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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는 것, 그건 무슨 의미인가
마음여행
2018년 03월 04일 (일) 02:27:09 이경달 ccc8620@hanmail.net

어둡다는 것, 그건 무슨 의미인가

 

저녁이 오면 밤은 온다. 흔들리지 않는다. 어스름과 밤. 그리고 빛나는 별들. 떠오르는 달의 밤. 그믐의 밤. 그믐에 구름 낀 밤. 칡흙이다. 드물게 경험한다. 둘레의 전기가 다 사라진 태풍의 밤이 비슷했다. 가로등이 사라지고 이웃의 불빛이 사라지고 자동차 불빛도 사라지고 그리고 먼 산등성이를 비추는 불빛도 사라지는 밤이었다. 진한 안개나 폭우의 밤에 전등을 내리면 그건 다른 세계가 된다. 오래전 산골 칡흙의 밤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도회지와 우리의 방은 너무 밝다. 어둠이 물러선 것이다.


   


아무도 이곳에는 없다. 안개가 소리를, 덤불의 새소리마저 막았다. 소리가 없다. 날은 따스하다. 그래도 돌로 된 난로에 불을 피울 것이다. 난로는 쇠문으로 닫혀 있다. 불을 피우는 날은 전날의 재를 치운다. 그리고 불을 피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매번 새로이 만나는 일이 된다. 재는 한줌이고 숯이 한 주먹이다. 불의 마지막에 쇠문을 닫은 탓이다. 숯. 사용할 곳을 이리저리 생각하지만 그냥 불구덩이에 던진다. 불의 재가 된다.

지하. 무엇이 있을까. 지하가 일반화되었다. 도로에 지하가 있고 건물에 지하가 있다. 반 지하 공간에 사람들이 산다. 지상을 걷는 사람보다 지하를 다니는 일상이 많다. 도회지는 그렇게 되어 있다. 아래에 땅이 있고 위에 지상이 있다. 해가 있을 때 지상을 다니던 ‘일상’은 희미해진다. 지하에는 참 많은 지상의 것들이 내려와 있다. 곰팡이 냄새와 그것을 가리는 화학약품. 차가 사라진 인도와 지하철 선로. 일목요연한 계단과 선전물. 어디로 가는 사람들과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파는 사람들. 안내문과 청소하는 사람들.

깜깜한 밤. 정전의 밤. 비오는 밤. 켜둔 촛불마저 내리면 그곳에 있는 어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선지 전지에 먹을 칠해두고 바라보면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그저 무채색의 검은 빛인가. 어둠은 단지 빛이 없는 세계인가. 별을 본다. 밤하늘의 작은 빛을 보면 우리는 그 빛깔에 감탄하고 그 빛깔에 그저 매료되는 것인가. 별은 빛인가. 스펙트럼으로 분류되는 빛의 나열인가.

귀가 어두운 그들이라고, 눈이 어두운 그들이라고 한다. 말에 밝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굴욕과 치욕의 그 때이다. 굴욕과 치욕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희한하게도 어두운 곳에서는 굴욕과 치욕의 말도 통하지 않는다.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야생의 그들은 밤이 참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 항시 불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 야생의 그들에게 빛이고 또 무엇이 된다.

인간 내부에 무엇이 있는가. 말과 행동. 입력과 출력의 중간에 위치한 기계라면,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것이다. 정교하다면 입력에 대한 출력도 정교할 것이다. 드물다. 이율배반을 보기 때문이다. 한 입으로 다른 소리를 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 졌다고 했다. 산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저 그냥 볼 때가 있다. 저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때가 있다. 새가 ‘때때로’ 달라진다. 내부에 무엇이 있는가. 일관성의 그들과 달리 일상이 이율배반적인 그들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일관되지 않는 일상의 이중성. 죽음을 앞둔 그들이라는 것은 단지 기계의 고장 그러니 뇌의 이상으로 인한 ‘치매’나 ‘조현증’의 징후인가.

순간 돌변한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의 연결논리는 ‘ 때문에’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고 한다. 철없는 짓거리. 경계 없는 조건으로 인간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논외이다. ‘화폐’로 규정된 범위가 있다. 그걸 너머 길거리의 쓰레기도 잘하면 돈이 되니 쓰레기도 ‘화폐’로 여긴다든가, 암의 치료가 돈이 되는 현실에 암은 ‘화폐’라고 표현하는 주장은 그저 그렇다.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다.

인간 마음의 많은 부분은 작은 빛을 간직한 어둠이다. 그림자에 가까운 부분이 있고 깜깜한 바다 같은 부분이 있다. 어둠은 방향상실을 가져온다. 머물러 있으면 방향이 상실된다. 바닥은 고도로 농축된 암흑물질이 폭발하고 있다. 의식의 출발점이다. 어둠이 빛을 탄생시킨다. 의식을 탄생시킨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에는 이런 빛이 포함되어 있다. 장작불에도 어둠이 있다. 폭발하는 암흑물질을 가로지르는 여러 가지 추억과 소리 그리고 다른 밀도의 공간들이 혼재한다. 의식의 빛이 조금 스며드는 곳은 그늘져도 화려한 오방색과 대지를 울리는 소리와 감정이다. 인간 내부에 있는 것이다.

