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고양이
까치와 고양이
  • 이경달 칼럼
  • 승인 2019.04.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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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여행

고양이 밥그릇에 고양이 사료와 멸치를 둔다. 밥그릇은 흰빛이 주된 자기다. 고양이가 때를 맞추지 못하면 까치가 날라 와서 사료만 먹고 간다. 그릇에 멸치만 소복이 남아 있다. 또는 그 반대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 새들은 티없이 깨끗하다. 그들을 보면 굶고 지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새들은 때가 되면 몰려와서 그릇을 비운다. 재미삼아 그릇 가득히 주면 더 많은 새들이다. 망을 보는 놈들 먹는 놈들 이리저리 날라 다니는 놈들로 구성되고 그리고는 작은 소리에도 가지를 건너 저 멀리 사라진다. 굶주림과 조심성 그리고 집단의 움직임이다. 그런 봄날에 눈이 내렸다.

내 나이가 있으니 나이 많다는 그들은 참 나이가 많다. 나이 많은 분들의 지금은 먹을 것이 풍족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들이 좋고 커졌다는 말을 덧붙인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온 분들도 적지 않다. 집이 좋고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말이 세대를 건너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세대를 건너가면 의미는 어떤 굴절과 회절을 할까. 시베리아 샤먼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는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까. 범위를 한정할 수 없는 보다 윤택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인가.

보다 윤택한 것은 권력이 ‘내’게 집중되는 것이고, ‘나’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이며 지적으로 나름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인가. 그래서 호사한 생활이 가능한 내가 소유할 ‘부’인가. 아이의 키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나이든 그들의 키는 성장하지 않는다. 국가의 부와 개인의 성장이 그러하다. 이런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아마도 스스로를 저 멀리 두고 생각하는 습관이 없는 까닭이다. ‘생각’해도 내가 나에게 함몰되는 것은 쉽게 저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내안에 무엇이 있는가. 그 오래된 옛집의 대문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대문 위로 걸린 갓이 달린 백열등과 바쁘지 않는 도로에서 가끔 들리던 자동차 소리. 나지막한 라디오 소리와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문을 열던 빛과 소리들. 그리고 열리던 문을 통해 보이던 그들이었다. 먹을 것과 좋은 집이라는 그 감상만으로도 안도했다. 반면 시대를 달리한 것인지. 시간 등이 켜지고 현관과 복도가 철 대문으로 격리되는 곳은 안락과 안도가 더 이상 대상이 아닌듯하다. 그 문을 연 이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복도 저쪽 문을 열고 나오는 그들은 늦은 밤의 빛처럼 지쳐있다. 무엇이 어디로 욕망하는가. 이들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가지고 욕망하기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가.

인간내부의 무엇이 흔들린다. 그러면 안도하는 자와 속이고 속는 그 세계에 발을 디디는 자가 있다. 차이는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이런 물음은 애초에 필요치 않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도 필요치 않다. 단지 진화의 흔적이 인간 문화에서 완전히 버려져야할 찌꺼기고 쓰레기라면 역시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내부에 무엇이 흔들리고 무엇이 스스로 작동하고 있는가.

무엇이 까치가 되게 하고 무엇이 인간을 공포에 질리거나, 작은 집 소찬을 만족하게 한 것인가. 같은 집에서, 같은 크기의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오는 그들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의 내부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같은 무엇이라도 이리 모습을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집으로 달려가거나 인간 내부로 달려가거나 역으로 그곳을 뛰쳐나온 자들의 지금이 다른 것이다. 진한 욕망의 빛깔. 그저 우기는 그들은 보이는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에게 정부 수립기에 행해졌던 제노사이드는 무엇이었던가. 잔인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건 개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저 새들은 먹이로서 벌레와 그리고 열매가 있다. 겨울. 떼 지은 새들이나 고양이가 음식 찌꺼기를 버려두면 몰려든다. 보는 나는 애처롭다. 풀로 덮어 두어도 흔적을 찾아 구멍을 내고 몰려 있다. 비틀어진 자연계의 단면이다. 야생의 그들이 인간의 음식 쓰레기를 먹는 것이다.

마음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어찌 국가폭력에 희생된 그들을 보고 희화화하고 빈정거리고 조롱거리로 삼을 수 있는가. 혹, 보이는 화려한 것들은 내부에서 쏟아지는 샘물을 막아버리고, 인간을 그저 자동으로 동작하는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닌지. 내가 권력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오작동을 일으켜 그런 잔인성에 발을 디디게 하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 제노사이드는 예약된 것이다. 잔혹한 식민지를 경험하고 잔인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에게 그들의 악의적인 취향과 보다 광범위한 욕망의 결합은, 또 제노사이드를 예감해야 하는지. 두려운 일이다.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고 사회적통제가 필요한 절대적 이유다. 곧, 일을 마친 그들이 현관 초인종을 누르면 밝고 화사한 빛과 웃음이 공통의 안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친 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유다. 휴식은 몸과 더불어 마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음이 얼었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거세다. 오늘은 반나절만 일을 한다. 종일 일을 하면 체력이 소진되어 봄날 몸살을 앓기 때문이다.

 

 

 

-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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