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산4동 마을의 역사, 한 페이지를 닫다...그리고 다시 시작하다.
철산4동 마을의 역사, 한 페이지를 닫다...그리고 다시 시작하다.
  • 신성은 기자
  • 승인 2020.10.23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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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4동 마을역사의 한 페이지가 마감되었다.

철산4동 467-372번지에 위치한 ‘넝쿨어린이도서관’은 17일 폐관식을 갖고, 18년 동안의 역사를 마감했다. 달동네·윗동네·산동네로 불렸던 철산4동 꼭대기. 넝쿨도서관은 이곳의 마을 이야기를 듬뿍 머금고 있는 마을 역사, 그 자체이다. 서로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포근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혔다.

‘넝쿨’은 18년 동안 철산4동 꼭대기 마을의 중심이 되어주었다. 도서관으로 책을 읽고, 빌려주는 단순한 기능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책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동네 주민들이 선생님과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책을 들고 동네 어르신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르신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어 주기도 하였다. 넝쿨은 어르신들이 가진 재능을 한껏 뽐내는 자리도 되었다. 어르신들은 삶의 지혜를 담아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날리고, 할머님들은 아이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넝쿨은 지식을 넘어 삶의 지혜를 함께 나누며, 어울려 사는 법을 몸으로 배우는 장이 되었다. 세대를 뛰어 넘어 따뜻한 마을 공동체의 장이 되어 주었다.

17년간 진행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는 광명사람들의 마음 나눔 장이 되었다. 철산4동은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이 많다. 이들의 위해 매년 11월 광명YMCA회원들은 십시일반 모금을 하고, 식재료를 기부하면서 김장 준비를 한다.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 날에는 마을이 떠들썩하다. 동네 주민이 함께 나와 절인 배추에 김치양념을 버무린다. 누구에게 김치를 나눌지는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의 몫이다.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김치를 전달한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며, 마음 나눔의 축제가 된다.

2015년부터는 동네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어디까지 가야돼』 철산4동 꼭대기를 오르다보면 절로 나오는 소리가 책 제목이 되었다. 철산4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넝쿨 도서관 어머니들이 글을 쓰고, 손수 그림을 그렸다. 뿐만 아니라 동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누군가 도서관 앞에 묶어 놓고 간 강아지 이야기를 담은 『아지』, 동네 텃밭의 채소로 만드는 요리법을 담은 『송이네 텃밭이야기』, 동네 사람 이야기를 담은 『은희씨』. 이외에도 소식지와 신문, 다양한 책으로 넝쿨 도서관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활발했던 동네는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빈집이 많아지고, 동네 아이들도 적어지면서 더 이상 도서관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넝쿨도서관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준 한울림교회가 재개발로 인해 하안동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17일 열린 폐관식에는 동네의 어린이, 마을에서 자란 청년, 자원봉사를 했던 어머니, 동네 주민들이 참석했다.

마을에서 자라고, 넝쿨 도서관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훌쩍 커 청년이 되었다. 넝쿨의 아이에서 청년이 된 박도성 씨는 “제가 정말 성격 좋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다 여기 도서관에서 갖춰지지 않았나 생각된다”면서 “도서관에서 많은 프로그램도 하고, 책도 접하고 해서 아닐까 생각한다. 미래 생각을 해도 도서관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네 아이들은 넝쿨 도서관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관계를 익히며 자랐다.

천안슈퍼마켓 이갑순 아주머니는 “가게를 들르는 주민들이 넝쿨이 동네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 최미자 관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자신의 손녀딸들도 넝쿨 도서관을 이용했다면서 “저 밑에 내려가면 도서관도 많고, 학원도 많지만 동네 가운데에 넝쿨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동네 분위기도 전해 주었다. “넝쿨이 없어진다니까, 없는 사람들이 너무 아쉬워하는 거야. 김장 같은 것도 손수 배달해 주셔서. 이렇게 훈훈하게 없는 사람들 생각해 준다는게 너무 고마웠는데...”

