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산화 50주기 기념 동판 제작한다
전태일 열사 산화 50주기 기념 동판 제작한다
  • 광명시민신문
  • 승인 2020.09.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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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연대회의

전태일 열사 산화 50주년을 맞이하여 ‘전태일50주기 시민참여위원’을 모집한다.

전국 200여 단체가 참여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전태일50주기행사위)는 50주기 행사를 준비하며 전태일을 기억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모든분들을 모시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민참여위원은 해시태그 달기, 전태일평전 읽기, 전태일 길(전태일재단-전태일다리-전태일기념관) 걷기, 전태일 정신 계승 1실천 운동, 인증샷 올리기, 기념동판제작 참여 등 50주기 활동과 관련된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현재 전태일 다리 일대에는 4,800여개의 동판이 조성되어 있다.

전태일50주기행사위에서는 시민참여위원 명단과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 이후 소중하게 기억되도록 할 것이라 밝히며, SNS 등 주변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주기를 당부하였다.

전태일 열사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하였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태일(全泰壹, 1948. 9. 28.- 1970. 11. 13)열사는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한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였다.

가정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 취직하였다. 1965년에는 청계천내 삼일회사 재봉사로 일하던중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되었다. 이후 한미사의 재단보조로 있다가 재단사가 되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어 1969년 7월부터 노동청을 방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1969년 6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동대문구청과 서울특별시 등에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않았다.

1970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였다.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었다.


전태일 50주기 시민참여위원 신청 방법

- 명칭 : 전태일 50주기 시민참여위원
- 참여 및 활동시기 : 9월 ~ 11월말
- 대상 : 전태일과 함께하고자 하는 누구나
- 참가비 : 1인 1만원 이상 (참가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시민들을 위한 사회연대기금, 시민참여위원 명단을 담은 광고비용, 전태일 50주기 백서 제작 지원 등에 사용됩니다.)
- 참가비 납부 계좌번호 : 우리은행 1005-401-717297 전태일재단
- 문의 : 02-2276-1114
- 주최 :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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