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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아래 새
마음여행
2018년 01월 23일 (화) 14:31:19 이경달 ccc8620@hanmail.net
막말은 구정물이다. 막말은 욕망한다. 흔하다. 어떤 이에게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다. 전체주의를 경험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언어가 무엇인가. 작동 논리는 무엇인가. 그런 물음은 늘 존재해 왔다. 아이들 말다툼에 ‘약’이 오른다고 한다. 어른들 말다툼에도 이런 ‘약’이 오른다. 퇴색한 언어학에 ‘의미론’이 있었다. 기표와 기의 그러니 말에는 의미가 있다. 언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곧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겨울바람은 골짜기에서 쇳소리다. 소리는 흐르지 않는다. 한밤 마당에 서면 칼 부딪히는 소리다. 무수한 칼이다. 그 계곡을 끼고 집들이 있다. 근년에 들어섰다. 오래된 집터는 바람을 피해 홀로 서 있다. 갑자기 등장한 집들은 그저 길가에 자리 잡았다. 계곡에 바람이 분다. 여름계곡은 물소리가 집을 흔든다. 욕망이 집을 지은 것이다. 공간을 쉽게 채우는 방법으로 계곡에 집을 지었다. 집은 마음의 상징물이기도 한 까닭이다. 나는 상상한다. 허술한 집에서 칼 부딪히는 소리와 물이 집을 흔드는 소리는 무엇이 될까. 그래도 사람들은 문풍지를 알루미늄과 유리로 보완하고 돌담을 쌓고 산다. 줄어든 소리는 눈을 감으면 무엇이 되고 또 눈을 뜨면 무엇이 될까. 잠은 들 수 있을까. 새들도 이 소리를 듣고 고양이도 듣는다. 고양이와 새에게는 이 소리는 무엇이 되는가.

언어. 말. 말의 의미는 감정이다. 육체와 마음의 경계에서 이루어는 것이 어떤 말이다. 욕망하는 언어다. 무서운 언어다.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그 소리는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아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한 풍속이 있었다. 그 소리는,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저주를 불러 귀한 아들을 해코지 한다는 믿음이다. 나이든 사람의 이름은 더욱이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했다.

작은 새 참새들이다. 박새와 동박새 어쩌면 곤줄배기가 창문을 두드릴까. 새들은 날 때가 있다. 내가 보고플 때가 아침이다. 사방 창가에 나무가 있고 작은 덤불도 있다. 그들이 와서 창을 쪼는 모습과 통통거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보고 싶은 것들이 흘러간다. 새들은 나무와 돌을 구분하고 땅과 하늘을 구분한다. 해가 지는 쪽과 해가 뜨는 쪽을 구분한다. 무리지어 다니는 그들은 같은 종족을 알아차린다. 새들의 욕망에는 구분이 있다.

마음이 있느냐라는 물음은, 현실에 대한 자기 태도이다. 일상 언어가 분출된다. 출발점이 어디일까. 마음 어느 곳에서 솟아오르면 앵무새처럼 외친다. 근육으로서 입이 열린다. 분화되지 않는 언어의 분출은 진화심리학으로부터 심층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알려지고 발견되어진 현상이다.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언어가 가진 잔인성 때문이다. 그러니 입에 모터를 달고 조립해 내는 언어는 인간이전의 것이다. 인간세계에 인간이전의 언어가 발화된 것이다. 물고기는 물아래 깊은 곳에서 생성되고 양육된다. 인간의 많은 충동성도 아마 이 물고기와 비슷한 공간에 발화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어떤 언어는 충동성에 공격성을 품고 나타나고 또 살기를 품고 나타난다. 공격성이나 살기에 ‘사기 행위’는 거저 장식이다. 일상 언어에는 설명하는 기능이 있다. 분출된 언어에는 설명이 없다.

비디오. 오디오. 녹음하고 녹화해서 자기의 소리를 ‘내’가 어찌 발화하였는지 그리고 본인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근원을 물어 볼 일이다. 단기간 목표를 가진 스크린의 그들이 아닌 일상에서, 대체 무엇을 ‘내’가 말하는 지 물어본다. 그러면 내게 그들이 뱉는 말의 무게와 질량도 파악된다. 섬뜩하다. 단지 입에 모터를 단다거나 인간이전의 무엇이 표출된다는 것을 알아도 섬뜩하다. 안다는 것과 섬뜩한 감정은 크기와 세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막말의 많은 부분은 물 아래와 수면 그리고 펄쩍뛰는 물고기의 형상 같지만, 물 아래 어떤 부분이 동력으로서 살기이다. 높은 건물에서 높은 지위를 가졌다는 그들의 말에서 느끼는 섬뜩함의 정체는 살기이다. 성장을 하고 화장을 하거나 성형을 한 얼굴로 ‘어떤’그들이 하는 행위의 전면에 서 있는 ‘그 언어’는 살기다. 말의 의미는 살기다. 취직을 묻는 그들의 언어, 장래를 걱정하면서 묻는 그들의 언어에서 ‘본디’목적을 넘어 살기가 느껴지면 반발한다. 유사한 반발도 있다. 방을 치우라는 말에 반발한다. 반발하는 그들의 내부가 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 기표에 대한 기의로서 살기다. 살기는 공격성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런 말이 넘친다. 스스로 겁에 질리는 투영도 있다. 이 둘이 서로 섞이면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지상에 없다. 문해능. 문장 해독능력이다. 다양한 곳에서 능력을 조사한다. 우리가 문해능을 말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더구나 책을 읽지 않고 아는 체 하는 그들의 위험성이다. 이때 인간은 현실 아닌 망상으로 퇴락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에서 우리는 이상한 그것, 그러니 불쾌를 느낀다. 이것을 전략이니 뭐니 떠든다. 떠드는 그들이 물 아래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이런 물귀신은 물 아래 살지 않는다. 무심한 말이 섬뜩한 이유이다. 이것들이 ‘막’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체주의의 그들이 행한 그 비극을 잊은 듯하다. 그런 말을 받아쓰고 또 옮기는 부류가 있다. 의도적인 그들이 미운 이유이다.

새들의 소리는 단지 소리는 아니다. 뱀이 있거나 고양이가 나뭇가지 아래에 있을 때와 아침 나를 보는 소리가 다르다. 새끼가 부화했을 때의 소리가 다르다. 요란스런 소리는 인간의 부사이고 감탄사이다. 새들의 소리다. 내게 발견된 고양이는 멋쩍어 한다. 뱀을 만난 새는 단호하다. 긴장이다. 이 긴장은 살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이 살기를 읽는 능력에 있다. 새들이 비상을 멈추어도 욕망과 정력의 배출이 혼재 되어진 언어는 아닐 것이다. 나무가 사라지고 돌이 사라지고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사라지고 물위가 사라지고 물아래가 사라지는 것은 언어가 아닐 것이다. 막말은 언어가 아니다. 그저 칼을 든 난폭한 행위의 변모이다.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이 따스했다. 팔각정으로 이사를 했다. 따스했다. 따스한 겨울에 봄날의 기운을 느낀다. 추운 집에서 겨울은 너무 길었다. 말이 다양한 의미로 분화되고 그 가지 끝에 잎이 달리고 꽃이 피기를 바라지만 쓸쓸하다. 다채롭고 다양한 언어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특징이라고 하는 데 아직 도상에 있는 듯하다. 새는 영혼이기도 하다. 물 아래 물고기는 곧 새이기도 하다.

 

-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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