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도 못하는 나, 왜일까? "트라우마와 뇌"
꼼짝도 못하는 나, 왜일까? "트라우마와 뇌"
  • 조옥경
  • 승인 2018.11.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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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경 교수의 몸과 마음 돌아보기

최근 어느 기업의 회장이 사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준 가히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잔학 행동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람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직원을 폭행하는가 하면, 아내의 내연남으로 착각한 교수를 집단 폭행하기도 하고, 직원들의 잘못을 벌주기 위해 공기총을 쏘기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 직원의 손등에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는 대중들은 분노는 물론 간접적인 대리 트라우마를 겪는다. 매체를 통해 간접 경험한 사람들조차 그 충격을 털어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피해 당사자는 어떻겠는가? 폭행당한 직원은 사회가 무서워 시골로 도망쳐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며, 집단 폭행을 당한 교수는 일 년여 동안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대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압도적인 스트레스의 결과로 트라우마가 생긴다. 기업 회장이 상대방에게 가한 폭력은 신체적 트라우마에 해당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인 상해를 정신적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수반되는 정서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는다. 끔찍했던 경험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당사자를 과거에 묶어둔다. 괴로운 경험을 잊어버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피해자들은 과거 시점에서 얼어붙어 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일은 상처가 되살아나 트라우마 증상으로 시달릴 때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느끼는 극도의 수치심이다.

“왜 그때 나는 그렇게 바보처럼 행동했을까?” “왜 가해자에게 대들지 못했을까?” “상대방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다니 나는 맞아도 싸다.”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다니 얼마나 비굴한가?” 등등 내면의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을 울린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그 원인이 누구에 있든 상관없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며 종종 고립되어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당시 피해자는 왜 꼼짝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과 뇌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최근에 밝혀진 신경과학 연구는 그런 부적응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진화적으로 볼 때 인간의 뇌는 세 개 층으로 구분된다. 척수가 두개골과 만나는 뇌간에 위치한 파충류의 뇌는 먹고, 잠자고, 울고, 숨 쉬고, 밤낮의 리듬에 따라 깨어나고, 더위와 추위, 습도, 배고픔, 대소변의 조절 등 생존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가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생긴 포유류의 뇌는 주로 변연계에 위치하며, 이는 위험을 감지하고, 즐거운 일과 두려운 일을 구분하며, 생존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며 희노애락 등 정서를 담당한다.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신피질은 기억, 집중, 사고, 언어, 각성 및 의식의 중요기능에 관여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대뇌피질 덕분이다.

맞서 싸울 수도 없고 상황으로부터 도저히 도망칠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면 뇌간에 있는 등 쪽 미주신경 복합체가 활성화되어 우리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얼어붙는다. 심장박동이 거의 멈추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소화계는 기능을 멈출 뿐 아니라 겁이 나서 똥오줌마저 지리는 것이다. 즉 파충류의 뇌가 우리를 장악해서 완전히 무너진 채 그 상황에서 부동 상태로 동결된다.

트라우마에 처한 사람은 신경계에서 이런 스위치가 저절로 작동되어 마치 죽은 척함으로써 위험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신경계에서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는 이런 무의식적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은 피해자의 비굴할 정도로 소극적인 행동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상태는 피해 당사자마저도 당혹스럽게 만들어 스스로에게 굴욕감을 느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책감과 수치심에 휩싸이게 만든다.

피해 직원의 지극히 수동적인 태도는 소위 “얼어붙기 반응”에 빠진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한마디도 못 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 주변 동료 직원들의 모습도 대리 트라우마에 빠진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들의 이런 피학적 태도는 가해자로 하여금 상대방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를 알 수 없게 한다. 가해자는 이런 식으로 겁박해야만 상대방이 내 말을 듣는다고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충격적인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이런 뉴스들이 쌓이면 우리에게 적지 않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런 개개인이 모인 사회를 트라우마 사회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폭력과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트라우마의 뇌 기전을 올바로 이해하여 트라우마로부터 비교적 해방된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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