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휘호] 민심약수(民心若水) 기포천의(起抱天意)
[신년 휘호] 민심약수(民心若水) 기포천의(起抱天意)
  • 이승봉
  • 승인 2021.12.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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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검은 호랑이띠 임인년(壬寅年)입니다. 60갑자 중 39번째 해죠.

천간(天干)에 해당하는 임(壬)은 오행 중 물을 뜻하며 물 중에서도 움직이는 강한 물을 의미합니다. 색으로는 검은색을, 방위로는 북쪽을 의미하죠. 인(寅)은 지지(地支) 중 호랑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가 되는 겁니다.

검은 호랑이인 흑호(黑虎)는 모험과 명예욕이 강하고 용맹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으며, 힘이 넘치고 정직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운명이 흑호를 닮아 새로운 세계를 여는 희망 가득한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박근혜 사면을 발표하면서 촛불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박근혜 특별사면이 결정되자 27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참여연대 등 1006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을 배신했다"고 비판했습니다.

4.16연대 한미경 공동대표는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 퇴진 당시, 문재인 정부에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며 "우리가 요구한 '적폐청산'과 '세월호 진상 규명'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사면을 논하는 것은 그동안 함께 싸운 국민에 대한 배반 행위"라고 외쳤습니다.

세월호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국민들이 구속시킨 국정농단 주범을 누구 마음대로 사면복권 한다는 것이냐"며 "사면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1700만 국민이 들었던 촛불은 2700만 국민의 횃불이 돼서 문 정부를 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헌법 제 1조 2항은 박근혜 탄핵 촛불 광장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을 좀 바꿔보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으면 권력은 권력자의 차지가 된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정파, 권력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제도인 것이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중 대의정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정치하기 힘드니 대리자를 뽑아 권한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권한을 위임하였지만 그 권한이 잘 사용되는지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회수하는 것도 국민의 몫입니다.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들이 정치를 잘못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 나라에서 과연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였나요? 아니면 권력자가 국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휘둘렀나요?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촛불을 들고 모여 박근혜 탄핵을 끌어내고 촛불정부를 출범시켰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었나요? 적폐청산을 했나요? 민생이 나아졌습니까? 안전과 평화는 지켜지고 있나요?

대통령, 지방정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만들어줘도 정부 여당은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부동산 폭등, 고용 절벽, 부의 양극화 등으로 젊은 세대는 절망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 기회를 틈타 수구 적폐 세력이 권력을 되찾겠다고 온갖 거짓과 술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검찰과 사법부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기소와 판결을 하고, 언론은 거짓 기사로 적폐에 공조하고, 모피아들은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에 대한 특별사면은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인다 해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면이 용서와 화해의 백미가 되려면 최소한의 요건은 갖춰져야 합니다. 우선 잘못에 대한 명명백백한 진실이 파해쳐 져야 하고 다음으로는 가해자의 철저한 뉘우침과 사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는 피해자들이 용서해 줄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12월 26일 모든 차별철폐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선종했습니다.

1931년 남아공의 작은 마을 트랜스발에서 태어난 투투 대주교는 1961년 사제가 되었고 남아공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뒤 투투 대주교는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운동인 '무지개 국가'를 제안했고, 1995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시대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TRC)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3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희생자 약 2만 1000명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위원회는 가해자 처벌보다는 진상의 완전한 규명과 화해, 피해자의 회복을 목적으로 했죠. 위원회는 인권침해 피해자에게는 배상금을 지불하였습니다. 위원회는 공소시효를 배제한 채 수천 명을 처벌했습니다. 다만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 가해자 849명은 사면을 해 과거사 청산과 화해를 이뤄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정치세력과 부족 갈등으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에도 하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투투의 이런 활동은 우분투(UBUNTU)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분투는 반투족 말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입니다.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분투라는 격언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지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바로 우분투의 핵심입니다. 우분투는 우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홀로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고, 우분투라는 자질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관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용서 없이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개인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서로 이어져 있으며 우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좋을 일을 하면 그것이 번져 나가 다른 곳에서도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 전체를 위하는 일이 됩니다."

저는 올해를 시작하며 민심약수(民心若水) 기포천의(起抱天意)라는 글귀를 휘호로 삼았습니다. ‘백성의 마음은 물과 같아서 하늘의 뜻을 품고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 대통령선거와 동시지방선거가 있는 올해 참을 쫓는 백성들의 마음이 모여 이 나라를 제대로 일으키라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노자 할아버지는 물을 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자 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오죠. 최상의 선(善), 즉 도(道)는 물과 같다는 말입니다. 노자는 물에 대해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고 말합니다.

