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과 마을공동체
민주공화국과 마을공동체
  • 유창복 광명자치대학
  • 승인 2022.11.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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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복
유창복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국가공동체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평범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국가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까요? 네, 투표로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합니다. 국민투표나 주민투표가 거의 없으니 주로 선거(選擧)를 위한 투표로써 권리를 행사합니다. 그런데, 국가공동체의 주인이 권리행사로 하는 투표행위가 사실은 ‘권리의 포기’라는 생각을 해보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투표란 공직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될 후보자에 우리의 권리를 다 넘겨줘 버리는 행위입니다. 법률적인 표현으로는 위임(委任)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당선된 정치인(선출직 공직자)이 권리를 위임해준 주인(국민, 시민 또는 주민)의 뜻과 요청을 존중하고 잘 지키는가? 입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주저 없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게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비극입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 하기
그러면 주인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4년이나 5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뽑아주나 봐라.” 중얼거리면서 말이지요. 살만한 사람들이야 4년을 기다린들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처지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마침내 궁지에 몰려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로 수많은 ‘없는 사람들’이 생존의 위기에 몰리고 심지어 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끊는 참담한 일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인이 주인임을 드러내고 종에게 종임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면, 종이 제가 주인인 줄 착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맙니다. 세계사는 물론이고 최근의 우리의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참여’입니다. 종이 주인 앞에서 다짐했던 공약들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더 잘할 방법은 없는지를 묻고 따지고, 나아가 종(행정)과 함께 협력하여 당장 주인들에게 닥친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협치(協治, Governance), 민관협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살기 바쁜 국민이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직접 참여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이웃들과 언제라도 함께 참여할 방법을 궁리하고, 소소한 참여를 통해서 뭔가 개선되는 효능감을 맛봐야 합니다. 그래야 평범한 주민의 참여가 수월해지고 또한 그 참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마을공동체입니다. ‘생활의 필요를 함께 하소연하고 궁리하다가 협동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이웃들의 관계망’이 바로 마을이니까요.

스위스의 마을 직접민주주의 주민총회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 ⓒ스위스관광청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_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마을 주민총회 ⓒ스위스관광청

마을은 민주공화국의 터전
이웃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협력의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선, 나의 개인적 필요에서 시작되었지만 몇몇 이웃들의 필요가 되면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아가 동네의 필요로 인정되면서, 그 문제해결의 수준이 높아져 버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의 필요'에서 '동네의 필요'가 무엇인지로 질문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공성(公共性)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웃과 함께하다 보면 좋을 일만 있지 않습니다. 형편과 처지가 모두 다르고 그러다 보니 생각과 방법이 달라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성 속에서 차이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와 관용의 마음과 태도가 자랍니다. 바로 민주성(民主性)이 자라나는 체험을 합니다.

민주성과 공공성, 이 둘을 합치면 바로 우리 헌법이 제1조에서 선언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정신 아닐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마을에서 느슨한 관계망을 통하여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을 실천으로 구현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마을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한다지요. 마을에서 이웃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유창복
광명자치대학 학장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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