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트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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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달 칼럼
  • 승인 2019.10.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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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트럼펫

밤은 외롭게 추웠다. 산돼지. 그 녀석들을 향한 대포소리다. 봄과 가을에 소리만 있는 대포를 그들이 쏜다. 깜짝깜짝한다. 고양이는 몸을 부르르 뜬다. 들은 곡식이 다발이 되어 남았다. 곡식은 대지의 딸이다. 벼는 베어졌고 고추는 끝물이다. 호박도 땄다. 저 큰 호박은 밑 퉁이 깨어져 있었다. 곧 죽음의 계절이다. 긴 잠 끝에 죽음 끝에 누가 그를 일으켜 또 봄이 될 것이다. 산에는 노루길이 있고 산돼지 길이 있고 오소리 길이 있는 듯하다. 인적 끊어진 곳에 깨끗한 그 길이다. 산은 어두워지고 들은 저문다. 노파들의 굽은 등은 유심하지 않아도 보인다.

문해능. 읽지 않는 책을 아는 체한다. 듣지 않고 행하는 아는 체와 닮았다. 글의 해독능력은 ‘일생’을 좌우한다. 문맥에 맞는 ‘이해’는 인간의 성장과 관계가 있다. 이는 비밀을 지키는 능력과 닮았다. 비밀을 머리에 넣거나 지식을 머리에 담아 두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그릇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용’을 머리에 넣는 자체가 고역이다. 기억된 내용의 근간은 약속의 진실성이다. 말의 기억 말의 이해 말의 의미와 판단이다. 그러니 약속은 지키는 것이다. LIBOR사태의 원인이었던 영국 버클레이스 은행의 거짓말을 기억하고 있는가. 말의 진실성이 사라진 새로운 현실의 도래였다. 은행 수장이 캐나다인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감시감독을 받고 있다. 본디 말이 본드(BOND)였지만 말의 신뢰가 사라진 비참해진 현실이다. 인터넷에서 찾으면 거짓말의 전말을 알 수 있다.

책은, 어떤 책은 괴롭다. 책의 내용이 의식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말. 깊이를 가진 말도 마찬가지이다. 대화가 어렵고 괴롭다. ‘의식의 확장’이 어려운 때문이다. 인간의 성장은 의식의 확장이다. 그러나 침범당하니 싫어하고 회피한다. 이런 것이 아닌 어떤 것은 무의식적 접근이다.

이건 위험하다. 인간의 추락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의식의 확장. 자아로 낯선 것의 침범. 삶이 고통스런 이유이다. 그래서 성장에는 ‘집중과 자기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니 괴로움의 간단한 회피수단으로 ‘거짓말’이다. 금융은 몰라도 금융공학이라는 용어가 떠돌고 빛으로 향하던 종교가 어둠으로 향한다. 종교는 빛이다. 실제는 어떠한가. 의식의 확장은 괴롭고 또 의식으로 밀려드는 어둠은 인간 전부를 흔든다. 이 현상에 사람은 놀란다. 놀란 나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사고의 전환’이 아닌 자기 정당화다. 덤으로 놀란 그들에게 위안으로서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대상을 어떻게 변모시킬까.

시를 한편 외운다. 시조를 한편 외운다. 단어를 찾고 연역을 조사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들어간 그 내용을 되새김질하면 대단히 낯선 발견을 한다. 공방에서 자기가 만들려는 물건의 형상을 그리고 치수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그리고 이것저것을 머리에 넣어둔다. 그리고 공방에서 물건을 만들면 모자라는 부품이나 연장이라도 대개 대응이 가능하다. 뇌가 가진 관계성이 전체를 만들어 낸다. 일을 하다가 발견되는 불합리나 모자라는 실력에 대한 충고는 전체를 나아가는데 징검다리로서 ‘좋은 역할’이다. 단편적인 것은 전체의 단편임이 전제이다. 어떤 강조는 전체의 부분임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단편과 부분이 전체가 된다. 전체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본디의 목적이나 계획은 뜬 구름이 된다. 말이 떠도는 유령이 된다.

