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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을 배울까
마음여행
2018년 11월 15일 (목) 08:01:23 이경달 cc8620@hanmail.net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

 

영하로 떨어졌다. 창으로 부리를 조아대는 소리가 아침을 불러왔다. 새벽빛을 새가 가져 왔다. 곤줄박이다. 박새보다 크고 분명한 소리다. 덩치가 부리의 세기를 정한 듯하다. 잎은 한꺼번에 지지 않는다. 신나무가 지고 단풍나무가 지고 한참이 지나면 밤나무가 진다. 갈잎이 어스러진다. 발아래 잎이다. 그 나뭇가지를 두고 새들은 뛰어 다닌다. 창문너머의 일이다. 창문너머에는 그들의 소리도 있고 그들이 길을 찾거나 배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지식. 과거로부터 미래의 연결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배울까. 길은 찾을 수 있을까. 비슷한 아파트와 비슷한 길과 커리큐럼. 비슷한 욕망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선호하고 그리고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 산에 자란 저 나무가 연장과 솜씨만으로 집이 되고 가구가 되지 않는다. 그저 말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듣기나 할까. 회상하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같은 잔소리의 말미에 너 잘되라는 말은 그저 부사일 뿐이다.

참 많은 말들이 사실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고 또 많은 말들이 떠돌아 다녔다. 그 때 그들은 어찌 되었을까. 왕관을 쓰고 말을 한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행위에 구토를 느끼지 않고 그리 지낸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배트맨이라고 외치면서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행위다. 그가 왕으로서 즉위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가짜 왕들은 화려한 말과 더불어 ‘자기의 이미지’로서 산다. 현실과 멀어진 망상이다. 이 망상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망상의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심할 경우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지 못한다. 해 뜨는 쪽은 새들도 알지만 오른쪽과 왼쪽은 다르다. 망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먼 곳의 이미지다. 이미지에 함몰되면 되돌아 올 수 없다. 분열은 그런 사례이다.

밥을 먹듯이 책을 보라는 말을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그들이 천국을 말한다. 홀을 들고 말을 뱉는 그들이 책을 읽을까. 책이 보이는 집과 책이 보이지 않는 집이 있다. 서구의 집에는 대개 풍광과 더불어 서고가 보인다. 영혼이 사라지거나 영혼과 멀어진 그들이 힘들어 하면서도 ‘책’은 읽을 수 없다. 대패와 망치질은 연습을 거치면 익숙해진다. 그러나 책읽기는 그러하지 못하다. ‘좋은 책’이 많지 않다는 한탄 못지않게 책을 읽지 않는다. 망토를 쓰고 홀을 흔드는 그들이 많은 입문서를 읽지 않는다. 입문서가 많다는 것은 다양한 층위와 측면을 나타낸다. 예로부터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을 우리는 들었다. 스스로 초래하는 고독이고 비참함이다.

아이들은 무엇을 통해 배울까. ‘태도’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각으로 상대를 본다. 자주 만나는 사이고 보는 횟수가 증가하면 관찰했던 데이터양이 증가한다. 그래서 ‘태도’를 읽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태도를 본다. 그리고 여기저기의 태도를 본다. 혹하는 것은 순간의 감탄사와 부사다. 여기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태도를 본다. 어떤 단체의 태도를 보고 어떤 집단의 태도를 본다. 태도는 적층이고 역사다. 전락하는 태도를 보고 상승하는 태도를 본다. 그리고 원근을 둔다. 이건 의식이 살아 있는 경우다. 그렇지 못하면 망상으로 밀려 내려가 망상의 그들과 집단을 이루고 집단으로서 ‘아이 같은 감정’이다. 성장은 의식에 발판을 두는 것이다.

재능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 있다. 박물관에서 본 그 흉상이 아름답다고, 비엔나에서 필이 꼽힌 이유로, 스페인의 그 건물이 웅장하다고 내가 ‘훈련’을 통해 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에 단 한사람이다. 창조력은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창조력은 추위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 ‘세상에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돌에서 신의 표정이 드러나게 하고 소리에서 그의 음성이 들리게 한다. 이런 재능의 아이들이 있다. 학원이나 특수교육이 이들을 꽃피우게 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게 한다. 생각해도 생각의 자산이 미천해서 그냥 끝나거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말에 휘둘려 역시 그냥 끝난다. 심층의 사고가 그냥 그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의 욕망의 대용물이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희미하다. 정당하다고 느끼는 그들에게 아이는 뭘까. 진흙 빈종이 통나무 비어 있는 항아리. 아이는 어른의 성장하는 태도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충고를 우리는 듣는다. 부모의 인격이 아이들에게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이정표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등산은 산의 어떤 점을 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산에 나무가 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다르다. 침엽수도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이름의 나무라도 나이와 장소에 따라 다른 나무이다. 다양한 나무를 단지 나무라는 그들은 나무를 분리할 능력이 없거나 충동성이 마음에 불을 지핀 탓이다. 목수가 나무를 분류한다. 서까래와 대들보가 다르고 기둥과 마루가 다르다. 스터드식으로 짓는 집은 나무의 구분이 없다. 크고 좋은 나무들이다. 한옥에서 기둥으로 쓰고도 남을 나무들이 사용된다. 나무는 각기 위치를 잡고 집을 구성한다. 오랜만에 좋은 나무를 구했다. 마루를 깔았다. 졸마루가 아닌 넓은 폭의 나무다. 대개의 나무는 10년을 두고 자연 건조하여 사용했지만 이건 강제로 건조한 것이다. 어떤 분은 이 나무를 좋아한다. 어떤 분은 자연 건조의 그 나무를 좋아한다. 취향이다. 아이들은 취향의 대상이 아니다. 같은 부모 아래 다른 아들과 딸이고 각기 다른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나 부모의 소득으로 분류될 그런 대상이 아니다. 절간이 바쁘다. 부처님 전에 수능을 앞둔 부모가 절을 한다. 도회지의 교회는 어떠한가. 욕망의 대상으로 ‘아이’를 한 곳으로 곧, 현실의 격리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절하고 기도할 때 먼저 생각할 나의 대상이 ‘욕망하는 나’이다.

