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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마음여행
2018년 01월 31일 (수) 08:10:11 이경달 ccc8620@hanmail.net

편 가르기

마른 갈색 잎이 흔들린다. 신나무의 겨울이다. 고양이들이 모습을 다시 보일 때가 있다. 귀소본능. 생명은 유출되고 생명은 귀소 한다. 새. 흰색과 회색 검은 색이 섞인 작은 새도 유출되고 귀소로서 창을 두드리고 덤불을 폴짝거리는 것인가. 밀도는 확산하거나 이동한다. 움직임을 막거나 줄이기 위해 쇠를 단조할 때 열처리를 한다. 생명이든 아니든 내부는 진동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고 있었다. 해가 있을 때 편을 갈라 놀이를 한다. 탈락하는 아이들이 있다. 놀고 싶으나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러운 눈길이다. 해가 지고 아이들이 떠나가기 시작하면 여태 끼워주지 않았던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게 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같이 놀기를 바라면서 혹 가지고 있는 사탕이나 껌 아니면 먼 훗날을 약속한다. 갈 곳이 없거나 빈집으로 또는 가기 싫은 집으로 가야할 그들이 운동장에서 마지막까지 서성거린다. 놀던 아이는 떠나가고 어둠은 내린다. 사탕도 껌도 약속도 소용없는 빈 운동장에 내리는 야속한 어둠이다.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어떤 조건 아래서 동물과 닮은 형태를 본능이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본능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아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가. 해부학적으로 다른 단 하나의 부분은 ‘대뇌신피질’이다. 관계를 가지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유리잔을 마루에 던지면, 깨어질 것이고 엄마가 화 낼 것이고 내가 치워야하며 그리고 벌로서 다른 청소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법률적으로 인정하는 6세라든가 또는 10세라든가 하는 내용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나이 그러니 대뇌신피질이 적당히 작동하는 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훈련이 필요하다. 초등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다. 이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평생 받아쓰기로서 ‘단어’이고 반복되는 ‘단문’이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권하는 방법은 ‘이미지’훈련이 있다. 운동선수들이 흔히 사용한다.

‘너와 나’ ‘나’ 이런 생각의 훈련이 쌓이지 않으면 ‘나와 너’의 구분이 없다. 곧, 완고하고 떼쓰고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나무와 돌을 구분하지 못하면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받는다. 물고기와 새를 구분하지 못하면 역시 의심받는다. 의외로 ‘나와 너’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이 두 가지는 서로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들에게 현실은 없다. 무엇을 ‘하면 된다’는 그들이, 혹 운이 좋아 이루어져도 곧 본디의 자리로 돌아가 있음을 본다. 가수를 보고 나도 가수가 되겠다는 것은 이런 현상이기고 하다. 재능과 노력과 운이 필요한 것이 가수다. 가족들에게 재롱을 피우던 모습으로는 힘들다. ‘나와 너’의 구분이 없어야 된다는 말을 인용하는 분은 그 말이 지칭하는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그건 마음의 어떤 층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정신 분열증’의 징조다. 또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치매’가 있다. 치매를 일컬어 ‘6세 이전의 나이로 돌아갔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현상은 무책임하다. 약속이 없다.

