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열등감
거만한 열등감
  • 이경달 칼럼
  • 승인 2019.06.0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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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열등감

관절이 아프다. 문을 넘나드는 개구리 소리에 위로를 받고 밤하늘의 깜깜한 빛에 위로를 받는다. 아침 창을 쪼아대는 새. 부리가 상할까 신경이 쓰인다. 환풍구 가까운 곳에 새들이 집을 짓기 위해 쌓아둔 가지며 이끼 그런 것들을 치웠다. 두 마리의 작은 새는 부리로서 창을 쪼아댄다. 몇 번이나 문을 열고 물리친다. 그래도 관절이 아프다. 위로를 넘어 아픈 엘보이다.

봄이면 꽃 피고 여름이면 덥다는 상식을 잊어버린 듯하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가 세계의 다양한 사정에 영향을 받는다. 해가 뜨거운 날 격한 육체노동은 탈수다. 보다 더 상식적인 것은 비밀의 엄수다. 개인적인 비밀도 감당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이 있다. 어린 그 때 어른들의 말이나 집안의 대소사를 전하면 굉장한 꾸중을 들었다. 체벌이 가해졌다. 나이가 들어 시대가 그러려니 했지만 실은 여기에는 인간의 깊이에 관한, 인간의 예우에 관한 것들이 내재되었음을 느낀다.

어떤 내용을 접할 때 사실관계를 ‘나’는 따진다.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시계열이다. 일주일 전 그 사건의 원인이 오늘의 사건일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내부에 스스로 잠겨 있다. 그들의 뇌에는 시간이 없다. 시간 없는 언어는 쪼가리가 된다. 역사에 연대기가 빠진다. 시계열이 없고 연대기가 없는 그들이 상대에게 생체기를 낸다. 험담이다. ‘세상사람’은 자기 기능 범위에 산다. 가십으로 생체기이다. 일 잘하는 목수에게 그가 얼굴이 검고 옷이 남루하다고 이런 말 저런 말로 생채기다. 사실의 발견이 인간의 출발이고 가십에 젖지 않는 것이 몰락하지 않는 길이다. 지역감정이나 색깔논쟁. 막말과 비하하는 표현들은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이 불쾌다. 그런 기사를 보면 출처를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말과 글을 올리는지를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가십에 젖은 그들. 이런 행위는 무작위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자기’가 형성된다. 의도적이든 무작위든 같은 ‘거짓말’하는 인간이다. 의도만큼 더 질 나쁜 거짓말이다. 그런 그들은 일상을 파괴한다. 자신의 뿌리가 되는 영혼과의 단절이다. 사람을 앞에 두고 속이고 이웃 험담에 일생을 보낸다. 종교는 거짓말을 엄단한다. 종교는 영혼을 문제 삼는다. 거짓말은 영혼의 상실이다. 그런데 의도된 거짓말 위력을 기대한다. 흔하게 들었다. 예수 믿는다는 놈이 거짓말은 입에 달고 다니네. 이런 말이 터지면 다음이 있다. 교회에서 거짓말 가르치더냐. 신앙은 영혼의 이야기다. 영혼은 공감이다. 공감이 사라진 그것을 우리는 ‘폭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그들이 걸핏하면 남을 악으로 치부한다.

엘보가 아픈 것이 일한 결과만이 아니다. 과격한 육체노동은 격일로 하고 근육이 심하게 아픈 날은 간단한 일을 한다. 쉬지 않아도 팔이 들리지 않을 정도면 육체노동을 못할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들린 듯 일어서서 걷지 못할 만큼 일을 한다. 어리석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날을 정해 이날은 격한 것 이날은 쉬는 것 이날은 쉬운 것, 이렇게 나눈다. 비가 오면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양식비평과 닮은 부분으로 비교문학이 있다. 양식비평은 문학에서 가져왔지만 나름 진화해서 정밀해지고 단단한 논리구조를 형성한다. 그래서 비교문학이 양식비평의 일부차용처럼 보인다. 비교문학. 발생이 어떤 전승을 거쳐 그곳에서 창작되었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을 설명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비슷한 방법으로 어떤 ‘말’의 출처와 다시 변모되어 사용되는 사례를 보면 사실관계를 보완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유신과 5공 시대에 사용된 말은 사용자가 있고 대상이 있다. 말의 성격규정이 가능하다. 그러니 말은 시대와 상황과 대상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때의 말이 지금 사용된다. 웃음으로 치부하기엔 ‘좀’ 그렇다. 이런 말이 ‘정당’한 듯 ‘작문’하는 것은 지금 그들은 ‘말의 대상’을 폄하하는 것이다. 그 대상을 어찌 파악하고 있는가. 어쩌면 대상을 ‘입에 담지 못한 무엇’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나는 그 말의 그들과 확대재생산하는 그들에게 불쾌했다. 거만한 그들의 속임수였다. 속임수는 열등한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장이 멈춘 그들. 시대는 발전하는 데 성장이 멈추었다. 학교는 기본으로 성장을 염두에 둔다. 종교는 ‘악의적인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수험에 바쁘고 종교단체는 개인 사업체를 닮았다. 마음은 풍성하기를 바라는 데. 아마 이 곳에는 그런 것이 희미한 듯하다. 성장이 멈춘 그들. 보면 닮으니 만나지 않고 듣지 않는다. 말의 그들은 보고 그런 짓하지 말 것을 배운다고 하지만 함께 물든다. 어느 집단에 들어간 그들이 닮은 이유와 같다. 공짜는 없다. 보물찾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듣는 것에 귀한 것이 드문 까닭이다. 학교 교육과 종교 교육이 힘든 이유이다. 진정성으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헛소리하면 밥 해주지 않는다. 빨래도 그리고 이불도 펴 주지 않는다. 잔소리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남편에게 흔하게 하는 말이었다. 일상 왜곡의 그들. 나는 그들과 무관하다. 그러니 그들의 밥과 그들의 빨래를 내가 하지 않는다. 말이어 붙이기 같은 ‘후천적 바보 배틀’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사회는 진보한다. 인간은 유기체적인 역사의 산물이고 미래를 향하는 진보의 이정표에 서 있다. 마음은 적층이고 역사도 적층이다. 단절을 요구하는 그들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묻는다. 그런 물음을 내게도 묻고 사회에게도 묻는다. 물음이 없는 것이 단절이다.

비밀의 누설은 깊이를 가지지 않으니 보관할 곳도 없다. 열등하니 뭔가를 한다. 뿌리가 없으니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리고 시든다. 권력이나 금력은 미래의 가치가 아니다. 오래된 것이고 무엇을 위한 수단이다. 할 일이 없으니 이것저것 건드린다. 옮기는 그들도 참 할 일이 없다. 그런 생각이다.

 

 

 

-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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