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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시
마음여행
2018년 04월 10일 (화) 07:49:01 이경달 cc8620@hanmail.net

패션과 시

 

산마루와 흰 구름. 비가 내린다. 산에 비가 내린다. 아침이면 창을 쪼아대던 작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는 탓이겠지.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계분 냄새. 트랙터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흙먼지가 냄새와 더불어 사라진다. 도회지에서 비가 그리웠다. 같은 이유인 듯하다. 먼지와 냄새가 비온 날 덜했기 때문이다. 하천은 복개 되었다. 그 때 비 냄새와 물비린내가 도회지에 있었다. 역 가까운 곳에서 화장실 냄새와 벽체 같았던 기름 냄새는 비와 무관했다.

   

비는 바람과 함께 한다. 풍경이 운다. 몇 개의 풍경이 운다. 바람이 쇳소리를 가져왔다. 인적 드문 탓에 들리는 소리라고 말을 보태는 사람이 있었다. 봄날은 늘 피곤하다. 겨울도 피곤했다. 만나면 다들 생기 넘치는 데 피곤하다고 한다. 어쩌면 육체의 피로를 뜻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멀쩡한 파리 뒷골목이 부패하고 언어가 세상을 절망케 한다는 탄식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보들레르’가 말의 대상이었다. ‘오드리 햅번’의 옷과 머리스타일이 소재였다.


패션. 어디에서 오는가. ‘돈’이 되니 빈 종이에 이리저리 그려본 형태와 국제칼라의 범벅이 시작인가. 패션은 유행한다. 하이패션도 시간이 지나면 작은 가게의 옷이다. 옷. 이쁘지 않으면 살 사람이 거의 없다. 개인이 가진 미가 충족되면 팔린다. 브랜드와 소재가 작동하지만 개인의 민감한 시선이 우선이다. 유행의 옷은 보편성과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 유행도 만드는 것이라고 마케팅 비용을 산정하지만 잘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팔릴 요소를 넣고 흥행을 시물레이션하지만 그리 적중하지 않는다. 무엇이 유행하게 하느냐. 개인의 미감에 보편성이라는 집단 심리인 듯하다.


파시스트 시대의 옷은 제복이다. 그들에게 멋진 옷이었다. 그들이 디자인하고 그들이 입고 그리고 그들이 사진을 남겼다. 국가로부터 강제되고 국가로부터 선전되어진 옷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적었던 그들이 입었던 옷이다. 이런 이념에 관여했던 그들에게 ‘영광’의 상징물이고 공감 대상이었다. 어떤 그들에게 그런 이념의 옷을 걸치는 것이 후손에게 자랑할 만한 ‘감정’이었다. 감정은 강렬했다. 오래 전 목 부분에 후크를 채우는 옷이 있었다. 복장검사를 해서 후크가 채워지지 않으면 교문 옆에서 ‘벌서기를 시키는 행위’가 만연했다. 이런 행위가 다수 사람에게 공감 받았다. 깊은 공감이었다. 무엇이 인간 내부에서 공감을 불러 오도록 ‘독주사’를 놓은 것이다. 독주사. 대중심리니 집단무의식이니 한다. 패션 유행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그 곳으로 의식 이동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내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교복 자율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배려하거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닌 통제를 내세운다. 그런 그들이 강력한 것은 현실을 보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급 옷이 타인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어른에게도 통용된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에게도 통용된다. 득과 실을 따지는 사회분위기에 편성하면 옷은 실용적이어야 한다. 옷에 숨겨진 아이들의 감정. 격해지거나 무엇도 모르는 그 대상들이 ‘예비 범죄인’이다. ‘예비 범죄인’이 입을 옷이라는 것도 옷가게에서 파는 그렇고 그런 범주다.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패션은 참 몰상식했다. 나치스 독일의 옷이나 일본의 전체주의 옷도 비슷비슷했다. 근대화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옷에는 이런 면이 스며들어 있었다. 유행하는 옷도 대동소이다. 틀 안에 옷이 있다. 그럼에도 옷은 묘하게도 감정의 얽힘과 통제와 동일성의 집단감정과 그리고 자기를 표현하는 뒤얽힘이다.


그와 내가 다르다. 내가 그의 옷이 부럽다. ‘옷으로 표상하게 하는 그것’에 흔들린 까닭이다. 우리 안의 무엇이 표상한다. 부러움의 통제도 역시 우리 안의 표상이다. 통제는 폭발을 염두에 둔다. 철없는 그들이 친구에게 옷 자랑이다. 아름답다. 반면 나이 들어 너 나가 분리되지 못하고 자랑이다. 자랑의 아이들이 아름다운 것은 생명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랑과 폭발. 옷의 유행이 아이들에게 사치스러운 것만이 아니다. 사치와 감정적인 거부. 왜 그런지 사회는 묻고 있지 않다.


‘무엇’이 저 어느 곳에서 발현되어 표상으로서 시이다. 시인은 표상하는 인간이자 도구이다. 그는 저 아래에서 세계와 통해서 흔들린다. 본질의 탄생이다. 격문 같은 격렬함과 세련된 시에 내재하는 초라함과 유치함과 생경함이다. 정밀한 기계 같고 거친 맷돌 같은 그게 사람을 울린다. 아래에 무엇이 존재한다. 그 존재를 길어 올리는 두레박으로서 언어이다. 언어가 위력을 가진다. 말이 상대를 화나게 한다. 말이 나를 울컥한다. 새소리에 의미 부여한다. 시는 다양한 지점에서 소리를 길어 올린다. 문자로 언어로 형상화 될 때 평면일 수 없는 까닭이다. 옷 한 벌이 내 앞에 던져지고 걸쳐 보는 즐거움이다. 옷이 다층적이다. 언어가 다층적이다. ‘막말’이 파급력을 가지는 까닭이다.