넝쿨 도서관에 자리를 내어준 한울림교회 이승봉 목사는 “우리 사회가 뭘 오랫동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사회”라면서 “좋은 추억의 공간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여러분들이 그 기억을 빨리 버리지 말고, 조금씩 어느 공간에 모아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이다. 또한, “자원활동가 분들의 땀과 정성이 넝쿨을 키워왔고, 넝쿨을 통해 성장한 분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었다”면서 “진정한 넝쿨은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넝쿨 도서관을 옆에서 끊임없이 지원한 광명YMCA 강옥희 총무는 “YMCA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방황할 때, 넝쿨은 중심을 보여주었던 곳 이었다”면서 “넝쿨에서 십대 친구들과 활동할 때에 다음 삶의 지표를 가득 안겨준 공간”이라고 애정을 표했다. 또한, “최미자 관장님이 펼쳐주셨던 것이 우리 심장과 같이 몸속에 남아 있게 해 주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미자 관장은 폐관식을 앞두고 밤을 설쳤다면서, 밤 새 수많은 생각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최미자 관장은 “십팔 년 동안 너무 고마웠다. 모든 일상과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이것을 어떻게 담아내고 앞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을 넝쿨은 분명 나에게 제시해 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삶과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넝쿨에서 이룩했던 배움이나 이런 것을 아마 죽을 때 까지 정신 차리고 살 수 있도록 담금질 하면서 나를 끌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새벽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하고 여기 1세대, 여기 2세대, 저기 3세대 그리고 넝쿨 엄마들,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며 넝쿨 도서관의 문을 닫는 마음을 표현했다.

문미란 양은 넝쿨 도서관이 친구같이 느껴지는 듯 했다. 문미란 양은 손 글씨로 넝쿨에게 편지를 써왔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잊지 못할 거야. 너랑 함께한 추억은. 고마웠어. 내게 다양한 추억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만 글을 마칠게. 이렇게 너의 마지막을 축하해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까지 잘 지내 넝쿨아!”

철산4동 꼭대기 마을의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마침표를 찍었지만, 다음 페이지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넝쿨과 함께 했던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새로운 마을의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다. 재개발이 끝나고,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을을 이루고,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


문미란 님이 넝쿨 도서관에 쓴 편지

넝쿨에게

나는 고민 후에 글을 쓰고 있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아직 많이 어색한 것 같아 돌이켜 보면 도서관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아서 이 글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해.

먼저 가장 기억에 남는 넝쿨 캠프. 처음 넝쿨 캠프를 했을 때 언니도 오빠들도 아닌 동네 이모들이 직접 했었지. 책도 읽어 주시고, 맛있는 저녁과 재밌는 영화까지 하나하나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걸 느꼈어.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무서운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드는게 가장 좋아졌지. 그리고 나선 큰 오빠들이 캠프를 했었던 거 같아. 이모들 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매 순간순간 즐거웠어. 그렇다고 이모들이 한 개 재미없진 않았어.

단지 오빠들과 더 놀 수 있다는게 재밌었던 거 같아. 그리고 이제 슬슬 내가 준비할 시기가 오고 있었어. 처음엔 프로그램 하나 정도 맡았던 거 같아. 나머지는 작은 오빠들이 준비했는데 그땐 그 회의에 참여 시켜 주지 않는 게 너무 서운하더라. 하지만 내가 모두 진행하면서 알게 된 거 같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재미있게 즐기라고 비밀로 했던 것 같아.

프로그램을 맡는 중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즐길 나이였으니까. 그러다 작은 오빠들도 다 바쁘면서 내가 진행할 때가 되니, 그건 오빠들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 지 알게 된 것 같아. 나도 같은 생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니까.

아이들이 이런 건 즐거워 해줄까? 혹시 너무 지루한 건 아닌가? 프로그램 하나를 준비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하던 것 같아.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고민조차 추억이되고 있더라. 그리고 이런 경험들로 인해 내 꿈도 찾은 거 같고. 지금은 모두가 이 동네를 떠나고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 자리에 있지만 어린이날 풍물패와 함께 동네를 돌고 돌아 어떤 거, 언니 오빠들과 영신빌라 앞에서 다양한 게임을 했던 거, 또 미술 선생님께 자주 혼났지만 다양한 작품을 만든 것들.

이런 추억은 이 동네가 바뀌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날이 와도 잊지 못 할 거 같아. 첫 친구이자, 놀이터이자, 도서관이었던 이곳이 이제 문을 닫게 되었지만, 많이 슬퍼하지 않을께.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마지막이라는 말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잊지 못할 거야. 너랑 함께한 추억은. 고마웠어. 내게 다양한 추억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만 글을 마칠게. 이렇게 너의 마지막을 축하해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까지 잘 지내 넝쿨아!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나의 친구 미란이가. 2020년 10월 1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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