물을 청소하다. 그런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이다. 물의 오염은 물에 이물질이 들어 간 것이다. 그녀와 둘이서 저 냇가를 청소했다. 탱크를 청소하고 정수기를 청소한다. 적당한 이물질은 맛있는 물이 된다. 저절로 그런 물이 나오는 샘이 있기도 하다. 혹한에도 얼지 않는 샘을 두고 온천인가라고 생각했다. 물은 맛있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이 물을 사용했다. 물은 순환하는 것이고 순환하는 과정에 이물질이 스며드는 것이고 그리고 정화되는 것이다. 세상이 아이들에게 그러기를 바라는 데, 막연하다. 암담하다. 보이는 것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 곳을 추구하는 그 곳까지 심하게 물들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음과 몸이 순환하고 보이는 마음과 보이지 않는 마음이 순환하는 것인데 잔재주와 말 뒤집기가 무슨 자랑처럼 끼워들고 있다.

일을 할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오래 전에 익혀둔 논리학으로서의 하이아라키(hierarchy), 다층적 다면적 구조이다. 통나무가 집이 되는 데에는 현실적 기술이나 솜씨 뒷면에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있다. 이 생각이 그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역사와 경험과 환경이 그의 의식에 스며든다. 그러니 집이 되는 과정은 보이는 계획만이 아니다. 모자라는 아이디어에 괴로운 것이 이런 이유이다. 아이디어는 번개처럼 나타난다. 그걸 붙잡아서 현실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투영(projection)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오랜 연습을 거치고 자기를 무지 의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게임이론을 익힌 그들이 궁극적으로 ‘그들이 뭘 하는지’를 모르고, 아름다운 말의 그들이 스스로의 말에 주저앉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이런 투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제거해서 사물을 보아도 그곳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럼에도 무엇을 하는 데에는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다층적이고 다양한 측면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다름’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개인이 다르다. 나와 다른 본질을 가진 타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그럼에도 동일성을 보장하는 현실이다. 신의 이름이 구만구천가지라는 것은 다양한 측면과 다양한 층위를 지칭한다. 동일한 결론이 다른 방법으로 찾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영. 투사. 심리학은 이것이 없으면 성립할 수가 없다. 뇌과학이나 뇌신경학도 행동주의도 이를 향한 검증이다. 동일한 상품을 비싸게 사는 이유와 상대적인 이유로 돈을 낭비하고 기분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결단에는 이런 바탕이 있다.

새와 관한 책을 읽어서 내가 저 ‘새’와 의미를 나눌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하고 어쩌면 불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은 새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이언스로서 접근하지 않는 그의 집 뜰에 새가 모인다. 새의 마음이 관찰로서 기술되어 있는 그것만이 아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새는 인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분해되고 용해되어 본성이 되고, 현실을 만나 층간논리를 거쳐 새로운 본질의 탄생이다. 그러니 낯선 것에도 동일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새와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창문의 저 새는 책속의 새는 아닌 듯하다. 말로서 통할 때도 있고 통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새는 언어에 잠복해 있는 감정을 읽을 것이다. 기표로서 언어가 아닌 심층의 기의로서 의미를 파악할 것이다.

가을이 지나는 빛과 소리를 본다. 바람과 물소리 그 속에 빛은 흔들린다. 기울어진 나무사이로 바람은 지나고 빛은 색을 떨군다. 떨구어진 빛에는 확정지을 수 없는 빛의 혼합이고 분리다. 분리의 그 빛은 집중하면 보인다. 빛이 흐르고 빛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건 바람이 없는 날에도 볼 수 있다. 바람이 있는 날은 잦다. 그리고 선명하다. 둘레에 성인이 되고 싶은 자들이 많다. 성인이 되고 예언자가 되고 구세주가 된 이들이 모인 곳에서 그들이 다 가짜고 본인만이 진짜라고 한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섹슈얼리티의 본질이다. 투사 투영을 지우는 첫 번째가 추상 반성 회한이라고 칭해지는 자기반성(refraction)이다. 자기반성 없이는 무엇도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직시한 것이다. 그러니 전쟁은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누가 오기로 하였다. 날이 저물어도 연락이 없다. 일손을 물리고 기다렸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기다렸다. 바람은 불고 잎은 떨어진다. 갈잎이 몰려다닌다. 살얼음은 얼어 가는데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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