자연인을 만났다. 먼 길에 동행하는 벗이 있다는 건 지참금보다 든든한 일일 수 있다. 자연인과 광주행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쯤 가니 기사님이 휴게소에 들르신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 나는 호두과자와 자연인이 내민 커피로 배고픔을 면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등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도 기분이 좋았다.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휴게소에 내리는 경험도 오랜만이다.

길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마음이 먼저 남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15분의 휴식시간이 금방 지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가지고 온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광주에 다다랐다. 5.18기념관이 보이고, 잠시 그때 일들이 스쳐가기도 했다. 어느새 버스는 터미널로 들어갔다. 광주에서는 낭만샘과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낭만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우린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했다. 괴산에 있다 광주란 대도시에 오니 사람도 도시도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난 그 느낌을 기분 좋게 즐겼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망월동에도 가고 무등산도 가고.. ’다 해보고 싶었다. 다시 해남행 버스를 타고 가며 아쉬움이 남는 광주로의 여행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해남으로 가는 길엔 완도, 해남, 땅끝 등 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표지판들이 우릴 지나갔다. 남원이 고향인 나는 남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아니 그곳들이 나를 붙들고 ‘사느라 애썼지? 언제라도 오렴’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국에서 오는 벗들은 쉽게 도착하질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린 대흥사에 잠시 들렀다. 그러나 무섭도록 강한 햇살과 더위 때문에 밖에서의 활동은 무리였다. 겨우 대흥사를 둘러보고 주차장 근처의 식당에서 막걸리와 묵을 시켜 먹었다. 긴 여정에 처음으로 목을 축이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엔 맛을 논할 필요조차 없었다.

첫날엔 30여명의 벗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휴식에 들어갔다. 이튿날엔 연수의 모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고정희 시인생가방문, 김남주 시인생가방문, 팽목항과 기억의 숲 그리고 미세마을 공동체 탐방과 페미니즘 강좌가 이어졌다. 고정희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삶을 생가를 방문해 그들을 추모하며 잊혀지지 않도록 현재화하는 분들의 노력을 통해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살아계신다면 일흔의 나이가 됐을 고정희 시인에 대한 여러 찬사들을 들으며 난 시대의 아픔을 생각했다. 시인의 묘에서 내려다본 연못의 연꽃이 아련했다.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는 ‘어릴 적부터 머슴을 살았던 가난한 시인의 아버지와 에꾸눈을 가진 그래서 한평생 서러웠을 어머니’를 생각한 시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혁명이나 자유란 말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사람 속에 파고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지를 그리는 시에서 나는 보았다.

세월호 100일이 되는 날 팽목항에 갔었다. 그런데 그곳이 이젠 팽목항이 아니라고 했다. 진도군에서 그곳을 진도항이라고 이미 간판까지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많던 시설물과 사람들의 작품, 흔적들을 옮기고 치우며 세월호를 지워내고 있었다. 유족을 통해 설명을 들으며 이 나라 국민은 너무나 하찮고 작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 마음에서 멀어졌다고 판단하며 저들이 행하는 폭력은 참 일관되게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팽목항에 있던 그 많던 깃발들도 보이지 않았다. 진도군은 진도항이라 명명하며 그곳을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하는 중이라 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깔끔히 치우고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안전공원을 만들거라 했다. 위락시설과 함께.

팽목항에서 버스로 10여분 가서 작년에 완공되었다는 세월호 기억의 숲으로 갔다. 오드리햅번 자녀가 와서 낸 기부금으로 조성되었다는 그곳엔 희생자의 수만큼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나무마다 아이들 사진과 이름이 붙어있었고 아이들을 구하다 희생된 고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진도군이 하는 일과 기억의 숲의 내용은 기가 막히게 대조적이었다. 오드리 햅번 자녀의 성금은 감사하고 부끄러웠다. 안산에서도 안전공원과 희생된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으려는 시도가 시민들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하다 있다고 했다. 공동묘지로 인식하며 집값을 얘기하는 시민들과 어떤 대화가 가능할까?

미세마을에서 만난 청년 김단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땅에서 삶을 짓다’에 소개된 이곳은 작지만 마음으로 설계한 공간들이 모여 있었다. 청년들은 다 고민 중이다. 물론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잘사는 방법을 몰라 고민한다. 그 고민의 강도가 더 높은 쪽이 청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한 대로 실험해보거나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청년은 아름다운 시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의 크기가 더 큰 무희망의 시대에서 자존감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몸으로 만드는 중인지도 모른다.

미세마을은 선배들이 한 손으로 가리키고 움켜쥐었던 원칙들과는 다르게 살고 있었다. 강한 규제로 책임과 구속력을 지니려했던 시절에 대한 차별을 보였다. 누구나 사적 시간과 공간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향유한다. ‘따로 또 같이’의 삶속에서 자신을 고민하고 농촌과 공동체에 맞춰보는 시간들에 여유를 두고 있었다. 심한 가뭄으로 물도 나오지 않았던 그 날, 미세마을에서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일구는 더운 숨결을 만났다.

저녁 식사 후에 있었던 페미니즘 강좌 또한 피곤함을 잊은 체 집중하게 만들었다. 강사분은 생산과 재생산을 감당하고 잉여 노동력의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을 국가와 자본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지에 대한 분석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상식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보자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얘기는 진보진영 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주변사람들과 이런 얘기로 불편함을 겪지 않은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그래서 인류 최후까지 화두로 남게 될 일인지도 모른다. 벗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그곳에도 나이주의와 남성주의의 언어는 늘 혼재해 있음을 나는 느낀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기가 힘든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면 문제를 못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목소리의 파이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맘껏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눠지지 않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은 사실은 인간관계의 모든 것 일수도 있다.

먼 훗날 기록이 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우리는 뜨거운 볕 아래서 인사를 나눴다. 허샘이 광주터미널까지 태워줄 수 있다고 해서 자연인과 낭만샘과 함께 허샘차에 탔다. 우리는 가면서 몇 차례 광주로 가는 길을 바꿨다. 그러다 화순의 운주사로 갔다. 정호승의 시에서 운주사 와불을 읽었던 나는 그곳이 오래 전부터 익숙했다. 그러나 직접 가볼 기회는 없었다. 운주사는 한적하고 소박한 절이었다. 천개의 석탑과 불상이 있다는 절이다. 입구부터 불상들이 여러 개씩 군락처럼 모여 있었다. 다양한 불상과 탑들을 구경하며 어떤 불심들이 이렇게 정성으로 타올랐는지 상상했다. 표정도 다양하고 만들다 만 것 같은 미완의 불상도 많고 그야말로 불심만으로 부처가까이 가려는 노력처럼 흐뭇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와불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맑은 하늘아래 여름 햇살 받으며 누워있는 와불은 한 분이 아니었다. 옆에 나란히 누운 분은 누구일까? 부처를 종교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 여긴 조상들의 정이 느껴졌다. 뜨거운 여름만 아니라면 부처님 팔 베게라도 하고 한동안 누워있다 가고 싶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와불 앞에는 와불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이름 난 절들은 이미 자본의 물결이 뒤덮여버려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그 흔한 식당도 없었다. 오래전 숨결 그대로를 간직한 운주사, 나는 운주사 와불님을 꼭 다시 뵈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리 와서 짧게 끝나버린 이번 연수는 해남이어서 볼 수 있었던 인연들과 그래서 만날 수 있었던 와불까지 모두 내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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