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객관화는
감정의 객관화는
  • 이경달 칼럼
  • 승인 2022.01.24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에는 녹는 눈이었다. 들에도 녹는 눈이었다. 소월의 오리나무를 떠올렸다. 그늘진 그곳은 눈이다. 전날 눈 치우는 일은 힘들었다. 지나다니는 차가 미끌어질까 저어한 탓이다. 시간을 당기는 행위였다. 눈 위의 발자국. 고양이와 오소리 더러 고라니도 보인다. 새와 생쥐 발자국도 있다. 눈 위에서 자주 만나는 생쥐가 자국을 남겼다. 자국은 기억이다. 기억을 현실의 공간에서 본다.

영미문학이나 유럽인의 글에서 감탄하는 것이 있다. ‘자기의 그때 감정’을 관련되는 일이나 사건의 흐름에 따라 ‘참으로’ 잘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감정에 유머를 섞고 빈정거림을 보태고 웃기는 진지함으로 버무려 놓는 자국으로서의 글이 감탄이다. 행위와 관련하여 감정을 객관화하면 보이는 것에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감정은 윤리 저편에 있다. 감정의 객관화. 조건으로 윤리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쉽지 않다. 그걸 기술하면, 감정 둘레로 피어나는 인간의 다양한 가치체계가 ‘나’를 불쾌하게 여긴다. 그러니 먼저 윤리의 비판을 감수해야한다. 그리고 그걸 수용하는 인고가 필요하다. 고도의 집중력과 단단한 자아를 필요로 한다. 일생의 과제다. 감정은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탓이다.

감정은 내안에 있다. 자극은 외부에서 오거나 내부에서 온다. 자생적이면 원인이 없다. 감정이 내게로 오기 위해서는 윤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곧 어떤 일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느냐는 말의 그들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한다는 감정의 부류도 있다. 후자는 문턱이 낮다. 일상 언어의 근간은 윤리이다. 윤리는 사실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전자는 답답해하고 후자는 성질낸다. 유유상종. 전자는 전자끼리 후자는 후자끼리 모인다. 윤리가 없으면 사실이나 논리도 희박하다. 그저 옳다고 뻗댄다. 분열의 세계이다. 어떤 종교나 어떤 이념주의자라 자칭하는 분들에게 흔했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것은 윤리의 벽이 허물어졌거나 구멍이 난 탓이다. 아니면 장벽이 지나치게 낮은 까닭이다.

치매 걸린 분들은 어떤 기억이 없는가. 단지 나무와 돌을 기억하는 것과 나무와 돌에 시간과 장소를 염두에 두고 그리고 너와 나를 더불어 기억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저 나무와 돌의 기억력은 침팬지에게 배워야 한다. 인간보다 탁월하다. 이건 인간 특유의 기억력은 아니다. 그 때 어느 장소에 있던 그 나무를 건너편의 김씨와 같이 보았다는 기억이다. 어느 물난리가 나던 해 저 쪽 강바닥에서 주은 돌인데 둘레에 사람이 없었다는 기억이다. 이 기억은 확장성이 있다. 단순 단어의 기억과 다른 기억이다. 사전을 열면 용례가 더불어 나타난다. 단어의 모임으로 문장이 되지 않는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의식의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너와 나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야 가능하다. 치매는 어떤 원인으로 뇌사용 불능이 아니라면 의식의 퇴화이다.

이런 내용이 쌓이고 쌓여서 스토리가 된다. 스토리는 ‘운동성’이다. 머무는 문장은 죽음이다. 움직임이 없는 물고기는 물아래로 추락한다. 기억의 상실은 물위와 물아래의 구분이 안 되는 현상이다. 또 기억의 상실은 추락한 물고기이다. 그저 돌이고 나무의 그들이다. 치매를 체험하는 방법이 있다. 화장실을 나서면서 근래의 중요한 주제를 ‘깊게’ 생각해보라. 십초 뒤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화장실의 불을 끈 것인지 아니면 켜둔 상태인지. 무의식에 깊게 빠져 있으면 화장실에 간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구분이 희미할 것이다. 현실의 나무에 부딪히면 다친다. 그러나 꿈에서 나무에 부딪히면 다치지 않는다. 집중과 조심성 그리고 이것저것 따질 것이 많은 이유의 현실이다. 그 나무에 다치지 않기 위해 나무의 위치와 크기를 구분할 능력이 필요하다. 입체적인 기억력은 늘 불안한 탓에 확인이 필요하고 갱신이 필요하다. 불안한 것은 자기의 기억력이고, 그것이 또 불완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그’는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삶을 보장한다. 불안한 삶이고 고통스럽다. 인간의 현실이다.

