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걸 다 못하는 세대
별 걸 다 못하는 세대
  • 권용화 칼럼
  • 승인 2021.12.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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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을 바라보는 한 서예·전각 작가는 약 2년 전에야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고등학교를 마치자 집에서는 더 이상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홀로 짐을 싸들고 서울에 와 20대 후반부터 서예·전각을 닥치는 대로 배워 내공을 쌓았다. 너무나 두꺼운 자전이며 한문 교본은 칼로 갈라 진도만큼 갖고 다니며 억척스럽게 서울 인사동을 누볐다. 학비는 모두 자기가 조달했으며 몇 년 후에는 작게 서실을 열어 운영하면서, 동시에 배움을 이어 나갔다.

최근 이 작가는 예술인복지재단이 시행하는 예술활동경력 증빙을 완료하지 못했다. 재개발 붐으로 쫓기듯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개인전 대관계약서를 분실했고, 예술인복지재단은 서류 미비로 예술활동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통지했다. 계약서를 분실한 것도, 요즘 같은 전자행정문서 시대에 사진 파일로 복사해 놓지 않은 것도, 1차적으로는 작가의 과실이었다. 다행히 해당 지역 문화재단의 발 빠른 선처와 주변의 도움으로 구제될 희망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의 근본적인 고민은 다른데 있었다.

 

아무도 배우려 들지 않는 전통, 특정 작가한테 몰리는 제자들
학위·공모전에 3~5년 투자하기보다 그 시간을 ‘진짜 작가’가 되는데 쓰길

“아무도 배우려 들지 않는다.”
한 작가가 공부해 온 자료의 흔적. 깎으려고 준비해 둔 전각용 돌이 보인다. 컴퓨터 커팅으로 법인 직인이 만들어지는 시대, 천연 재료에 일일이 손으로 판 직인을 주문하는 것은 같은 작가들뿐이다. 인맥이 아니라 작품 매진으로 승부하면 실력도 휴지 조각이 되는 부조리가 우리 사회에 있다.

“이 개인전은 선생님의 분기점입니다. 개인전이 졸속, 작품이 졸속이었던 것도 아니고 열과 성을 다 하셨어요. 전통미술로서 부지런히 문을 두드리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릴지도 모릅니다”는 조언에도 작가는 기운이 없다. 자신은 고졸이고, 남들이 사이버 수단 등으로 간판을 맞추고 대학원 석·박사를 이수해 스펙을 갖출 때 자신은 (도제식) 공부에만 매진하고 인맥 쌓기보다 작품에 매진하는 방법을 취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런 식으로 하면 인정받은 케이스가 없다는 것이다. 근 40년에 걸쳐 쌓은 수많은 자료와 공부의 산물도 서예·전각 기술도 “물려줄 사람이 없으니 포기 상태다. 게다가 지금은 모두 컴퓨터로 하는 시대인데, 나는 자식도 없고 컴퓨터 작업을 도와줄 지인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서예·전각 분야 수강생들을 통계 내 보면 은퇴한 장년·노년층이 대다수이다. 뒤를 이어줄 후진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통 분야를 진득하게 연마할 젊은이들이 아쉽다고 했다.

 

60대 노련한 작가들보다 영상 제작에 능한 이들을 택한 K재단
대면 강의 거절당하자 그제야 작가들 다시 찾아

다음은 얼마 전 경기도 내 K문화재단의 경우다. K문화재단 직원들은 코로나로 인해 대면 강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비대면 강의 겸 자료 조성 목적으로 중견 서예가들에게 필법, 채본(보통, 수강생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교육자는 본을 써준다)등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하자고 제안했다. 직원들은 비싼 예산을 들여 디지털 영상기기며 각종 장비를 갖췄다.

60대인 작가들은 처음에는 응해주었다. 그러나 수강생들이 노년층이었으므로 동영상 강의는 별 호응도 얻지 못했다. 이런 와중 한 젊은이들이 강사를 지망하며 필법과 채본 과정을 직접 동영상으로 제작해 왔다. 그러자 K문화재단 측은 60대 작가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택했다.