저 산 앞에 작은 마을이다. 말꼬리 잡기. 이러면 된다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만 똑똑하다. 남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웃집이 샘이 나서 견디지 못한다. 더구나 이해를 넘어 상대의 말을 담아 두지 못한다. 비밀이 없다. 그건 ‘열린사회’라는 말과 우습게 결합된다. 말을 듣지 않는다. 불쑥 튀어나온다. 모두가 용감하다. 충동성이 가진 위험성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하다. 미디어가 속보라고 띄우는 그것이 뭘까. 봄날 그녀와 둘이서 냇가를 치워 두었다. 꼼꼼히 치워 둔 냇가가 넘치지 않는다. 누가 무심이 나무를 잘라서 냇가에 던져두면 내가 건져내고 치운다. 냇가를 막고 있는 ‘그것들’을 치운다. 봄부터 시간을 들여 냇가를 정비해 둔다. 여름을 맞이하고 태풍을 견딘다. 그러니 냇가를 늘 눈 여겨 본다. 마음에 머릿속에 자리 잡은 내용이다. 넝쿨이 냇가를 막고 있어서 치우는 데 시간과 힘이 들었다. 아마 머릿속에 담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거짓말’은 자라지 않는다. 빛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면 어둠속에서는 당최 알 수가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혹 그들을 만나거든 ‘너 나의 구분’이 되고 ‘말을 담아 두는지’ 유심한 관찰을 해 보면 ‘섬직한 무엇’을 발견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름아래 놓여진 ‘그림자와 어둠’이다.

이것은 사람을 현혹하는 기술의 바탕이다. 죽어서 영혼이 어디로 간다는 그들이 영혼이 있을는지. 영혼도 권력과 돈이 필요한 것인지. 물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분개한다. 분개는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저 불안하다. 불안한 그들에게 거짓말은 더욱 깊은 어둠으로 몰고 간다. 어둠에서 분간은 없다. 그런 그들이다. 그는 그의 내부의 세계에 산다. 내부로 사는 그들에게 ‘중력을 가진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이 없으니 현실이 없다. 이건 혼자 조용히 보낼 때가 왔다는 징조이다. 인간의 경계는 무엇인가. ‘사실’은 인간의 문턱을 넘는 임계점이라고 한다. 임계점을 넘지 못한 그곳은 친숙하고 장엄하고 화려하다. 새들이 날개와 부리에 빛을 날리는 화려한 풍광이다. 그곳은 죽음도 없다.

자연에는 거짓말이 없다. 수많은 사실들과 사실들이다. 저기 나무가 있고 저기 새가 날고 저기 물이 흐른다. 오소리가 새를 물고 지나간다. 새는 나무줄기를 타면서 벌레를 잡는다. 볕이 드는 곳에 뱀이 죽은 듯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봄날 태어난 그들은 첫겨울을 맞을 것이다. 남은 잔광에 체온을 덥히고 있다. 잎은 물들고 잎은 떨어진다.

새는 저녁을 난다. 까마귀는 날면서 소리를 낸다. 여름 날 비상하던 솔개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쪽 하늘을 자주 보지 않는 탓인가. 밤송이는 길에 굴러다닌다. 계절을 바꾸는 바람이다. 그 밤이 탐나는 산돼지가 길을 휘 집는다. 돼지는 코를 땅을 박고 유유하다. 추운 날이 예약되었다. 물은 얼고 산은 그 영혼을 안고 낯설게 웅크릴 것이다. 어느 날 내린 눈을 봄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계곡을 지나는 소리는 실버 트럼펫의 높은 소리일 것이다. 나보다 더 외로웠던 그를 불러 함께 그 트럼펫 소리를 듣고 싶은 밤이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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