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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과거의 충돌
마음여행
2019년 01월 31일 (목) 20:26:55 이경달 cc8620@hanmail.net

미래와 과거의 충돌



삭신이 노골거린다. 지친 분들의 일상어였다. 언어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맑다. 그늘진 곳에 내린 눈은 그 빛이다. 지나간 그 때의 눈을 오래전 감정은 보고 있다. 뒤뜰에 갈잎이 바람에 소리를 낸다. 쓸까 생각하지만 내버려 둔다. 오르고 내리는 길에 보이고 밟히는 갈잎이다. 무디어진 탓인가. 할 일이 거저 이런 것을 치우는 것도 있지만 새로이 계획된 것도 있다. 이건 깊이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현실이 뭘까. 아이덴티의 변형이다. 비슷한 질문으로 사실은 무엇이고 지식은 무엇인지. 이런 물음이 던져지는 것은 사회가 논쟁 중이라는 증빙이다. 시험의 지식은 ‘한정된’ 교과서의 지식이다. 교과서는 ‘대개’ 실증된 내용을 범주를 정해 기술한다. 따라서 개인의 감각이나 감정이 가미된 지식은 일그러진다. 많이 일그러지면 탈락이다. 지식은 실증되거나 사실들의 합리적 추론에 의해 여겨지는 무엇이다. 부활은 어떤가. 지식이 아니다. 실증되어진 사례가 없고 추론이 될 만한 사실도 없다. 그건 그들 종교 내에서 무엇이다. 물로 가는 자동차. 아니 물도 필요 없는 자동차는 어떠냐. 아니 엔진 없이 다니는 자동차는 어떠냐고 한다. 열역학 법칙에 어긋나고 실증된 경우도 없다. 그러니 이건 그저 종이 위에 던져진 임의의 언어다.

이런 지식을 두고 과거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가 충돌할 때가 있다. 본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경전이 쓰일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낡았다. 그 때 경전가치를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지난하고 살벌한 긴 시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진보적이라는 미술의 경우도 비슷한 행보를 거쳤다. 고흐의 그림은 그래도 일찍 인정받은 편이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어떤가. 누벨버그풍의 영화는. 미래를 여는 행위에는 실패가 따른다. 실패 없는 투자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현대소설은 어떤가. 이건 오래된 윤리보다 더 오래된 감정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아들과 아버지가 대립하지 않으면 아들의 미래는 무엇으로 채워질까. 어머니가 딸에게 바라는 인격은 무엇을 모델로 한 것인가. 과거의 지식이 미래의 가능성을 막아서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언어가 적층을 이루면서 의미를 달리한다. 그러니 같은 단어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오래된 것은 변화하든지 아니면 사라진다. 의미의 소멸과 변화다. 반면, 과거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가 충돌할 ‘거리’도 되지 못하면서 과거의 가치를 ‘거저’ 말로서 내세우는 분들이 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한 행위로만 여기는 그것을 ‘마녀’라고 한다. 마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나만을 위해 조작 날조한다. 마녀사냥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마녀사냥의 목적은 단 하나 ‘무조건 마녀’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마녀다.

제국의 추억에 젖은 나라들이 있다. 전쟁과 평화의 전쟁 주역인 나폴레옹 시대를 그리워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잊지 못하고, 중화사상의 모델인 한과 송나라를 당연시 여긴다. 그들이 변방을 보는 시각은 어떠하겠는가. 태평양 전쟁을 그리워하는 그들과 나치스의 도래를 꿈꾸는 그들이다. 그들 주변에서 무너지고 쓰러졌던 사람은 무엇이 되었는가. 그들은 과거로의 회귀가 단 하나의 할 일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제국의 전쟁범죄자들에게 부역한 그 행위가 그리운 것인지.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제임스 하우만과 사진 찍는 ‘출세’가 그리운 것인가. 로마를 자기역사로 여기는 나라는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자기의 선조가 이스라엘이라고 여기는 국가가 한 둘이 아니듯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의 모색은 미래 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면, 여러 마찰음이 생긴다. 이와 달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유아적인 행위에서 충돌이 생긴다. 사실이 무너지고 가치를 향한 합의가 사라진 것이다. 유아적인 발상이 마찰의 원인이다. 시간 공간이 뒤엉켜져 있다. 이건 인간이 뭔가라는 ‘괴로운’ 생각거리를 준다. 어떤 이마주에 근거해서 이러면 될 것이라든가, 어떤 단면을 잘라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방법이나 내용이 유아적이다. 혹 정책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검증되는지를 안다면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내용이 섬뜩함 그 자체임을 알 것이다.

유아 행위의 절정은 말꼬리잡기 말장난 악의적인 왜곡등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미래의 가치와 과거의 충돌이라면, 유아적인 그들은 식민지와 독재시절의 답습이다. 이 답습이 경제적인 이익을 물어 준다면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행위를 하는가. 단절된 인간이고 그 단절된 인간의 출구가 유아적인 충동성이다. 유아는 백만 년도 더된 오래된 인간이다. 외로워지면 자칫 이런 인간이 된다.

유아적인 행위를 제쳐두고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미래와 과거의 충돌이나 마찰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떼쓰고 어거지 피우는 그들을 본 ‘나’는 무엇인지. 철들지 않는 그들 둘레에 말을 거드는 행위를 본다. 이런 것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모색한다.

이런 유아적인 행동을 멈추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부에서 멈추게 한다. 그런 경우 ‘멈추지 못한 그들’은 어찌 되는가. 유아적 행위의 주된 속성이 충동성이다. 충동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이 지혜를 이끄는 등불이고 그 등불은 밤을 밝힌다고 한다. 생각이 근간이다.

들짐승은 병이 없을까. 집 둘레에서 보이던 그 고양이는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어느 날 조금 자란 덩치로 나타났다. 역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얼마 후 나무 창고 따스한 곳에서 죽어 있었다. 어른이 되지 못한 고양이가 죽었다. 익숙한 곳이라서 찾아 온 것인지. 그런 들짐승은 경계심이 대단하다. 그들을 보면 모든 짐승은 ‘고향’이 있는 듯하다. 보이던 놈이 보이지 않고 또 보이고는 죽은 것이다. 죽음을 고향에서 맞은 듯하다.
산골은 바람이 고향인 듯하다. 좁은 계곡을 두고 바람이 분다. 가파른 산을 기대고 부는 바람은 소리를 낸다. 창이 부딪히고 칼이 부딪히는 소리다. 소리에서 오래된 전쟁을 본다. 그 소리를 등 뒤로 하고 사람들은 잠을 청한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허술한 저 아랫집에서는 그 소리가 일상이었다. 챙챙거렸다. 흙길에서 아스팔트로 바뀌어도 소리는 변함없이 챙챙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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