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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기억들
마음여행
2018년 03월 26일 (월) 11:43:22 이경달 cc8620@hanmail.net

사라진 기억들

 

작은 새를 본다. 또 큰 새를 본다. 새의 크기. 크기가 가지는 위력이 있다. 크다는 이유만으로 감탄하기 때문이다. 산등성이에 잔설이다. 언젠가 내린 눈이 남아 있다. 큰 새. 작은 새가 큰 새가 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큰 새였는지. 그런 진화를 누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작은 새는 즐겁다. 밝고 조잘거리고 나이가 들어도 아이 같다. 덩치가 가지는 의미인 듯하다. 작은 새가 큰 새가 되었다면 큰 새는 작은 새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역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새들에게 기억이 없으면 무엇이 될까. 어미 잃은 고양이가 사냥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자신 안에 있는 ‘사냥의 기억’을 불러오지 못한다. 더구나 그들이 새끼를 잘 양육하지 못한다. 후천적인 교육이 결여되어 ‘본능’이 작동하지 못하는 듯하다. 양육과 사냥은 대단한 복잡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설명에 밝은 그들이다. 단지 한글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설명이다. 한글이면 안다고 생각하는 오류다. 글자와 내용을 분리하지 못한다. 그의 의견을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독창적이라고 한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을까. 사이비종교이다. 거래에서는 사기꾼이 되지만 단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몰락이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이 아니냐는 물음을 떠나 ‘너 나가 사라지고’ ‘나와 너 사이의 물(物)’이 사라진다. 그런 그들의 말년을 본다.

이들에게 부산물이 있다. 불안과 확신이다.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란, 돌을 나무로 부르고 위쪽 나무를 아래 쪽 물고기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에 비친 이미지를 그는 읽고 해석한다. 불안과 확신의 ‘읽기’이다. 고전에서 흔히 벌어진다. 그것이 기계 사용설명서이거나 화학약품 취급설명서라면 끔찍하다. 인간의 문제는 보다 섬세해야 한다는 기본이 사라진 읽기이니 불안이 부산물이다. 불안은 불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곧 낯설고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형태로서 새로운 무엇의 생성이다. 번뜩이는 확신이다. 불안과 확신은 양 날개다. 번뜩이는 확신은 또 무엇을 생성한다.

‘읽기’에 지나치게 독창적인 그들의 생성물은 그들을 중독시킨다. 중독은 반복적이고 납득하지 못하는 둘레를 향한 설교다. 그들이 그들에게 독을 주입한다. 고전이 있고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태도는 무엇을 생성한다. 생성된 독을 자기 자신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저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이 이상한 읽기와 결합되는 현상이다. 그러니 의도적인 이상한 ‘읽기’는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고 그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읽기는 ‘중독자’를 만든다. 이런 현상은 ‘의미론’을 탐구하는 분들에게 알려져 있다. 중독현상에 대해서는 임상 심리학은 ‘잘’ 알고 있다.