생각하지 않고 나이를 먹는 것을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의식이 분화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첫발을 디디지 못 했으면, 지금이라도 디디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숙명이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은 운동선수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씨름선수. 그들은 이미지로서 너와 나의 구분이 확실하다. 상대 덩치와 몸무게와 기질과 그리고 그의 특기를 그린다. 나는 나의 덩치와 몸무게와 기술을 그린다. 이렇게 하면 이럴 것이고 이런 페인트 동작을 하면 그는 이렇게 수비와 반격을 한다. 그러면 ‘이렇게 한다’라는 이미지 훈련을 한다. 지나치면 그 다음 그 다음으로 이미지가 발산한다. 인간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계를 설정하고 이미지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변형된 생각이다. 사고에 익숙하지 않으면 먼저 이런 이미지로서 생각 하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언어로서 사고하지 않는다. 감정으로서 사물을 본다. 그래도 너와 나의 분화와 그리고 나의 내부와 외부의 분화로서 의식이다. 이것을 가지고 명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곧, 고도의 분화와 명징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세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명상의 세계다. 그렇지 않고 들어가면 치매와 정신분열증의 위험한 함정이 있다. 의식의 분열, 현실 탈락이다. 이것이 운명이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무엇이 나를 현실로부터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인생에 지름길이 없다. 명상은 그저 인간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명일 뿐이다. 인간의 성장은 일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저 산 아래 종소리는 내게로 온다. 나는 종소리가 되어 온 산을 울린다. 우리는 내 안의 마음을 그저 탐구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에는 공포와 살기 그리고 유혹하는 ‘두려움’의 세계이고 오는 자에게 ‘광기’를 선물하는 곳이기도 하다. 종소리가 내안에 들려오는 무심한 경험과 달리, 저 산 아래의 종소리가 내 안에서 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사실과 내가 소리가 되어 공간을 넘어 울리는 사실이다. 내가 소리가 되는 것이고 소리가 나인 것이다. 층위와 측면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흉내는 없다. 흉내는 콤플렉스다. 현실 상실이다. 층위와 측면이라는 것은 일부라는 의미이다.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간이 무엇이 되는 ‘곳’은 마음의 아주 작은 일부이다.

글 카피하기, 그림 카피하기 그리고 인생을 카피하기. 삶을 복사본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삶’은 그저 잘난듯한 감정이다. 삶을 잘난듯한 느낌으로 살 수는 없다. 카피의 삶은 그저 그렇다. 배구. 스파이크를 실패한 선수를 감독이 이름을 부르면서 스냅을 넣으라고 한다. 너와 내가 다른 이유로 스냅을 ‘선수’나름으로 이해한다. 이해도가 높으면 비슷하게 이해하고 더 높은 이해도는 곧 게임 전부를 읽는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면, 스냅을 넣는 이상의 무엇을 보여준다. 어느 평범한 그가 10여개 외국어가 자유로웠다. 그는 잠깐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그와 내가‘ 다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가 그의 마음의 샘에서 맑은 물을 한 컵 떠서 내게 건네주고, 그걸 내 맘에 넣으면 무엇이 될까. 그 물은 모양과 색깔뿐만 아니라 맛까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형태와 다른 맛의 그것을 ’물‘이라고 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면 물의 구분도 없다. 색의 구분도 없다. 물이 그릇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것도 없는 것이다.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어지는 그 말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오래전에 획득된 소리의 반복이다.

구분은 어렵다. 사회가 복잡해진다는 것은 이런 구분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이다. 30여 년 전 컴퓨터 구조를 고민한 사람은 지금의 퍼스날 컴퓨터가 구현한 세계를 보면 그저 놀란다. 그의 생각이 무엇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부는 고도로 복잡한 논리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삼단논법은 없다. 너무나 간단하고 작은 범위에서 임의적으로 가져다 사용한 그런 인과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도로가 잘되어 있고 신호체계도 괜찮고 운전 솜씨도 반듯한 데 사고가 나면 이것은 시스템에 내재한 결함으로 여긴다. 언론에서 간단한 설명으로 밝히는 이유는 실제와 거리가 멀다. 인간은 수많은 화학적 시스템의 알 수 없는 운동이다. 그러니 조금 더 조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촛불을 켜는 것과 같은 의식이 필요하다. 촛불은 작아도 어둠을 물리친다. 의식은 빛이다.

등불을 든다. 등불을 들고 만난다. 그 등불은 나를 비추고 그리고 너를 비춘다. 아니면 너를 비추고 나를 비춘다. 성인 초상에 후광이 있다. 빛은 깜깜할 때 몰랐던 이것과 저것을 구분한다. 야생의 그들은 밤이 두렵다.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빛이 강하면 보다 분명하고 보다 멀리 구분한다. 그러니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빛은 밝은 부분과 그림자를 구분한다. 어둠은 어둠일 뿐이다. 빛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때 그의 도덕과 윤리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배운다. 유아에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출발은 너 나의 구분이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묻고 삶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비참한 것은 그런 구분이 안 된 늙은이가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이런 구분이 쉽지 않는 까닭이다. 곧 생각하는 습관을 일상화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생각이 들어간 집이 감동을 준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집은 그의 생각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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