자기의 위치가 어딜까. 그리고 상대는 무엇인가 하는 실험 내용이다. 1) 누가 납을 포장한 뒤 라벨에 ‘이것은 금이다.’라는 문구를 새겨 둔다. 2) 납에 금도금을 한다. 3) 합금으로 만든다. 4) 중간에 납을 넣고 금으로 두른다. 5) 순금을 넣어 둔다. 우리는 1)에서 5)까지에서 어떻게 금을 찾아낼까.

금. 대개 이런 경우는 거래관계 곧 이익관계에 있다. 싸게 판다든가 또는 내가 구매해야할 경우이다. 금이라 쓰여 있잖아 믿어야지 왜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거야. 흔하게 들었다. 혹 포장지를 열어도 1)번만 발견할 뿐이다. 이런 정도의 그들은 포장지를 연 행위에 대해서 어거지이다. 경험이 있다. 인터넷 구매에서 포장지가 손상되면 반품이 안된다는 문구를 보았다. 나는 연장이 필요했다. 이 연장은 기름을 넣고 작동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이런 내용을 문의문자로 보냈다. 연락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쪽에서 물어도 같은 말이었다. 포장지나 공구에 기름이 묻어도 반품하지 않으니 단지 기계 작동을 사전에 확인해 달라. 저희제품은 믿을 수 있습니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성있는 공구상회에 문자를 보냈다. 그들은 흔쾌히 받아 들였고 기름을 넣고 작동시켰다는 이유로 반품 안된다는 확언을 내게 받아 갔다. 지금껏 잘 사용하고 있다. 금의 확인. 손톱으로 긁어 보자는 사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말하는 사람 전문가를 부르자고 하는 사람. 여럿이었다.

윤리와 의식. 자기감정을 사고 대상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싸게 사려는 자기감정을 대상으로 삼으면 뭔가가 보인다. 공짜 바라지 말라는 윤리의 작동이다. 공짜로 천국으로 보내 준다든가. 나이 들어 잘된다는 말은 좀 그렇다. 쓸모없는 것에 고집하는 노인이 되었는데 무슨. 그러니 지나치게 싼 물건은 대상에서 제외다. 자기 지식이나 경험의 편협함에 늘 마음 조리기 때문에 이리저리 확인을 한다. 확인되지 않거나 이상하게 말이 헛돌면 대상에서 제외다. 그리고 파는 자들이 누구이고 그리고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따진다. 불투명하면 제외다. 큰 거래가 아니라면 전문가를 대동한 확인은 쉽지 않다. 전문가를 대동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보여준 확실한 보증이면 거래대상이다. 주식의 첫 번째 모토가 모르거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싼 가격에 감정이 휘둘리면 납덩이고 도금덩어리이다. 그리고 송사다.

현실을 둘러싸고 있는 말이 복잡하다. 현실이 복잡한 이유 때문이다. 입문을 다양하게 하라는 충고이다. 거저 주어지는 지식은 없다. 자기감정을 탐구 대상으로 삼아 조금 더 단단하고 폭 넓은 윤리체계를 내부에 형성하는 도상에 설 일이다. 관찰력과 기억력은 덤이다.

창문 너머 산의 겨울풍경이 스산한 이유와 그저 남보다 낫다고 우기는 행위는 다르다. 스스로의 감정을 행위와 더불어 따져보는 것이 물 아래로 바다 속으로 미끄러지지 않는 버팀목이다. 그러면 감정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죽음의 그림자임도 느낄 수 있다. 성장하는 인간에게 일상이 우울이다. 반면 선행하는 감정은 내용을 알기 전에 미리 결론이 내려진 상태이다. 충동성. 내가 옳다는 우격다짐이고 조작이다.

- 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