과거가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기억이 사라진 사람에게 윤리가 있을까. 아마도 도덕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건 개에게도 도덕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고 원숭이나 고양이에게도 도덕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의미를 찾는 생물학자에게는 낯설지 않다. 본능으로 분류된 생활의 많은 부분은 인간 독특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동체의 많은 부분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많은 부분이 전해 받은 것, 그러니 신들의 세계로부터 온 ‘계시’의 증거이다. 본능은 인간이전의 것들이다. 그러니 기억이 사라져도 남는 것이다. 야생의 사회에서 발견하는 도덕이다. 복수를 가르치는 부족에게 복수는 ‘도덕적인 행위’이다. 손해 보는 대표적인 행위로 경제학은 치부한다. 가족중심사회. ‘사회가 지적하는 아버지의 부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과 달리, 부끄러워 가족에게 반기를 드는 곳이 있다. 유럽의 근대를 이끈 사람과 어떤 우리와의 차이다. 가문을 중시 여기는 곳과 가족을 중시여기는 곳의 문화 저변에 깔린 것도 역시 ‘물려받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세세한 지시와 차도와 계단 방향, 공공재를 개인이 ‘함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위적이다. 윤리다. 여기에는 사회질서를 위한 강제가 들어 있다. 기억이 사라지면 이런 인위적인 것은 사라진다. 가족주의가 등장하고 공공재도 먼저 가진 자가 임자라는 무심한 마음이 상실된 기억이다. 윤리는 체득하기 어렵다. 본능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산골에 찻집을 낸 그들이 감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의 감각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임의적’이었다. 언덕길이 생겼을 때 더불어 생긴 식당과 숙박업소는 생경한 풍광이 되었다. 저기 돌아가는 도로에서 보이는 하얀 건물의 펜션들이 비바람에 견디는 것도 신기하다. 그들이 ‘자기 생각이 있다’고 자신만만하였지만 업자들의 좋은 일거리였다.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 뒤에는 ‘어린아이 마음인 물려받은 기억’이 숨어 있는 듯하다.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것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행위’는 사라지고 지나침만 남는다. 수전노와 낭비벽. 돈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지나침은 보고자 하는 것 듣고자 하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동물에게 이런 일은 드물다. 그들이 사냥할 때도 모든 집중력이 그곳에만 있지 않고 교미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만 보고 하나만 듣는 것은 곤충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어린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다. ‘모든 것’을 걸고 갉아 먹는다. 가장 낮은 레벨의 본능에 머물러 있다. 육체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 본능이 분화되고 분화되면 다채로운 감정이 된다. 세상을 읽는 눈이 된다.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곳에는 도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으로서의 어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어디까지 퇴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불 없는 깜깜한 밤보다 ‘위험’한 것은 이렇게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행위이다.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어떤 정치지도자를 구세주로 여기거나 어머니로 여기는 일이다. 그가 나의 모든 고민을 해결하고 그가 나를 보살펴 주리라는 ‘완전한 기대’이다. 좋은 정치라도 이전의 것들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정치의 특성이 미래를 열기 힘든 이유이다. 설거지가 안 된 부엌을 가진 집에서 생활하기 힘이 든다. 그러니 눈을 뜨고 하나하나씩 확인하고 의미를 확인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대충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혼자 돌아다니면서 나름의 상상과 임의성을 가지더라도 뭐라는 사람은 없다.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설이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책의 출판.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그런 책을 출판해 주지 않아도 자비로 할 수 있다. 공공성이 사라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저 해프닝이다. 그러나 영향력을 곧, 공공의 영역에 들어서면 이건 달라진다. 공공의 영역에서 행해지면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책임을 요구한다. 강제성을 띠기도 한다. 책임을 등지는 행위에 대한 시선이 싸늘한 이유이기도 하다.

임의성과 자의성이 부풀면 풍선이 터지듯 터진다. 시도 때도 없이 자비로 내는 책은 돈의 탕진이다. 현실을 떠나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가진 무게가 없어서 둥둥 떠다닌다. 동정을 구하기도 하고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병들어 죽을 걱정에 잠을 잊는다. 아니면 부른 배에도 끊임없는 허기를 느낀다. 빠르거나 늦거나 이런 결말이다. 대개 원인과 결과는 직선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직선적이다.

잘 모르는 외국어를 번역기를 통해 한 페이지 정도를 만들고 의미를 붙여보라. 납득하지 못해도 해설은 가능하다. 실은 몇 개의 소리에 익숙한 그들이 펼쳐진 문장을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해설뿐만 아니라 의미 전개까지 가능하다. 그저 웃고 지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잘 아는 모국어라고 당연시한다. 조건이 잘리고 문맥이 잘린 단어의 나열이나 단어에 해설과 의미를 붙이는 행위를 본다. 왜곡이다. 왜곡에 또 왜곡이다. 출발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이었다면 종말엔 그도 미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런 말 아래 섬뜩함이 있다. 단어가 저주나 마법의 부적이 된 탓이다. 급한 것은 이런 말에 자의적인 해석을 붙이는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이런 말은 강렬하다. 스스로 무엇이 된 느낌을 준다. 마약이다.

창으로 보이는 산과 산 위의 하늘이다. 투명하지 않다. 미세먼지라면 도회지에 사는 ‘누구’를 생각해야 한다. 고양이가 그의 기관지를 튼튼하게 해준다며 걱정말라든 목소리를 기억한다. 마음속에 그리는 것 외에는 내가 할 것이 거의 없다. 잘 있느냐 괜찮으냐고 묻는 정도다. 그가 나보다 많은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있다. 치밀한 그의 성격이 자기관리를 잘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생각으로만 머문다. 다시 전화로 물으면 늘 같은 말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무탈하다는 것이다. 봄날 미세먼지다. 오래 전에 내리던 황사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머지않아 송화 가루 날리는 날이다. 물이 고인 자리에 노랗게 앉은 그 꽃가루이다.

결핍. 참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다.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 궁색이 사라지고 윤택해 지는가. 죄악이 되는 것은 지나친 의미 부여이다. 역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그것들이 보이는 윤택만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풍성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 풍성할 어떤 행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윤택을 향해서 곁가지를 모두 쳐 버리는 행위다. 반복이다. 이들에게는 기억이 사라지고 마음이 증폭시킨 어떤 물건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도 없고 추억도 없고 슬픔도 없다. 단 하나의 그것은 기억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 그저 작은 원을 뱅뱅도는 추동력이다. 그 추동력에 따른 움직임이고, 동일한 행동 패턴이다. 시간과 무관하다. 콤플렉스이고 신들린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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