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걸어요]①...곡우穀雨
[혼자서도 걸어요]①...곡우穀雨
  • 권용화 칼럼
  • 승인 2022.04.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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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왜 논이 있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수년 전 일이다. 광명에 10시까지 와서 강의를 하기 위해 새벽에 출발했다는, 강원도에서 쌀 유기 농사를 짓고 계신 생산자께서 던지신 질문이다.

왜 논이 있어야 할까.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 벼농사는 왜 지어야 하지? 밥을 먹어야 하니까?

답은 전혀 당혹스러운 곳에 있었다.

 

벼가 자라야 하는 이유

“여러분, 논 하나하나는, 거대한 호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대기에 습한 기운을 줍니다. 그것이 우리 땅의 온난화를 막아줍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밥을 먹어 주십시오. 도시에서 우리 쌀을 소비해 주셔야 논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 분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않고 건조했지만, 우리는 대번에 조용해졌다.

“걱정 마세요. 아직은 24절기가 어느 정도는 맞고 있으니까요. 며칠 있으면 곡우인데 그 즈음해서 꼭 비가 올 겁니다.”

그리곤 우스개 소리처럼, 전설 하나를 소개해 주셨다.

한 게으른 아들이 있어, 한해 농사를 번번이 망치곤 했다. 다스리다 다스리다 죽을 날이 된 어머니가, ‘오늘 내가 가니, 내년부터 이 날마다 비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날 꼭 농사 준비를 하거라.’ 유언했다. 그리고 정말 양력 4월 중순, 어머니의 제삿날이 되면 비가 와, 그 비를 곡식 곡, 비 우자를 써서 곡우穀雨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오롯이 하늘의 비에 기대던 시절, 곡우는 한 해 벼농사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봄의 6절기 중 마지막인 곡우. 다가오는 5월 5일이면 여름의 시작 입하立夏에 접어든다.
사진ⓒ김은선_광명 식생활교육팀 <한울><옹기종기> 제공

 

점점 더 짧아지는 봄•가을

봄옷을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올해도 식구들은 금방 반팔을 찾는다. 점점 뜨거워진 지구를 견디지 못해 꽃들은 너무 빨리 피었다 진다. 자연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릴 적 논둑에서 냉이를 캐다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진달래로 온통 산이 분홍이었는데, 지금은 그 한 때를 못보고 봄이 끝난다. 산이 물들어 있던 것은 그저 어린 내 눈이 일으킨 착각이었을까.

가끔 아파트적인 생활에 염증을 느끼거나, 아이에게 자연을 선사해 주고 싶을 때면, 한 농장에 얘기하여 아이와 함께 숙박과 농사일을 하다 오곤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묘하게도 내외 중에 한 사람만 산촌 생활을 좋아한다. 한 사람은 도시 생활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언제나 ‘붕~’하고 아이와 나를 내려놓고 가버리는 남편을 배웅해야 했다. 이제는 아이마저 ‘불편하다, 특히 (생태)화장실이...’라며 커 버려, 농장 숙박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됐다. 농장 가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를 생산자 선생님께 보여드린다는 것도 영 부끄럽고, 가끔 그렇게 농사를 거든다는 것이 도시인의 폼 잡은 일탈일 뿐이지, 선생님께 도리어 민폐가 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버렸기 때문이다. 평생을 농민 운동에 바치셨지만 이제는 디스크로 다리를 저시는 그 분께 해 드릴 것이 더 이상 없었다. 이상 기후로 유난히 배추 작황이 안 좋았던 가을, 선생님의 절뚝이는 발걸음을 보고 나는 도시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며 그곳이 이제 내가 더 이상 찾아 갈 곳이 아님을 체감하고 있었다.

오늘, 회색 빛 아파트 숲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어머니 노릇으로 녹색 학부모회 활동을 했다. 비 소식은 없다. 주말 무렵 쯤 그것도 옅게, 가망이 있을 뿐이다.

‘곡우가, 와야 할 텐데.’

마음이 외친다.

사실, 천천한 것들이 시급할 수도 있고 급하다 믿은 것이 신기루였을 수 있다.

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정말 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전설이 사실은 아니지만, 이야기 속 그 아들은 곡우 날마다 울었을 것 같다.

후회의 눈물

어디선가 어머니(자연)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울지 말라는, 조용한 꾸중이 들리는 것 같다.

권용화
권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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