깜깜한 곳에서 눈을 감는다. 해질녘 어스름의 그곳에서 유리구슬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본다. 약한 빛에서 일어나는 이미지들은 무수하다. 이야기가 있는 풍광이 지나간다. 저녁 유리구슬이 아니라도 멍한 눈에는 캐러번의 낙타가 지나가고 로마시대라고 생각되어지는 길거리와 마차와 궁전을 본다. 어떤 이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본 것을 넘어선 다채로운 색과 풍광이다. 빛이 강해지거나 의식이 또렷해지면 대부분 사라진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런 이미지가 있다. 이것을 현실로 여기는 야생 부족들도 있다. 아이들이 꿈을 꾸고 울먹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진실한 그들의 배후이기도 하다. 빛이 더욱 적어진 그 공간으로 또 들어가거나, 밀도가 더 높은 그곳으로 가면 어찌 될까. 충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검은 화산들이 무수히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화산이 붉은 빛으로 폭발한다. 이 검은 화산의 폭발도 분노 격정의 검붉은 빛을 남긴다. 화산에 타죽듯이 분노와 격정에 타 죽듯 그저 휘둘릴 뿐이다.

화산재. 분노와 격정의 끝. 정서가 신경세포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그들이 있다. 그들은 몇 개의 신경세포가 하는 역할이 다대하다고 여길 것이다. 신경세포를 양자역학의 현재로 생각한다면 이해가능하다는 말은 듣고 그저 지나간다. 마음에는 납득할 수 없는 다양함이 존재한다. 격정의 그들은 얼굴이 바뀐다. 격정을 빛에 비추어 본 자도 얼굴이 바뀌어져 있다. 지구의 화산재가 대지를 윤택하게 했고 그것이 생명의 다양성을 낳은 근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깜깜하지만 ‘생명력’이 있다. 불합리한 어떤 것과 허망한 무엇이 파급력을 가진 이유이다. 예술에서 보이는 ‘정서적 동의’는 이런 것을 바탕으로 한다. 미학은 인간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지 없이 인간은 없다. 동굴에서 인간은 빛을 잃는다. 그러나 그곳은 ‘편안함’이 있다. 넋을 놓거나 의식이 희박하면 즐겁고 편안하다. 평화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이것은 빛없는 동굴의 속성이다. 동굴의 위험은 강력하고 ‘반사회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지혜는, 돈과 권력은 몰락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러나 위력을 떨친다. 지나치게 가난하면 굶어 죽거나 죽도록 일하다가 죽는 현실이다. 동굴은 이 현실을 도외시하는 현상과 돈과 권력을 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궁극의 권력과 돈. 역시 검은 화산의 폭발이다. 큰 키 나무와 작은 키 나무가 있다. 화려한 색의 새와 작고 조그만 참새도 있다. 현실의 모든 것을 같은 종으로 분류한다. 그건 편의일 뿐이다. 강가의 돌은 모두가 다르다. 다른 현실을 평균으로 우리는 살고 있다. 곧 내가 현실이라고 느낀 이것도 빛과 어둠의 혼합이다. 어둠에 빛이 있듯이 빛에도 어둠이 있다. 태양에 흑점이 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그곳에도 비이성적인 부분이 반드시 작동하는 것이다. 순간의 감정이 일을 뒤집기도 하는 이유이다.

원색은 없다. 어떤 빛이라도 스펙트럼 분석을 하면 혼합이다. 단일한 소리도 없다. 다양한 소리의 혼합이다. 단일성 뒤에 존재하는 빛과 소리가 다양성인 것이다. 다양한 일상에서 선택적인 일관성이다. 이것이 진보하고 퇴행한다. 일상의 일관성을 상실한 그들은 빛이 너무나 희미한 마음 구멍에 빠진 것이다. 혼자 일어서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퇴행의 그들은 쇠락한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보자기에 이런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낡은 책과 풀씨와 땀방울을 넣고 다녀야하는 이유이다. 등한시하거나 버릴 것으로 치부하면 이 구멍에서 일어설 힘이 없다. 그저 더해가는 어둠이고 무시되는 빛이다. 분열증이 치유되는 경우가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보자기를 풀고 그리고 둘레의 작은 빛을 찾는다. 그리하면 내가 감정적으로 손상되고 내가 한탄한다. 그것이 검은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자기정당화는 없다. 이 행위가 사다리에 발판을 하나씩 하나씩 구축하는 행위이다. 재생이고 부활이다. 한 입의 두 소리가 나쁜 의미로 들리는 것은 그들도 이런 검은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임사를 경험한 그들이 완전히 바뀌어진 것을 알고 있다. 죽음의 실감이 불안과 무정의 감옥으로 부터 탈출한 것이다.

새가 난다. 빛이 들어 열린 동굴이 된 지하도 위 하늘에 새가 난다. 빛이 든 지하도는 검은 흙 위에 서 있다. 새가 난다. 대지에 둥지를 튼 나무 위로 새는 난다. 하늘에 새가 난다. 하늘은 땅위에 있다. 빛이 있는 동안 하늘과 땅은 구분이 된다. 밤에 새는 좀체 날지 않는다. 드물게 나는 그 새들은, 그 새들을 누구는 두려워했다. 어둠을 나는 마음의 새인 듯 착각하기 때문이다. 육체와 짝하여 있는 마음은 육체가 없으면 흩어진다. 육체와 영혼은 양 날개다. 구만리 새는 하늘이고 그가 머무는 가지는 대지이다. 인간은 감정으로 난다. 그러나 마음 어두운 곳에서 어른거리는 그 모습이 밤을 날아오르는 새와 중첩되기도 한다. 어떤 사실이 감정적으로 증폭되는 이유이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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