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당 시론] 코로나 팬데믹 위기 이후(2) - 페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심당 시론] 코로나 팬데믹 위기 이후(2) - 페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 이승봉 칼럼
  • 승인 2020.06.0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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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특징짓는 개념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세계화, 신자유주의, 4차산업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셋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최근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죠.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기후위기 극복, 지속 가능 목표라는 의제가 만들어졌습니다.

20세기 중후반부터 급속하게 이루어진 세계화는 정보, 상품, 자본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 정치적, 지리적인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값싸고 편리해진 교통 환경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점차 줄이고 있습니다. 20세기를 마무리하면서 냉전체제는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승리하면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를 포함하여 세계는 이제 완전히 자본에 예속되어 버렸습니다. 종자기업 등에 장악된 농업 무역은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을 기아와 질병으로 몰아갔습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환경 파괴와 자연에 대한 착취 구조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이종간 전염병을 탄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최근 신종 감염병들이 생겨나고 전파된 것의 주된 원인은 이런 것들로 인한 것입니다. 사스(2002-2003),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2-현재), 에볼라(2014-2106), 지카(2015-2016),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2019-현재) 등은 어쩌면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에 대한 보복인지도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질병의 세계적 확산은 그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도 그러할 것입니다.

중세시대를 마무리하고 르네쌍스 시대를 연 것도 유럽 인구의 1/3의 목숨을 빼앗아 갔던 페스트의 창궐에서 기인합니다. 1347년 이탈리아 도시국가 제노바는 몽골군의 공격을 받습니다. 당시 몽골군은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를 성안으로 투척하여 제노바 성안에 전염병을 유포시킵니다. 제노바의 지도층들은 페스트를 피해 고국 이탈리아로 도망가고 그 결과 전염병은 전 유럽으로 전파되죠. 1350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유럽에서는 1~2억명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페스트로 인한 유럽 인구의 감소, 특히 임금노동자의 급감은 봉건제 말기 노동력 감소와 임금폭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임금노동자인 소작농을 적기에 고용하지 못한 영세 영주들은 줄줄이 파산하게 되고 급기야는 영주와 농민 간 무력충돌로 비화 됩니다. 이 싸움에서의 승리로 농노와 농민들은 자유민 지위를 획득하고 땅에 대한 소유권까지 얻게 됩니다.

페스트의 확산으로 시작된 변화는 결국 봉건제를 해체 시킵니다. 이제 세계의 질서는 자본주의로 이행하게 되죠. 이러한 상황은 교회의 개혁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페스트의 창궐은 당시 신도들을 위한 의료기관의 역할을 하던 교회와 수도원으로 병자들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당시 천주교는 7개의 성사 중 영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환자를 치료해 주는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자성사가 페스트로부터 신도들을 지켜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와 수도원들은 페스트로 초토화되었고, 신도들 뿐 아니라 성직자들도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교회는 부족해진 성직자를 채우기 위해 자격 미달 성직자를 양산하게 됩니다. 이들로 인해 교회는 미신과 이단에 흔들리고, 축재 등 부정부패가 판을 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추진된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축은 교회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 시키죠. 교회는 건축을 위해 면죄부 판매를 시작합니다. 교회는 페스트를 그 빌미로 이용합니다.

당시 교회는 "페스트는 죄에 대한 심판이다. 면죄를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인들은 천국행 티켓이 되어버린 면죄부를 사야만 했습니다. 면죄부를 판 돈의 일부는 성직자들의 배로, 일부는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축에 들어갔지만 역부족입니다. 돈이 더 필요했던 교회는 죽은 사람을 위한 면죄부까지도 팔아야 했습니다. 베드로 성당 재건축은 1506년에 시작하여 1626년까지 장장 120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페스트의 맹위는 교황직의 분열,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윤리적 방종, 평신도 사이에 퍼져있는 거짓 신비주의 등과 더불어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붕괴시킵니다. 페스트 상황에서 인간은 신(神)의 무력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신학과 철학은 이제 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인문주의 씨앗을 잉태하게 됩니다.