그러나, K재단 측이 대면 강의를 요구하자 그들은 거절하고 모두 그만 둬 버렸다. 저임금을 견디지 못했고, 1시간에 채본 20개는 써 내야하는 실력과 연륜도 못되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70대, 80대 어르신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도 이들의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K재단은 쫓아낸 60대 작가들에게 다시 요청을 해왔다.

“저희 해고된 것 아니었나요?”

되묻긴 했어도, 60대 작가들은 다시 응해 줄 생각이 없었다. K문화재단은 결국 강사들을 공개 채용하는 공고를 다시 냈다.

 

상업적 미소를 팔아야 하는 세상
미술인은 연예인이나 상인들과 차이가 있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다보니 지역문화재단 직원들의 근속 년수도 그다지 길지 않다. 민원을 넣었을 때도 “그 실수는 제가 없을 때 생겼다. 선임은 그만두고 없다”는 답이 허다하다는 여론이다. 담당자를 찾지 못해 순박한 작가들일 수록 애를 먹고, 문화재단 측은 발뺌을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서예·전각 작가가 전통미술에 속한 것도, 행인지 불행인지 가늠할 수 없어 안타깝다. 유청소년·청년들이, 공기관 담당자들이, 자칫 고루하고 결국 곧 사라질 분야로 전통을 인지한다면 오히려 불행으로 작용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작가에게 열릴 기회란 것도, 작가 자신이 용을 써서 컴퓨터로 작업을 해 여기저기 밀어 넣을 때 가능한 것이다. 60대 후반의 이 작가에게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들을 잊을까봐 적어놓은 메모가 수첩 가득 빼곡하다. 이렇듯 여태껏 해 오던 작업 분야만 알지 신기술은 그에게 무리다. 세상사에 약아 빠지지 못한 그는 오늘도 코로나로 수강생이 없어진 자신의 서실을 뒤로 하고 타 지역 복지관으로 차를 몰아 어르신들 강사 면접을 보러 나갔다. 제자 하나 키우지 못한 것은 능력의 소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찍 스타 작가부터 되고나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작가보다는 해가 갈수록 대기만성으로 좋은 작품을 내는 제자를 키우고 싶었다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기만성형의 작가 하나가 탄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이 따른다.

이래서 ‘예술을 하려면 본래 집에 돈이 많던지, 아니면 돈 많은 배우자를 얻던지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일평생을 작품으로만 승부해 온 여러 작가들은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손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웃음소리에 작품을 끼워 팔거나 제자들을 양성할 생각이 없다. 그럴 거면 지원 안 받으면 그만이다.’라는 입장이다.

1948년 생 친정아버지가 유년기에 서당에서 쓰던 붓발
촘촘하고 가늘게 쪼갠 댓살을 손으로 엮어 바깥쪽이 부러졌어도 풀어지지 않고 요즘 써도 문제없다. 오른쪽은 중국에서 수입되어 붓을 사면 딸려 오는 중국산 붓발.
광명의 한 배첩장 역시 말한다. “우리 세대가 마지막 배첩장이다.”
장인들의 사정이 이러하고, 창작 하는 이들은 겸손할수록 기회를 못 얻는다.

“뭐가 없어지든 말든, 당신이 왜 상관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돈은 잃으면 아프고, 전통은 없어지면 시원하냐?”

대꾸하자 상대는 말이 없다.

문화예술처럼 정치·경제·사회·환경 이슈에 비해 하나도 급할 것 없다 여겨지는 분야도 없다.

그렇지만, 외국 국빈을 맞이할 때 그 외교 방책을 AI가 자동으로 분석•추천해주는가? 때로는 밥보다도 그리운 것이 따스함이다. 외교의 경우도, AI와 AI끼리의 맞거래가 아니다. 언제 어느 시국이라도 그 나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짠 사람 냄새가 나는 문화예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심미안은 무엇인지 항상 연구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한 정치인이 허위 경력으로 무장된 큐레이터와 엮여 한 정권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일은 그다지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이다. 일제히 일어난 황색 언론과 여타 사건에 엮여 몇 사람이 희생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또한 이제 기후위기를 맞은 이 땅에서, ‘유한한 자원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왜‘ 했는지 진지한 질문과 책임을 지는 것도, 가장 먼저 창작자의 몫이 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부강한 나라인가 ‘부약富弱’한 나라인가.


권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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