옷이 유행을 지난다. 시가 시들해진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감정에 ‘조금’ 익숙해진 탓이다. 오래된 그 때 옷이 친근하다. 옷이 낡아도 추상이고 시도 추상이다. 심층은 인지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낡아 보이고 시들해 지는 친근감이다. 귀틀집. 한복. 기름먹인 책. 소반. 여기에 내재된 것은 털어 낼 수 없다. 현재화 된 모든 것은 유행을 탄다. 오래된 언어. 현재화된 옷. 시들해지고 부활한다. 심층에는 생명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손수건과 시집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고미술품.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른다. 즐겁고 자랑의 대상이면 그저 그렇다. 가치가 올라 묵직한 돈이 된다고 해도 그저 그렇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움이 평화와 더불어 발생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고미술품이게 한 심층. 이곳은 역사로서 돌이키기 싫은 제노사이드, 대량학살이 가능한 잔인의 샘이기도 하다. 폭동과 제노사이드가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공감의 언덕에 살해와 살기로 표현되는 잔혹성이 잠복해 있다. ‘콘라드 로렌츠’는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심각한 걱정을 했다. 나치즘에 발을 디뎠다. 대지에서 거친 노동으로 자급하여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를 꿈꾸었던 ‘크누트 함순’. 나치스에 온 몸을 바쳤다. 심층은 인간을 눈멀게 하고 시대가 바뀔 때 ‘묵시록적인 종말관’을 드러낸다. 유행과 짝하는 잔혹성이 양 날개이다. 강렬해서 눈이 먼다. 유행의 동력은 나를 ’잘생긴 누구‘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동일시는 잔혹성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 옷을 만들어 입는 시대는 지났다. 평화로운 흉내는 행위에 대한 경고이다. 인간은 생각한다. 생각하면 이런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물러서는 것이 운명이다. 시집을 읽고 눈물을 뚝딱거리면서 깊은 회의에 빠지는 것은 그래도 일어설 수 있다. 시인으로 살 수 있다. 유행의 옷을 사 들이는 것은 파산의 위험성이 있다. 선을 넘어서면 곤궁해진다. 그러나 마음 깊은 자리에서 사는 것은 즐겁다. 마음으로 동일체를 느낀다. 하여 광신도가 되어 거리를 헤매거나 산과 들을 헤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종말이 사라진 것이다. 생각 없이 즐겁게 넋을 놓는 댓가다. 그들이 모인 자리가 지저분하다. 둘레를 살피는 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더러운 것을 모르고 그저 귀찮아진다.


게임에서 생각한다. 내가 있고 상대가 있다. 바둑판에서 내가 이렇게 둘 때 상대가 반격해 올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된다는 것은 ‘일방적’이다. 생각은 상대가 있다. 무한정 생각 할 수 없다. 경험과 지식이 공간과 시간을 확정한다. 게임을 특정하고 룰이 뭔지를 특정하고 또 상대와 나를 특정한다. 거저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뾰족한 감정이다. 뾰족한 감정. 유행이 나를 지배하면 그건 ‘참’ 힘든다. 설득이고 무엇이고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물건이 탐나면 자칫 도둑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리는 비는 계속 내린다. 종교는 심층의 마음이다. 달리 무엇을 말하겠는가. 종교인이 되기 힘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제도인 종교가 감정을 부추긴다. 표상이고 투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영혼에 깃든 그것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는다. 능력도 없다. 황금물결에 떠내려가고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의 손과 옷을 물들인 황금빛만이 황홀하다.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작은 웃음은 개인 경험이지만 창자를 흔드는 웃음은 심층 곧 영혼에서 나온다. 아름다움과 슬픔과 격정과 그리고 살기와 살의의 제노사이드가 여기에 있다. 영혼은 분출된다. 새가 즐거이 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울음도 숨도 억압하면 거대하게 분출한다. 역사에서 보는 제노사이드이다. 영혼에 새겨진 이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공유한 흔적으로 새겨져 있다. 문화를 넘어서 공감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먼 곳의 슬픔이다. 아기를 등에 업고 힘겹게 걷는 모습이나 지친 어깨를 내리고 휴식을 취하는 그들이 슬프다.


다양한 이야기. 고개를 들고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본다. 또 앞을 보고 뒤를 본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본다. 봄 밤 하늘을 본다. 검은 별과 반짝이는 작은 별과 빛나는 큰 별이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안고 무엇을 이고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가. 자기에게 묻는다. 자기에게 묻는 말은 진실해야 한다. 진실하게 자기에게 묻는다. 그리고 빛으로 이리 저리 비추어 본다. 견디기 힘든 모습이지만 견딘 만큼 남는다. 황혼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따스한 봄날이 추워졌다. 의례히 있는 일이다. 매번 유난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떨리는 몸. 추위가 마음에 가라앉은 탓이다. 먼 곳의 기침소리다. 기침은 바람을 타고 온다. 기침을 한다. 겨울 그 마른기침이 아닌 칼칼한 기침이다. 목젖이 젖고 숨에 물기가 스며드는 그 때까지 기침은 멈추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쿨럭 거린다. 기침을 달고 산다. 우울한 날은 우울하게 또 센 바람이 불면 그렇게 기침을 한다. 참 기침을 많이도 했다. 봄날 촉촉한 비에 기침을 한다. 추운 핑계를 대고 억지인 듯 기침을 한다. 여름 폭풍이 불거나 비가 밤새 내린 날이 아니면 기침을 한다. 시인들은 걸핏하면 기침을 했다. 봄날 기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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