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새들아.
잘 가라 새들아.
  • 이경달 칼럼
  • 승인 2020.07.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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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새들아.

내리는 비에도 녹색은 변하지 않는다. 비 내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외로운 새들이다. 비를 맞고 함께하는 바람을 이고 한 마리가 건너가고 또 한 마리가 건너간다. 잘 가라 새들아. 그냥 그렇게 창으로 말을 건넸다. 날리는 빗방울과 흐르는 빗물이다. 비는 내리고 날개를 꺾지 않는 새들은 이산에서 저산으로 시들지 않는 녹색위로 힘겹게 날아간다. 잘 가라 새들아. 이 말은 아이들에게 배웠다. 놀던 아이들이 하늘의 새를 보고 손을 흔들면서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때 아이들을 떠올리며 비오는 날 나도 낮은 목소리로 불러 본다.

집을 짓는다. 그러면 기초가 논의된다. 동결선은 추운 지방과 아주 추운 지방이 다르다. 무른 땅과 뻘과 바위에서의 기초가 다르다. 크기와 넓이에 따른 기초가 다르다. 다들 기초를 적당히 한다. 곧 경험으로 자재를 적당히 얹혀 놓으면 괜찮다는 통념이다. 이 통념에는 시대의 귀찮음과 상식을 공유하고 인력과 돈이 관계를 한다. 적당히 타협하는 건물의 기초이다. 건물만 좋으면 된다라는 말에 등한시하는 기초가 ‘새로운 상식’이다. 컴퓨터의 기판을 보면 정상작동을 위한 다양한 설계가 보인다. 방열판과 팬이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서 견딜 수 있는 능력으로 디레이팅은 60~70%이다. 건물에 수명이 있듯이 현대 건축의 근간인 시멘트에도 수명이 있다.

건물을 존재케 하는 위치는 지구 어느 곳이 된다. 지구 어느 곳에 인공적인 기초를 하고 그리고 인공적인 건물을 세운다. 그렇듯 인간에게 기초는 무엇이 되는가. 건물을 이루는 기초를 둘러 싼 풍광과 바람과 비오는 날의 새들과 함께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곧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나는 무엇으로 만든 구조물 위에서 어떤 자세로 있는가. 나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 자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런 물음은 흔했다.

인간에게 집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라는 인간은 보는 자마다 달리한다. 다른 그들이 다른 시각으로 나를 본다. 그 시각에는 내가 나를 보는 시각도 있다. 밤에 나의 행동을 보는 시각과 해가 뜬 후 나의 생각을 보는 시각도 있다. 시각이 뭔지. 문득 드러난 그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게 나라는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인간의 토대는 무엇인가. 육체인가 막연한 생명인가. 자본인가. 거짓말인가. 진정성인가. 직업이 가지는 위력인가. 귀신인가.

뒷산에 새들이 가득하다. 이르게 아침을 나서면 높은 음의 합창을 듣는다. 새가 노래를 한다. 자작나무 우듬지에서 다급한 소리를 낸다. 그건 아침이 아니고 어스름이 닥칠 때이다. 가까운 곳에서 동물들이 숲에서 낮은 포복을 할 때이기도 하다. 아마 그들의 터전이 이곳이니 작은 새들도 이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통속적인 의미에서 고향이다. 마음이 고향이라는 분들도 있다. 그들은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생활한다. 새들의 주검은 드물게 본다. 그 많은 새들은 어디로 갔는가. 새는 난다. 그런 새들이라는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스며든 것인가. 새들아 잘 가라. 놀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손을 흔드는 낮은 소리의 송가였다. 새들아 잘 가라. 그런 새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산에서 저산인가. 평생을 마을에서 보낸 이들의 북망산은 그저 저 너머의 산은 아닐 터인데. 그는 그곳에 묻히고 산자들은 때가 되면 그곳으로 간다. 새들의 삶은 무엇이고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두고 무엇을 지고 가는가.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흙 놀이를 한다.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고 구전 가요를 부른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그런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새에게 그런 노래를 했다. 새가 들었을까. 기의로서 내용은 무엇인가. 새들은 들어서 알까. 안다는 것은 날아가는 새들에게 무엇이 되는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든다. 아마도 인간의 심연에서 그 기억의 내용은 무엇이 될 것이다. 보내는 자는 그 소리를 어디서 길어 온 것인가. 소리(acting out)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비는 내렸고 작은 냇가는 범람했다. 범람한 냇가에는 비닐이 뭉탱이로 걸려있었다. 이곳도 그런 난리를 두 번이나 치렀다. 비는 내리고 물은 흐른다.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고 흘러 바다로 간다. 비가 내린 하늘이 아닌 바다가 강물의 근원인 것을 아는 듯하다. 모든 것은 근원에서 왔다가 근원으로 간다. 바다가 물의 근원이고 바다는 물의 토대가 된다. 새는 무엇이고 인간은 그 토대가 무엇인가. 바다의 물고기는 바다의 폭풍은 바다의 물거품은 새를 이루는 한 요소이다. 바다에서 하늘로 용솟음한 비가 어찌 다시 바다로 간다. 물의 일생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새들도 그들이 자란 곳이 아닌 어느 곳이 아마도 근원이고 토대일 것이다. 그러면 내게 새는 무엇이고 노래하는 새는 무엇인가.

퉁퉁 부은 팔이었다. 입천정은 헐었다. 무리한 일의 결과다.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둔 것이 곪았다. 비오는 어느 날 아물었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둔 테이블을 설치했다. 만든 물건에 대해 묻는 분이 계셨다. 항상 모자라는 자재다. 익숙할 때까지는 수공구다. 그리고는 공구를 바꾸고 생각을 덧입혀 만든다. 생각하는 버릇이 없으면 자재에 대해 의아심이고 짜증이다. 생각이 귀찮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감정을 인간의 언어를 인간의 생각을 인간의 육체를 이루는 토대는 무엇인가. 어디서 흘러 온 것인가. 생물학적 인간은 바다에서 왔다. 그러면 인간 생각의 토대가 바다인가. 바다에 내리던 햇살과 바닷물의 짠 냄새는 무엇이 되는가. 인간의 생각은 바다가 파도로 나타나면 고요해지는가.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바다의 폭풍이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은 물고기의 군영인가. 아니면 바다도 인간의 토대가 아닌 그저 바다인가. 바다는 지구 어느 곳에 위치한 그저 바다인가. 단단한 땅이 내가 짓는 집의 토대인가. 생각은 즐겁지만은 않다. 생각하는 이유는 부족하고 납득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게 내리는 물방울에 계단은 젖었고 마당을 활보하던 고양이도 모습을 감추었다. 처마 아래 옹기종기다. 작은 비에 아랑곳하지 않는 새가 하늘을 지그재그로 난다. 자작나무의 끝은 비었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빗속에서 날개짓이다. 새들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잘 가라. 나도 그 소년처럼 말을 띄운다. 잘 가라 새들아. 비오는 날 새들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새들아 잘 가라. 너의 소리만으로도 나는 늘 즐거운데.

 

 

-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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