78장에서는‘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을 능히 이길 것이 없다(天下 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고도 말합니다..

물은 생명현상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물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은 거의 없습니다. 물은 돌고 돌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물은 생명의 증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은 체내의 수많은 물질을 녹이는 용매 [溶媒, solvent]일뿐 아니라 또 체내의 물질대사에 필수적인 물질이기도 합니다.

물은 식물의 광합성과 세포의 호흡에 있어서도 꼭 필요하죠. 광합성을 하는 세포는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에서 수소와 산소에서 분리시킵니다. 수소는 기체나 물에서 흡수한 CO2와 결합하여 포도당을 형성하고 산소를 배출합니다. 세포호흡의 경우 수소와 산소를 산화시켜 태양 에너지를 포획하며, 그 과정에서 물과 CO2를 배출합니다.

사람의 몸속에는 체형과 나이에 따라 55%~78%의 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탈수 현상을 막기 위해 날마다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합한다. 먹어야 할 물의 양은 활동 수준, 온도, 습도 등의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매일 2리터 정도를 마시는 것이 습니다.

물은 또한 더럽혀진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 시키는 일을 합니다. 온갖 때를 벗겨내어 깨끗하게 만들어 주죠.

그 외에도 물이 우리 삶 속에 유익이 되는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용한 물도 때로는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위협은 매우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에서 경험한 것처럼 물은 쓰나미가 되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휩쓸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위력 앞에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도, 강한 쇠로 만든 교량도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죠.

전쟁이 일어나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해도 쓰나미가 덮친 마을과 도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그 부드럽고 유약함으로 세상과 생명을 살리는 물이 한번 요동치면 아무것으로도 그 물을 막을 수 없다는 생생한 증거를 우리는 도처에서 목격하고 삽니다.

물은 아상(我相)이 없기 때문에 자기의 성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아니 바꿀수 없는 것이죠. 다만 물이 처해 있는 조건이 물을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할 뿐입니다. 물이 생명을 살리는 것도,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도 어떤 인연이나 조건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은 온도에 따라 고체[얼음]나 액체[물], 기체[수증기]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물을 그릇에 담으면 그릇 모양을 유지하고, 물에 물감을 타면 형형색색을 띠기도 하죠. 지진이 나면 쓰나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자기의 성질을 바꾸지 않기에 물에 에너지가 축적되면 큰 힘을 가지게 되죠. 왕이 백성을 폭압으로 억눌러 그 반항의 에너지가 축적되면 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백성들의 마음이 물을 닮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78장 말미에 노자 할아버지는 물을 닮은 지도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허물을 받아드리는 지도자를 일컬어 사직(社稷)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일을 받아드리는 지도자를 일컬어 천하의 왕(王)이라 한다(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謂天下王)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진정한 지도자, 왕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권력을 잡아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려고 하는 지도자는 진정한 의미의 왕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의 고통을 떠안고, 나라의 궂은일을 도맡아 할 줄 아는 지도자가 참된 의미의 왕이라는 것이죠. 임금은 백성의 머슴이 되어야지 백성 위에 군림(君臨)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백성들이 임금을 어버이로 생각하는 것은 임금이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고 뒷바라지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라에 흉사가 생기면 진정한 왕은 그것을 자신의 허물로 돌립니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대며 그 책임을 신하에게, 혹은 백성에게 전가하는 왕은 왕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권력의 자리를 지키려고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는 물과 같은 백성들의 마음이 쓰나미가 되어 그 권력을 덮치게 되는 것이죠. 정치인, 관료들이 백성들을 우습게 보아 속이고 농락하려 든다면 왕은 가차 없이 그들을 쳐 내야 합니다. 그들을 감싸고 오히려 그 탓을 백성들에게 돌린다면 그 정권은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4개월 남짓 남음 임기 동안 문재인 정부는 물과 같은 백성의 마음을 잘해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쫓아 못다한 일들을 잘마무리해야 할 것입니다. 덩 이상 민의를 거스르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는 물을 닮은 백성들이 하늘의 뜻을 쫓아 힘있게 일어서길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백성의 마음을 알고 하늘의 뜻을 쫓아 이 나라를 일으킬 지도자가 뽑이길 소망합니다. 백성의 마음은 물을 닮았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기필코 이루어낼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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