21세기 초반, 우리 인류가 맞이하게 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세계적 유행은 어떠한 변화를 몰고 올까요?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국경은 폐쇄되고 상품과 식량, 의약품의 유통도 막혔습니다. 중국과 미국, 이탈리아와 스페인, 유럽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를 폐쇄하고 경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직장과 가게가 문을 닫자 졸지에 벌이가 없어진 이들의 불만이 쌓여갑니다. 집 밖 외출도 금지되고, 마트의 생필품도은 금방 동이 나 버립니다. 직장 폐쇄로 강제 해고 당한 사람들, 생필품을 구하지 못한 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러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와 위기는 1929년 벌어진 세계적 공황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내 놓은 정책 중 하나가 재난 지원금입니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홍콩 등은 전국민에게 주는 '보편적 지원' 방식을 택했습니다. 미국은 초고소득자를 제외한 대부분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캐나다는 '선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보편 지원 방식은 대상을 선별하기 위한 행정비용, 지원대상 해당 여부에 따른 사회적 갈등 이 생기지 않아 신속한 지급이 가능한 방식입니다. 다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때문에 재정 부담이 큰 것이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싱가포르는 만 21세 이상 국민에게 소득별로 600~1,200 싱가포르 달러(약 52만~104만원)를 지급하고, 홍콩은 만 18세 이상 전체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에게 1인당 1만 홍콩달러(약 155만원)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연소득 7만5천달러 이하 개인에게 1인당 1,200달러(약 146만원)를 지급하고, 소득기준 초과 시 초과소득 100달러당 지급액을 5달러씩 차감하되 연소득 9만9천달러 이상부터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프리랜서와 자영업자 및 10인 이하 사업자에게 3개월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년도 매출 100만 유로 이하인 프리랜서·자영업자 및 10인 이하 사업자 중 코로나19로 영업을 중지하거나 매출액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한 경우 1천 500유로(약 198만원)을 지급합니다. 캐나다는 전년도에 연소득이 5천 캐나다달러 이상인 근로자·자영업자 중 코로나19로 근로를 중단·축소해 4주간 소득이 1천 달러 이하가 되는 15세 이상 캐나다 거주자에게 매주 500 캐나다달러(약 44만원)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재난지원금을 한시적인 지역 화폐 형태로 지급하여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상인, 자영업자, 실업자들의 숨통을 터주고 있습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 조치는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실제로 기업에 퍼주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재난지원금이 1회에 한정되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의 긍정적 효과에 힘입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피할 수 없는 길일 것 같습니다. 자본의 침탈로 귀결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번 코로나19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여 신냉전체제를 구축하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지배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세계 시민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각 국가는 국경 폐쇄 조치로 외부의 유입을 차단하여 자국의 안전만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달 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념과 경제, 힘의 논리를 넘어 국제적인 공조와 협력의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각국에 협력과 공조로 이 감염병 사태를 극복하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제4차 산업혁명은 보다 빨리 우리에게 다가설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비대면 사회로 가는 길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offline) 세계 보다는 온라인(online) 세계와 더 친숙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제4차 산업 혁명은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빅 데이터에 입각해서 통합시키고 경제 및 산업 등 모든 분야에 다양한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O2O방식을 통해 물리적인 세계와 디지털적인 세계의 통합이 가속화되죠. 4차산업혁명은 정보통신 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를 예고합니다.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제품과 서비스가 지능화되면서 경제‧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핵심은 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D 프린팅, 나노 기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 혁신과 적용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인간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우려는 1차 산업혁명 때의 러다이트운동 때와는 양상이나 규모가 매우 다를 것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이 결합하면 그동안 인간이 수행하던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초 지능형 로봇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인간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죠.

일반 사무원이나 단순 노동 등 반복적이고 예상 가능한 업무 종사자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사무 종사자들도 직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각광받고 있는 법률가, 세무 회계사, 의사들도 위험군에 속하게 되죠. 하지만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들, 문화, 예술 분야 등 창의력을 필요로 하거나 간호사, 테라피스트 등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업무는 살아남겠죠? 향후 10년 이내 우리나라에서도 제조업 80만 개, 서비스업 120만 개의 일자리 사라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직업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된 계층을 어떻게 대할까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대안으로 로봇세와 기본소득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의 미래가 그리 유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류의 철학적 인문학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선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도 변해야 합니다. 경쟁이 아닌 상생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성공보다는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페러다임이 변하지 않는다면 신종 바이러스는 출현 주기를 단축하며 계속 인류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이승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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