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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마음여행
2018년 04월 25일 (수) 06:39:41 이경달 cc8620@hanmail.net

인페르노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 흰 꽃이 지천이다. 아직도 필 흰 꽃이 남았다. 분홍의 산 벚꽃과 보다 짙은 복숭. 산만한 귀룽나무 흰 꽃이 비에 젖고 있다. 줄지은 조팝나무. 바닥에서 일어나는 흰 민들레. 봄날 흰 꽃이 피고 그리고 분홍의 꽃이 핀다. 황매화. 수국. 꽃은 형광물질이다. 빛나고 있다. 산 둘레에 식재한 나무와 자연적으로 발화한 나무가 있다. 필요에 의해서 심어졌거나 바람에 날리거나 새들의 배설물로 자란 나무의 꽃이다. 꽃이 핀다.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그리고 꽃이 진다.

 

   

 이런 봄 산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개인의 경험적 자아만이 전부가 아니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서 봄 산이다. 도회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봄 산은 낯선 의미이다. 인조의 구조물이나 인공의 정원에서 느끼지 못하는 황량함을 봄 산에서 느끼는 듯하다. 황량한 곳에서 아이들은 놀거나 뛰지 않는다. 산골에서 도회지로 떠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무엇도 없는 이곳에 보이는 산 그림자. 저 봄 산은 내게로 무슨 의미로 오는 것인가.

이런 곳에서 ‘미치는 방법’이 있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 의미를 이리저리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다. 언덕에 팬션을 지어 놓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밤낮으로 그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봄 산에 꽃이 피니 사람이 들러야 하는 데 오지 않는 그들이다. 오기로 한 그 친구는 비가 온다고 오지 않는다고 한다. 야속하다. 하나의 생각에 고정되고 여기에 저절로 달라붙는 의미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광인과 닮아간다. 그들은 타인을 탓한다. 마음속의 악마로 타인을 상정한다. 그러면 좀 더 닮아 진다. 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고 하나에 모든 논리를 가져다 쓰면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흰 꽃 돌배나무는 비구름이 고개를 넘어가는 곳에서 가파른 경사를 지고 있는 곳에서 손바닥 모양의 땅 덩어리 한 모퉁이에서 비오는 4월에 핀다. 이름으로서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곳에 서 있는 큰 키 나무에 흰 꽃이 핀 것이다.

꽃 피우는 나무.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자란 줄기와 가지와 꽃이다. 그 나무가 ‘나의 상징성’을 획득하면 세계 중심에 핀 나무의 꽃이 된다. 나무는 나와 무관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나무와 나와의 거리가 붕괴되는 그 상징체계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 나무는 세상 중심에 있다. 상징성. 본디 의미가 양파처럼 겹겹이 벗겨지면서 또 다른 세상의 층위와 관계를 맺고 ‘의미를 생성’한다. 그러니 생성된 의미도 층위를 가지고 있다. 언어도 마음도 층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고 단 하나의 의미만을 부여하는 행위. 단 하나의 의미에 충혈된 눈과 고함소리의 그들 가족을 본다. ‘가문의 저주’다. 언어는 평면에 펼쳐놓은 문자의 조합이 아니다. 언어는 의미의 계단을 형성한다. 현실 세계와 바닥에 깔려 있는 신화의 세계와 섬뜩한 이미지의 세계가 중첩되어 있다. 어떤 소설이 이런 세계를 번뜩이면서 기술한다. 이런 곳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리얼리즘 문학이 리얼리티만을 표현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 신화의 세계만을 기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꿈을 기술한다고 전부 생경하지만은 않다. 많은 언어가 시대와 장소를 건너오면서 의미 변화와 탈락과 부여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니 말은 둘레와 둘레를 싸고 있는 시간과 장소를 떠나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북극의 얼음 바다를 보게 된다. 말의 장소이동이고 시간이동이고 배경이동이다. 마음의 촛불이 꺼지면 무의미이다. 고미술에 스며있는 ‘이야기’가 가격결정의 요인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꽃 피는 나무. 황폐했던 곳. 비닐과 쓰레기가 냇가와 계곡을 채우던 곳에서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 것이다. 나무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고추대나 화목으로 사용되지 않고 자란 나무다. 꽃이다. 꽃은 갑자기 낯선 곳의 풍광이 된다. 어스름에 빛나는 꽃이다. 수백만 송이 꽃들이 솟아 오른다. 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자라고 꽃을 피운 것이지만 나무의 꽃은 이렇게 이야기와 생경한 풍광을 가지고 있다. 비는 내리고 꽃은 핀다.

인페르노. 지옥이다. 이런 의미체계를 스스로 강제해서 상실하거나 어떤 이유로 상실하는 것이다. 지옥이 된다. 수십 년을 알아 온 가족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릴 때 간단하게 뱉는 말이 아닌 ‘내용’을 전달하기 불가능한 낯선 세계에 산다. 현실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그것을 그저 인페리노라고 한다. 눈앞의 이익에 밝은 그들에게서 종종 발견한다. 말의 이해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인페리노로부터 일어서는 소리는 듣기 거북하다. 공격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한 그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이상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비판적 사고가 결여될 때이다. 비판적 사고. 사이비종교나 피라미드판매 전체주의적인 선동의 그들을 대적하는 방패이다. 비판적 사고는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선물’이다. 그들은 이를 싫어한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그곳으로 밀려들어가고 낯설고 번쩍거리는 풍광에 빠지면 예리한 사고는 불가능하다. 고전 한두 권을 들고 ‘성인’이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각기 다르고 다른 환경이고 그리고 달리 산다. 매뉴얼 한권이 성인되는 지름길이라니. 웃기에 뭔가 섬뜩하다. 서비스 매뉴얼은 그저 쉬운 서비스를 위한 매뉴얼이다. 시스템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말에 스스로 몰락하는 자들이다.

복잡한 세상이 복잡해진다. 아이가 엄마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엄마가 아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넘겨짚는다. 다들 돈이다. 그래서 공통어는 돈이 된다. ‘돈이 모자란다 돈이 없다’라는 말은 공용어이다. 욕망은 죽음 너머까지 펼쳐져 있다. 죽음 너머 펼쳐진 소리의 잔치이다. 공통의 놀이감으로 스마트폰이나 아이폰이니 ‘그만 쓰라 눈 나빠진다’가 또 욕망의 언어다. 이들에게 때가 되면 말은 ‘전혀 낯선’도구이다. 말이 현실을 건너뛰고 낯선 도구도 역시 현실을 건너뛴다. 모두가 서로에게 낯설어진다. 자기 ‘말’에 단일한 의미를 찾는다. 예약된 인페리노이다. ‘언어가 만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심리학자를 기억한다. 현실의 토대에서 생명이 꽃피고 영혼이 머문다는 ‘외치던 말’이 사라진다. 언어의 의미상실이 이루어지고 있다. 복잡한 세상의 가족이다.

비가 오면 묻는다. 새들은 어디로 갔느냐. 꽃이 핀 나무 위로 비가 내린다. 새들은 어디로 갔느냐. 작은 덤불아래는 비에 젖지 않는다. 새들은 거기에 있느냐. 날개를 가진 아이들.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날개를 갖고 싶어 하는 자들은 비오는 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꽃이 핀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언어가 사라지고 소리만 남아있고 희미한 빛만 일상인 공간. 그들은 그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 빛마저 더욱 희미해지면 배경과 일치가 되어 버린 것인가. 새들은 비가 오면 어디로 가는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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